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기간 지난 음식? 일상다반사" 전직 어린이집 교사의 폭로

박준규 객원기자 입력 2020. 7. 2. 09:28 수정 2020. 7. 3.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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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동안 일했다가 부당해고를 당한 전직 어린이집 교사 A씨가 엉망인 급식·위생 상태를 폭로했다.

A씨는 지난 1일 MBC ‘이승원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에 출연해 “제가 근무한 어린이집에 음식뿐만 아니라 비누나 화장지 등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다. 아이들이 집에 가서 부모님께 이런 상황을 이야기했다. 부모님들은 믿을 수 없는 상황이니까 교사에게 물어봤고 교사인 저는 사실대로 아이들 말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원에서 권고사직을 당하게 됐다. 부당하게 해고가 됐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자신이 일한 어린이집의 급식 상태를 폭로했다. 그는 “유효기간 지난 음식이 있는 건 일상다반사다. 제가 권고사직 당한 어린이집 뿐만 아니라 그전에 근무했던 다른 곳도 다 똑같은 상황”이라며 “고춧가루나 쌀 같은 경우 최하위 상품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A씨는 조리사도 1명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는 “(가뜩이나) 재료가 안 좋은데 조리사 한 분이 굉장히 많은 인원을 책임져야 한다. 음식의 질은 말도 못 할 정도로 안 좋은 상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가정어린이집은 조리사 한 분으로 가능할 수 있지만, 민간어린이집은 아이들이 100명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며 “법적으로는 보조 조리사를 둬야 하지만 서류상 가짜로 친인척을 올려놓는 경우가 많다. 조리사 한 명이 그 많은 인원을 위한 (요리를 만들 때가 많다). 대부분 어린이집이 그렇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진행자가 ‘조리과정도 굉장히 대충대충 할 수밖에 없겠다’고 하자 A씨는 “조리실에 가보면 (급식 또는 간식이) 준비가 안 된 상황이 (종종 있었다). 교사들도 아이들을 방치해두고 도와드릴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시청이나 구청에서 감사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1년에 몇 번씩 점검이 나온다. 하지만 급습은 드물다. 시청에서 언제 (감사를) 나간다고 시간까지 알려준다”며 “그러면 원장들은 감사 전날 유효기간 지난 걸 자신의 집으로 전날 가져가거나 아침에 조리사에게 다 치우라고 한다. 그러면 창고나 아이들 재료를 비축해두는 공간에다 옮겨놓는다. 감사가 끝나고 나면 원상 복귀해서 다시 사용한다”고 말했다. 시청이나 구청이 형식적으로 관리·감독을 했다는 것이다.

A씨는 ‘위생상태는 어떠냐’는 물음에는 충격적 이야기를 내놓았다. 그는 “예를 들어서 아이들은 손을 자주 씻어야 한다. 그런데 (근무 당시) 원장님께 비누를 사달라고 하니 유효기간이 10년 지난 비누를 갖고 오더라. 손 세정제도 코로나나 안산 유치원 사건 때문에 다 비치했겠지만, 교사들은 (기존에 없었던 걸) 다 안다”며 “아이들한테 발걸레로도 쓸 수 없는, 곰팡이가 있는 수건을 제공하기도 했다. 아이들이 병에 안 걸리는 게 이상했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이 위생상태가 안 좋다는 걸 눈치챌 것 같다’는 질문에는 “원장이 엄마들한테 어머니, 아이들 안전을 위해서 함부로 들어오시면 안 돼요’라며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며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원장들이 아이들을 걱정해서가 아니라 본인의 부정을 감추기 위한 게 대부분이다”고 했다.

‘원장의 개인비리도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예를 들면 나라에서 아이들 1인당 식비가 나온다. 오늘 음식이 닭곰탕이고, 닭이 5마리 필요하다고 하면 원장이 그만큼 닭을 산다. 그런데 닭을 1마리만 주고 4마리는 가져간다. 이런 식의 비리는 기본이다”고 했다.

또한 A씨는 “이건 제가 직접 경험했다. 경기도는 최상품 과일을 각 어린이집의 인원 대비 교사와 아이들 간식으로 준다. ‘원장님 과일이 왔는데 아이들 나눠줘도 될까요?’ 물어보니 원장이 ‘아니요. 제 방에 갖다 놓으세요’라고 하더라. 심지어 자기 차에 실으라고 했다”고 폭로했다. A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나눠준 마스크도 원장이 다 가져갔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이 일반적이겠냐’는 진행자 질문에 A씨는 “제가 이곳에 10년 넘게 일했기 때문에 친한 교사들이 되게 많다. 너희 어린이집은 어떠냐고 물어보면 나오는 얘기가 다 똑같다”며 “(다른 교사들이) ‘우리 어린이집도 60명인데 오렌지 3개로 슬라이스 잘라서 나눠줬어’라고 이야기한다. 어린이집을 여러 군데 옮겨봤지만 다 똑같았다”고 했다.

A씨는 어린이집 원장들이 교사들 블랙리스트를 만든다고도 했다. 그는 “원장들이 교사들한테 엄청나게 협박을 한다. 그 중에 하나가 블랙리스트다”라며 “제가 얼마 전에 직접 당한 거다. 고발을 했더니만 협회 회장과 총무가 (어린이집에) 왔다. 내부고발자인지 엄마들인지 파악했다. (내부고발자가 확인되면)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심지어 사진, 전화번호, 주소까지 띄웠다. 그러면서 ‘너네들이 어디 가서 일할 수 있을 것 같아?’라고 얘기했다. 너무 치욕적이었다”고 덧붙였다.

‘내부고발한 걸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A씨는 “본인들의 자녀와 손자, 손녀가 병에 걸렸다면 침묵하시겠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후회하지 않는다”며 “모든 어린이집의 교사들 조리사 분들, 유치원 교사들이 양심선언해야 한다. 본인 자식이 아니면 괜찮냐”고 말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급식 및 위생 상태에 대한 우려는 지난달 안산의 한 유치원에서 발생한 ‘햄버거병 사태’로 촉발됐다. 지난달 16일부터 안산의 한 유치원에서는 식중독 증세를 보이는 아이들이 다수 발생했다. 보건당국이 원생과 가족, 교직원 등 29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장 출혈성 대장균 검사에서 49명이 확진됐다. 이 가운데 15명은 장 출혈성 대장균 합병증인 용혈성요독증후군(일명 햄버거병) 증세를 보이고 있다. 5명은 신장 기능이 떨어져 투석 치료를 받는 상태로 알려졌다.

식중독 사고가 2주를 훌쩍 넘겼지만 보건 당국은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보존식과 조리기구에선 장출혈성 대장균이 발견되지 않았고, 식중독 원인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음식은 폐기처분돼 확인이 불가능하다.

학부모들 불안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일부 학부모는 자녀가 다니는 유치원이 부실한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 사립유치원 감사 결과를 찾아 검색하고, 유치원에서 간식을 먹지 못하게 하는 등 자체적인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박준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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