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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원구성 협상으로 본 김태년 리더십 "화끈하긴 한데.."

하준호 입력 2020.06.30. 21:00 수정 2020.07.01.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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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국회 전반기 원(院) 구성 협상에서 벌어진 법제사법위원장 쟁탈전의 승자는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다. 미래통합당의 집요한 요구에도 법사위원장을 여당 몫으로 가져왔다. “야당이 법사위 기능을 법안 발목잡기에 악용하니 이번엔 여당이 맡아서 이 관행을 끊어버리겠다”고 ‘판단’한 그는 일관되게 ‘여당 법사위원장’을 전제로 협상을 ‘추진’했고, 결국 “집권여당으로서 책임국회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지킬 시간이 왔다”며 단독 개원을 ‘결단’했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민주당 원내대표단의 한 의원은 “이 같은 판단력·추진력·결단력이 김 원내대표의 특장점”이라고 말했다. “가야 할 길을 정했으면 좌고우면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여 어떻게든 성과를 낸다”는 것이다. 김 원내대표 자신도 취임 이튿날인 지난달 8일 문희상 당시 국회의장을 예방한 자리에서 “전 화끈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야당도 화끈했으면 좋겠다”면서다. 이를 두고 당 안팎에서는 “문재인 정부 초기 당 정책위의장과 국정기획자문위 부위원장을 지내면서 쌓은 정책 추진력을 원내대표 임기 초반에 보여주려는 것 같다”는 얘기가 나왔다. 원내대표 취임 후 공식 석상에서 그가 많이 쓴 단어는 ‘일’(175회)이다.

그렇다고 속전속결을 택하진 않았다. 여당 입장에선 3차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의 신속 처리가 급선무였지만, 그는 명분부터 찾았다. 지난 15일 단독으로 법사위를 포함한 6개 상임위원장을 선출하기 전 수차례 심야 회동을 한 것도, 주 원내대표가 사찰을 떠돌며 잠행 중일 때 강원도 고성까지 달려간 것도 그래서다. 당내 4선 이상 중진 의원들에게 개별적으로 전화를 걸어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한 4선 의원은 “사실 지난주 원 구성을 마칠 수 있었는데 주말 동안 시간을 갖고 잠정 합의안까지 마련하려 한 건 김 원내대표가 굉장히 잘한 것”이라며 “한 주 참으면서 '통합당이 스스로 합의를 포기했다'는 명분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왼쪽)와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오른쪽)가 지난 23일 강원 고성의 화암사에서 만나 인근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한 후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겨 밝은 모습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당 일각에서는 이런 ‘김태년 리더십’에 대해 “판단에 미스(miss)가 있어도 한번 결정한 건 끝까지 추진하고, 생각을 바꾸는 일도 거의 없다”(민주당 소속 보좌진)고 비판한다. 민주당 관계자는 “초반에 법사위를 놓고 워낙 세게 드라이브를 건 것부터가 문제였다. 시작부터 퇴로를 닫아버려 야당에 법사위를 양보하면 원내대표직을 사퇴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고 말했다. 주 원내대표와 ‘사찰 회동’ 때도 그의 손에는 법사위 관련 양보안은 없었다. 당시 주 원내대표는 김 원내대표 일행이 떠나자마자 통합당 핵심관계자에게 “새로운 제안은 없었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민주당이 정보위를 제외한 국회 상임위원장 17석을 독식한 지난 29일 한 민주당 당직자는 “김 원내대표도 지금 찝찝해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37일(5월 24일~6월 29일)간의 원 구성 협상이 깨지고 상임위원장 전석(全席)을 가져가게 된 현 상황을 김 원내대표도 바람직하게 보진 않는다는 의미다. 제1야당을 원 구성에서 완전히 배제하는 전례를 만든 건 그로서도 부담이다. 제1야당은 좋으나 싫으나 향후 국회 운영의 파트너일 수밖에 없다.

박병석 국회의장과 여야 원내대표가 지난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장실에서 원구성 논의를 위한 회동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박 의장,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 [뉴스1]

이 당직자는 “이번에는 코로나19라는 비상시국이 우리 편이었을 뿐, 앞으로의 국회 운영을 계속 이런 식으로 가져가다가는 어디선가 탈이 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주당의 한 3선 의원도 “우리가 야당일 때 원 구성이 80일 이상 지연되면서도 결국엔 합의하지 않았느냐”며 “김 원내대표 몸에 사리가 쌓일지언정 끝까지 야당의 도장을 받아내는 게 더 나았다”고 말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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