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조선일보

[만물상] 영웅의 유해를 대하는 법

한현우 논설위원 입력 2020.07.01.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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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 가까운 시각 미 대통령이 백악관을 빠져나와 헬기에 올랐다. 헬기는 40분을 날아 델라웨어주 도버 공군기지에 착륙했다. 새벽 3시쯤 수송기 한 대가 도착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사한 미군 18명의 시신이 실려 있었다. 대통령은 전투복 차림 군인들과 나란히 도열해 시신들이 모두 운구차로 옮겨질 때까지 거수경례를 붙이고 있었다. 의장대도 없고 음악도 조명도 없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2009년 10월 미군 전사자 시신 송환 현장에 처음 간 날 모습이다.

▶며칠 전 우리 대통령도 70년 만에 조국에 돌아온 6·25 전사자 147명의 유해를 공항에서 맞았다. 140명의 유해는 공군기 앞에 이미 나와 있었고 신원이 밝혀진 7명의 유해는 "유해, 하기(下機)" 라는 구령에 따라 의장대가 품에 안고 트랩을 내려왔다.

▶그런데 유해는 이날이 아니라 전날 도착했고 행사장에 서 있던 공군 비행기는 다른 비행기였다. 사흘 전부터 이 비행기를 행사장에 세워놓고 예행연습을 했다고 한다. 유해는 원래 실려온 비행기에서 내려져 어디선가 하룻밤을 보내고 그중 유해 7구는 행사를 위해 다른 비행기에 실려 있었다는 뜻이다. 유해가 실제 도착했을 때는 누가 어떻게 마중했는지도 알 수 없다. 정부 관계자는 "비행기 동체에 무대 영상을 비추는 일이 기술적으로 시간이 오래 걸려 미리 다른 비행기를 갖다놓고 작업했다"고 했다.

▶실제로 이날 행사에서 비행기 동체에 비춘 영상은 신선한 인상을 줬다. 전쟁 영웅들을 그런 극적 연출로 모시는 것도 멋진 일이다. 그러나 멋진 영상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가장 중요한 순간은 전사자 유해들이 70년 만에 고국 땅에 내린 그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유해들은 마땅히 받아야 할 정중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 다음 날 '무대'를 위해 어디선가 대기해야 했다. 많은 국민은 유해들이 70년 만에 조국 땅을 밟는 순간을 생중계로 보는 줄 알았다.

▶어떤 사람들은 정부가 전쟁 영웅들의 유해를 무대 '소품' 취급했다고 개탄한다. 정부에 그런 의도가 있었다고 보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이 정부에 정말 중요한 것은 '내용'인지 아니면 보여주는 '쇼' 그 자체인지 헷갈릴 때가 적지 않다. 정치와 쇼는 불가분의 관계다. 그러나 6·25 전사자 유해를 두고는 조금 달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감동을 주는 무대도 필요하다. 다만 전사자 유해들이 도착한 날 대통령이 바쁘다면 국방장관이라도 나가 맞았다면 이렇게 뒷맛이 씁쓸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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