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심, 투자 아닌 대여"..'사모펀드 1라운드' 검찰 판정패

유설희 기자 2020. 7. 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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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투자(검찰 주장)냐, 대여(정경심 교수 주장)냐.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사모펀드 의혹의 핵심 쟁점이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4부(재판장 소병석)는 지난달 30일 조 전 장관 5촌 조카 조범동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하며 ‘대여’라고 결론지었다. 사모펀드 의혹에 대한 실체적 진실을 규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조씨의 1심 선고 결과는 중요하다. 경향신문은 1일 법원이 왜 ‘대여’라고 판단했는지 조씨 판결문을 자세히 살펴봤다. 조씨 선고 결과가 정 교수의 재판에 미칠 영향도 함께 분석했다.

정경심 동양대 교수. 우철훈 선임기자


■검찰 “투자” vs 정경심 “대여”

투자인지 대여인지를 두고 검찰과 정 교수가 공방을 벌였던 혐의는 ‘업무상 횡령’이다. 검찰은 조씨가 정 교수와 남동생에게 5억원씩 두 차례에 걸쳐 총 10억원을 투자받은 대가로 코링크프라이빗에쿼티(PE)의 회삿돈 1억5700여만원을 정 교수에게 지급했다고 봤다. 검찰은 정 교수 남매가 코링크PE에 컨설팅을 해준 적이 없는데도 코링크PE와 허위 컨설팅 계약을 맺어서 돈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정 교수가 조씨가 횡령한 돈인 줄 알면서 돈을 지급받았다며 정 교수와 조씨를 업무상 횡령죄의 공범으로 묶어 기소했다.

조범동=이번 저희 펀드에서 투자 들어가는 것이 있는데 투자기간 1.5년 예상에 수익률 15~19% 사이가 나올 듯한 건이 있습니다. 전에 말씀드렸던 대로 이번에 같이 들어가시면 될 듯 해서 연락 올렸습니다.

정경심=투자기간이 1.5년이네요?

조범동=네 18개월 예상됩니다. 분기별로 투자금 수익 선분배도 가능합니다만, 조금 수익률이 떨어집니다.

2015년 12월 정 교수와 조씨가 주고 받은 문자메시지다. 당시 정 교수는 조씨와 여윳돈을 어떻게 운용할지 논의한 끝에 조씨에게 5억원을 투자했다. 검찰은 문자메시지에 나오는 ‘투자’ ‘수익률’ 같은 단어를 근거로 정 교수가 ‘투자’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씨가 정 교수에게 투자 구조를 설명한 문자메시지를 두고 정 교수가 ‘간접 투자’가 아닌 ‘직접 투자’를 한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반면 정 교수 측은 ‘대여’라고 반박해왔다. 빌려준 돈에 대한 이자를 받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정 교수 측은 문자메시지에 나오는 ‘이자’라는 단어를 근거로 들었다.


■조범동 재판부 “용어 중요치 않아…원금 보장 여부로 따져봐야”

170쪽 분량의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금전 수수의 법률관계가 대여인지 투자인지는 당사자들이 사용한 용어에 구애 받을 문제는 아니다”라고 했다. 재판부는 ‘투자’인지 ‘대여’인지를 가르는 기준을 제시했다. 먼저 재판부는 ‘원금을 보장하기로 하는 약정’인지 ‘원금 손실의 위험을 전제하는 약정’인지 여부를 따져야 한다고 했다. 금전 수수의 대가로 원금과 기간 등에 따른 이자를 지급하도록 돼 있는지, 아니면 수익 활동을 일정 비율에 따라 정산하기로 돼 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정 교수는 조씨에게 “자금 exit(투자금 회수)하는 건 언제 나오나요?”라고 묻는 등 투자금 상환을 수차례 독촉한다. 재판부는 이런 대화들을 보면, 정 교수와 조씨가 ‘원금을 보장하기로 하는 약정’을 맺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재판부는 정 교수 남매가 받은 돈을 계산해보면, 수익활동에 따라 정산 받은 돈으로 보이지 않는다고도 했다. 재판부는 “10억원의 10%에 해당하는 이자를 월별로 나눠 받았는데, 이는 통상적인 이자지급 방식과 유사하다”고 판시했다.

■“정경심, 어느 투자처에 투자하는지 관심 없었다”

정 교수가 코링크PE에 어느 정도 관여했는지도 쟁점 중 하나였다. 재판부는 “정경심은 조범동이 이 돈을 가지고 어느 투자처에 투자하는지는 관심이 없었다”며 “자신들의 세금을 줄이면서 원금을 보장 받고 이자를 획득하는 것에만 주된 관심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정경심, 정○○(남동생)이 코링크PE의 사업에 관여했거나 주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려고 했다는 정황은 기록상 나타나 있지 않다”고도 했다. 조씨가 정 교수에게 ‘중한산업펀드체결’에 관한 기사 링크를 보내주었든, 조씨가 “좋은 수익률도 보답하겠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든 이를 투자라고 보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검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정 교수 남매와 조씨는) 금전소비대차에 기초한 자금을 이전 받거나 그에 대한 대가를 지급하기 위해 형식적으로 컨설팅 계약의 외관을 형성하고자 했던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고 결론지었다. 다만 재판부는 당시 정 교수와 조씨가 ‘대여’ 형식으로 계약을 맺을 수 있었는데도 허위 컨설팅 계약을 맺은 것에 대해 지적했다.

왜 정 교수는 허위 컨설팅 계약을 맺는 형태로 이자를 지급받은 걸까? 조씨의 검찰 진술에 따르면, 정 교수는 조씨에게 세금을 줄이는 방법을 요청했다고 한다. 이에 조씨는 사업소득으로 잡혀 세금을 줄일 수 있다며 컨설팅비 명목으로 지급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재판부는 “세금을 줄이기 위해 허위의 자료를 작출한 행위, 공직자 재산 신고 과정에서 일부 다른 신고를 한 행위는 비난받을 수 있다”면서도 “행위 자체로는 횡령 행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것으로 평가하기 어렵다”고 했다.

■정경심 재판에 미칠 영향은?

재판부는 14억원을 출자 받고도 100억원으로 부풀려 금융위원회에 거짓 변경보고한 혐의(자본시장법)에 대해서도 무죄를 선고했다. 따라서 이 혐의의 공범으로 얽힌 정 교수도 무죄가 될 수 있다. 다만 정 교수와 조씨가 지난해 8월 조 전 장관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사모펀드 의혹 관련 증거들을 없애라고 지시한 혐의(증거인멸·은닉교사)는 유죄로 판단했다.

법조계에서는 정 교수 사건을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법 형사25-2부(재판장 임정엽)도 조씨 재판부와 비슷한 판단을 내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똑같은 증거를 놓고 사실관계를 따지는 만큼 판단이 크게 달라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판사는 “새로운 법리를 두고 다투는 사건이 아니어서 비슷한 판단이 나올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정 교수 변호인은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정 교수 재판부가 같은 판단을 내린다는 보장이 없지 않느냐”며 “(조씨 판결문에서) 참고할 부분이 있으면 (변론에) 참고하겠다”고 말했다. 검찰은 조씨 판결 선고 직후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는 않았다.

유설희 기자 s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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