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아베 역풍' 결국 현실이 됐지만..

장정훈 입력 2020. 7. 1. 00:18 수정 2020. 7. 1.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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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훈 산업2팀장

오는 4일이면 일본이 기습적으로 수출규제를 단행한 지 꼭 1년이 된다. 지난해 7월 일본은 우리의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의 급소를 찔렀다. 일본 의존율이 최대 90%에 달하는 핵심 소재 3개를 콕 집어 수출을 금지했다. 당연히 우리는 반도체·디스플레이의 생산 차질 우려와 일본에 대한 배신감에 분노했다. 하지만 본지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아니라 수출을 못 하게 된 일본 기업이 역풍을 맞을 것으로 보도했다. 삼성이나 SK하이닉스는 소재 국산화와 공급처 다변화로 위기를 극복할 것으로 봤다. 〈2019년 8월6일자 14면, “내년 2월 반도체 3종 탈일본…日기업 ‘아베 파산’ 맞을 것”〉

노트북을 열며 7/1

‘아베 파산’은 꼭 1년 만에 현실이 됐다. 세계 1위 불산 업체인 일본의 스텔라케미파는 출하량이 1년 전보다 30% 줄었다. 지난 1년간 니케이225(NI225) 종합지수는 5.8% 올랐지만, 스텔라케미파나 또 다른 불산 업체인 쇼와덴코 주가는 19.6%와 22% 하락했다. 반면 불산 국산화에 성공한 솔브레인과 램테크놀러지 주가는 같은 기간 103%와 100% 뛰었다. 또 포토레지스트를 만드는 동진쎄미캠 주가는 1년간 168% 급등했다. 일본의 도쿄나 마이니치 신문이 최근 “한국의 반도체 생산에 지장이 생기지 않았다”거나 “일본 기업만 피해를 봤다”고 보도한 이유다.

일본 공격을 잘 방어한 정부와 기업은 자신감이 넘쳐 보인다. 하지만 한 발만 더 파고 들어가 보면 단견이고 착시일 뿐이다. 불산 국산화 성공은 자랑할 만 하다. 하지만 반도체 미세공정의 최극단인 5㎚ 이하의 노광장비인 EUV(극자외선)용 포토레지스트나 플렉서블 디스플레이에 쓰는 폴리이미드 등은 벨기에 등에서 소재를 공수해 위기를 넘긴 게 현실이다. 더구나 그 벨기에 등의 회사 지분 구조를 따져보면 일본이나 미국 기업 이름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우리가 민관이 혼연일체로 핵심 소재·부품·장비(소·부·장) 100개의 국산화를 추진 중이지만, 우리 기업에 꼭 필요한 소·부·장 수백 가지의 독보적인 기술력은 아직도 일본이 갖고 있다.

최근엔 코로나 팬데믹으로 촘촘히 엮인 세계 각국과의 공급선마저 송두리째 흔들리는 위기다. 삼성이나 SK하이닉스가 세계 최고라지만 일본·미국·네덜란드·중국 등과 거미줄처럼 얽힌 공급망의 사슬에서 이탈하는 순간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일본은 가장 가까운 이웃이고 우리가 필요한 것을 가장 많이 가진 나라다. 아베 파산을 마냥 통쾌해할 일도, 순간의 승리에 취해 있을 때도 아니다. 양국 관계 복원은 빠를수록 서로에게 윈윈이다. 정치가 괜한 의도를 갖고 시장에 끼어든 결과가 파산이라는 교훈만 새겨둔다면 그 것으로 충분하다.

장정훈 산업2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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