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도 지워도 남는 '흔적'..박사방 피해자 "종일 검색만"

오선민 기자 2020. 7. 1. 21:2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앵커]

"너무 힘들어서 잊고 싶은데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계속 촬영물을 찾아다니고 삭제를 해야 합니다." 박사방의 피해자가 재판에 나와서 한 말입니다. 저희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의 지금을 취재했습니다. 내 정보가 또 퍼지지 않을까 하루 종일 검색하는 게 일상이 됐고, 아무리 애써도 지워지지 않는 흔적에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오선민 기자입니다.

[기자]

"안녕하세요, 혹시 ○○○씨 되시나요?"
"인터넷에 당신의 사진이 돌아다닙니다"
"꽤 옛날부터 돌아다녔습니다"

지난 3월 30대 여성 A씨가 받은 메시지입니다.

[A씨 : 제 얼굴 사진이 7장 정도가 있었고 신분도 모르는 어떤 여자 나체 사진이 있었고.]

A씨의 신분증 사진과 함께 입에 담기 어려운 거짓 정보도 적혀 있었습니다.

미국 사이트인 '텀블러'였습니다.

바로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A씨 : 한 달이 지나니까 연락 와서 '이걸 삭제하기로 했다, 이것도 다행히 빨리 진행되는 편이다']

그렇게 지워지는 줄 알았습니다.

[A씨 : 까먹고 있다가 최근에 다시 들어가봤더니 이런 이름의 사이트로 또 공유가 되고 있었어요.]

취재진과 함께 당시 게시물 키워드를 검색해 봤습니다.

[A씨 : 이렇게 '○○○ △△△ □□□ 텀블러' 그리고 이미지를 검색하면 이게 저거든요.]

대인기피증을 호소하던 A씨는 결국 직장을 그만뒀습니다.

[A씨 : 한번 온라인에 올라간 건 아예 삭제가 안 되는 건가. 범인 잡는 건 이제 솔직히 포기하게 되고 지워지기만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박사방 사건 피해자 B씨는 재판에 나와 "삭제 지원 센터가 종료되는 6시부터는 제가 살기 위해 새벽 내내 눈이 빠져라 피해 촬영물을 모니터링했다"고 했습니다.

재판정은 눈물바다가 됐습니다.

[안지희/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 변호인단 : (삭제하려면) 범죄 피해자라는 것도 소명을 해야 합니다. 사건사고 사실 확인원까지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고요.]

접근이 어려운 해외 사이트엔 내용증명을 보내 지워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오선희/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 변호인단 : 지금 예산으로는 검색할 수 있는 사이트가 한계가 있고 퍼져나가는 속도는 너무 빠르고.]

결국 피해물을 찾는 일부터 왜 지워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것까지 피해자가 다 감당해야 합니다.

[김여진/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피해지원국장 : 피해자가 찾아다니는 과정 없이 플랫폼 운영자들이 먼저 이것을 찾아서 삭제하게 하는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인적사항 삭제에 몇 주씩, 사이트마다 요청하는 동안…

[앵커]

법도 있고 지원도 있지만 피해의 흔적을 다 지우지는 못합니다. 특히 촬영물에만 집중되다 보니 이름과 주소, 학교나 직장처럼 누군지 특정할 수 있는 정보들은 제때 지워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어서 이지혜 기자입니다.

[기자]

디지털성범죄 피해자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여전히 남아있는 내 흔적들입니다.

가해자들이 수사와 재판을 거쳐 처벌을 받는다고 해도, 범죄 게시물은 지워지지 않고 있습니다.

피해자가 이걸 삭제하려고 하면 해당 사이트에 삭제 요청을 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하나씩, 하나씩 지워집니다.

하지만 완전히 지워진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수많은 정보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사진도, 동영상도 마찬가지입니다.

현행법에는 피해자들의 인적사항을 유포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고, 불법정보를 유통해서도 안 된다고 적혀있습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디지털 성범죄 게시물을 24시간 내에 삭제하도록 하고 있지만 일반 정보는 해당되지 않아 통상 몇 주가 걸립니다.

포털도 문제입니다.

n번방 피해자들이 겪은 사례를 보시면, 네이버 블로그에 'n번방 피해자 누구누구다', '불쌍하다' 등의 단어와 함께 범죄 게시물이 게시됐습니다.

피해자 측이 이 게시물을 발견하고 황급히 포털 측에 삭제 요청을 했습니다.

포털 측은 이 게시물을 지웠습니다.

이제 어떻게 됐을까요?

얼마 뒤 다시 사이트에 접속해 보니, 이 블로그에는 게시물이 그대로 떠 있었습니다.

10번이나 반복됐습니다.

조회수가 오르고 광고가 따라붙으니 이 블로거는 같은 일을 반복한 겁니다.

이처럼 경제적 이득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끊는 게 급선무입니다.

또 포털이 디지털성범죄의 흔적을 반드시 지우도록 강제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피해자 측은 말합니다.

[오선희/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 변호인단 : 정부 대응도 TF처럼 단기간 대응이 아니라 정식으로 업무협조 체계를 만들고 예산이 확보돼서 안정적으로 이 정책이 5년 뒤, 10년 뒤(까지) 이뤄져야 된다는 거예요.]

(영상취재 : 조용희 / 영상디자인 : 김충현·박성현·이정회 / 영상그래픽 : 김정은·김지혜)

Copyright © JTBC.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