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김두관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양영권 경제부장 2020. 7. 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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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 돈도 실력이야.”

2016년 박근혜 대통령 측근 최서원(최순실) 씨 국정농단 의혹이 확산하던 시점에 튀어나온 정유라 씨의 SNS 글이 ‘촛불민심’에 불을 붙였다. 무엇보다 공정해야 할 대학 입시에 ‘부모 찬스’가 개입하는 게 뭐가 문제냐는 그의 인식이 청년들과 학부모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정권 퇴진을 야기한 거대한 분노는 ‘공정’의 문제가 발단이었다.

이번에는 입시가 아닌 입사의 문제다.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조금 더 배웠다고 비정규직보다 2배가량 임금을 더 받는 것이 오히려 불공정”이라는 발언은 ‘공정’의 의미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졌고, 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 전환 논란에 휘발유를 끼얹었다.

정유라가 비난을 받은 것은 ‘부모찬스’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지만 ‘공정’과는 거리가 멀다는 도덕률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김 의원의 발언 역시 성공하기 위해 더 좋은 대학에 가기를 바라고, 학업과 취업 준비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이들의 세계관을 흔들었다.

공정이란 무엇인가. 단순하게 말하면 선을 권하고 악을 벌하는 것, 더 노력한 사람이 더 많은 것을 이루는 게 공정이다. 순전히 운으로 결정되는 제비뽑기, 로또복권이라고 하더라도 그 절차는 투명해야 한다는 게 공정이다.

공정의 의미가 바뀌면 세계관은 뒤죽박죽된다. 권선징악이 부정될 때의 불편함, 노력=성공이라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을 때의 혼란. 자신의 세계관을 지키려 할 때 ‘분노’라는 기제가 작동한다. 이제 청년들은 ‘인국공 사태’를 대하는 정치인을 통해 ‘공정’의 의미를 재정립하라는 요구를 받았고, 그렇다면 우리가 성공을 위해 해야 할 것은 도대체 무엇이냐는 의문을 던진다.

김두관 의원이 애민의식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닐 것이다. 같은 기관에서 비정규직은 정규직에 비해 약자이다. 정치인이라면 약자의 편에 서는 것을 소명으로 여겨야 한다. 하지만 고용시장에는 더 많은 약자가 있다. 산업구조 재편과 인공지능의 확산이라는 구조적인 요인, 최저임금 인상 등 정책 요인에 코로나19라는 돌발변수까지 겹친 탓에 좌절해 있는 청년이 그들이다.

사회지도층이라면 이런 현실을 읽어내고 그들을 어루만지는 감수성이 있어야 한다. 감수성은 후천적으로 획득된다. 인류 극한의 경험들이라 할 수 있는 전쟁사를 전공한 유발 하라리는 ‘감수성×경험=지식’이라는 공식을 만들어냈다. 감수성이 전무하다면 경험을 아무리 많이 하더라도 그게 지식이 되진 않는다. 감수성이 클 경우 작은 경험으로도 지식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 공식은 곧 ‘감수성=지식÷경험’으로 바꿀 수 있다. 경험이 제한적이라면 지식을 키울수록 감수성이 높아진다.

‘지식’을 쌓기 위한 ‘공부’에 도움이 되는 텍스트는 차고 넘친다. 통계청 고용동향만 보면 알 수 있다. 여기에 따르면 지난달 청년(15~29세) 실업률은 10.3%로 전체 실업률(4.5%)의 2배를 뛰어넘는다. ‘쉬었음’ 인구는 전 연령층 가운데서도 20대에서 41만2000명이 늘어나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정부가 만들겠다는 일자리라고는 고용률을 일시적으로 높이기 위해 세금을 퍼부어 만드는 단기 알바 일자리들 뿐인 상황에서 정년 보장이 되는 연봉 4000만원 안팎의 인국공 보안요원 정규직은 황금 일자리다.

하지만 일부 정치인들의 지식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1980년대 영화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학과 공부는 게을리했어도 졸업 즈음에 과사무실에 가면 추천서가 쌓여 있고, 면접비를 받으러 공채 원서를 넣었다는 그 80년대 말이다. 감수성은 뒤처질 수밖에 없다.

헌법은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고 있다. 행복할 권리가 아니라 행복을 추구할 권리이다. 그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은 공정해야 한다고 외치는데, 왜 비정규직은 행복하면 안되냐는 동문서답을 내놓고 있다. ‘꼰대’로 불리기 싫다면 함부로 자기 세계관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게 철칙이다. 세계관을 강요하는 게 아닌 비전을 제시하는 정치인을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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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권 경제부장 indepe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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