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따라 강남 간다? 친구 따라 고둥껍질로 물고기 잡는 남방큰돌고래

김기범 기자 입력 2020. 7. 1. 17:26 수정 2020. 7. 1.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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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돌고래들이 도구를 이용한 새로운 ‘사냥 기술’을 동료 돌고래들에게 배운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돌고래가 동료들로부터 새로운 기술을 습득한다는 것이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확인된 것은 두번째다. 지금까지 부모 세대가 아닌 동세대로부터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것이 확인된 동물은 인간과 유인원뿐이었다.

스위스 취리히대와 영국 리즈대, 독일 막스플랑크 동물행동연구소 등 공동연구진은 지난달 25일 학술지 현대생물학(Current Biology)에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논문을 게재했다. 연구진은 2007년부터 2018년 사이 호주 서부 샤크만 근해에서 선박을 이용한 조사를 실시했으며 총 5300회에 걸쳐 돌고래 무리를 관찰했다. 이 기간 동안 연구진은 1000마리 이상의 남방큰돌고래를 확인하고, 개체별로 식별했다.

남방큰돌고래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적색목록에서 준위협(NT·Near Threatened) 범주로 분류한 해양포유류다. NT는 멸종위기 직전의 상태, 또는 보호조치가 중단될 경우 멸종위기에 처하게 될 것임을 의미한다. 남방큰돌고래의 서식지는 아프리카 동남해안, 아라비아해, 인도양, 동남아시아와 호주 및 뉴질랜드 등의 바다다. 국내에는 제주 연안에만 서식하는 돌고래로, 100~120여마리만 남아있어 해양보호생물로 지정돼 있다.

호주 서부 샤크만에 서식하는 남방큰돌고래가 쉘링 기술을 이용해 물고기를 사냥하는 모습. 소냐 와일드, 돌핀이노베이션프로젝트 제공.


연구진은 이들 남방큰돌고래 중 19마리가 쉘링이라 불리는 사냥 기술을 이용하는 장면을 총 42차례 관찰했다. 쉘링은 돌고래가 사냥 대상인 물고기를 해저의 거대한 고둥 껍질에 몰아넣은 뒤 그 껍질을 해수면 위로 들어올려 흔드는 기술이다. 물고기가 고둥 껍질에서 떨어져 나오면 입으로 낚아채 잡아먹는다.

기존에는 돌고래들이 어미로부터 사냥 기술을 배운다는 것이 확인된 바 있다. 샤크베이의 어미 남방큰돌고래들은 스폰징이라 불리는 사냥기술을 새끼 돌고래에게 가르친다. 스폰징은 바닷속 암초에서 먹이를 찾을 때 주둥이에 바다수세미를 덮는 방법을 뜻한다. 바다수세미를 덮으면 더 깊숙이에 있는 먹이에도 접근이 가능한데, 호주의 남방큰돌고래가 도구를 이용하는 모습은 1999년 처음으로 확인됐다.

호주 서부 샤크만에 서식하는 남방큰돌고래가 쉘링 기술을 이용해 물고기를 사냥하는 모습. 소냐 와일드 제공.


논문 공저자인 스위스 취리히대의 인류학자 마이클 크뤼젠 교수는 “쉘링이 모자 간이 아닌 동료 사이에서 전달된다는 것은 획기적인 발견”이라며 “돌고래와 다른 이빨고래들이 수직적인 전달과 수평적인 전달 양쪽으로 사냥 기술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을 포함한 영장류와 유사한 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돌고래와 유인원은 진화 과정이나 서식처가 매우 다름에도 불구하고 수명이 길고, 큰 뇌를 지닌 포유류이면서 혁신을 이뤄낼 수 있고, 다음 세대에 행동을 전승할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고래는 몸집이 크고 수염이 있는 수염고래와 작고, 이빨이 있는 이빨고래로 분류되는데 돌고래는 이빨고래에 속한다.

장기간 조사를 진행한 결과 연구진은 돌고래 개체별로 가족사, 연령, 성별, 행동 패턴 등에 대해 상세한 정보를 축적하는 것이 가능했고, 이는 쉘링 연구에도 도움이 됐다. 예를 들어 쉘링 장면이 목격된 돌고래들은 역시 쉘링 모습이 포착된 돌고래와 함께 행동하는 것이 확인됐다. 독일 콘스탄츠대 연구원인 행동생태학자 소냐 와일드 박사는 내셔널지오그래픽과의 인터뷰에서 “돌고래들은 같이 시간을 보내는 다른 돌고래들의 흉내를 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쉘링으로 사냥을 하는 돌고래는 항상 같은 세대의 돌고래들과 함께 있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이 같은 돌고래의 관찰 데이터와 유전적 데이터, 환경 데이터를 종합해 돌고래들이 쉘링 기술을 전달하는 경로에 대한 여러 컴퓨터 모델을 만들었다. 그 결과 수평적 전달, 즉 동세대의 돌고래들끼리 사냥 기술을 전달하는 모델이 가장 유력한 것으로 나타났다. 42건의 관찰 횟수는 컴퓨터 모델을 통한 분석 데이터로는 적은 편이지만 연구진은 실제 돌고래들은 쉘링 기술을 관찰된 것보다 더 많이 사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매우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지만 몇 초라는 짧은 시간 동안 벌어지기 때문에 선박 위에 있는 연구진이 쉽게 관찰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제주 연안에 서식하는 남방큰돌고래의 모습. 핫핑크돌핀스 제공.


내셔널지오그래픽에 따르면 연구진이 관찰한 총 42회의 쉘링 장면 중 절반가량은 호주의 바다온도가 크게 상승했던 2011년 이후 2년 동안 관찰됐다. 당시의 해양 열파(熱波)로 인해 다수의 고둥이 죽으면서 돌고래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고둥 껍질이 해저에 많아지고, 덕분에 연구진이 쉘링을 관찰할 수 있었던 횟수도 늘어났을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돌고래가 동세대의 동료들 간에 새로운 기술을 전달하는 것은 환경적인 요인과도 관계가 있다고 연구진은 분석하고 있다. 이 지역의 남방큰돌고래가 쉘링 기술을 사용하게 된 것은 쉘링에 이용할 수 있는 고둥 껍질이 많은 지역에 살고 있는 덕분일 수 있다. 반대로 물고기를 몰아넣을 수 있을 정도의 큰 고둥이 드문 제주 연안에 사는 남방큰돌고래들은 쉘링 같은 기술을 사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사회적인 동물인 돌고래들은 자신이 속한 다양한 그룹 사이를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생활한다. 즉, 여러 그룹들에 속한 돌고래가 고정돼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처럼 다양한 관계로 이뤄진 그룹들을 오간다는 것이다. 와일드 박사는 “(돌고래들은) 친구랑 함께 다니다가 가족과 함께 다니기도 한다”며 “이는 하루 안에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또 돌고래들이 어떻게 환경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이기도 하다. 와일드 박사는 “동료들로부터 배울 수 있다는 것은 새로운 행동이 집단 내에 빠르게 전파될 수 있다는 것”이라며 “이 같은 방식으로 다른 개체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종은 더 잘 생존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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