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나 좀 살려줘" 친구에 토로했던 고 최숙현..관계기관은 뒤늦은 수습

이동환 입력 2020. 7. 2. 18:56 수정 2020. 7. 20.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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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팀 입단 후 대인기피증·우울증·공황장애..신고에도 관계기관은 '무응답'
고 최숙현씨의 고향 친구 추모씨는 2일 국민일보에 생전 고인과 나눈 모바일 메신저 대화 내용을 공개했다. 추씨 제공


“나 좀 살려줘….” “나도 뛰어내릴까 고민 중…먼저 가도 되냐.” “행복하고 싶다.”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선수 고(故) 최숙현(23)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까지 친구에게 어려움을 토로해왔던 걸로 밝혀졌다. 경주시청 지도자와 선배들의 가혹행위에 시달리며 생긴 정신과적 증세로 약을 복용하고 수차례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할 정도로, 최씨가 처한 상황은 내내 위태로웠다. 최씨는 올해 초부터 여러 기관을 통해 피해 상황을 알렸지만 그가 맞닥뜨린 건 ‘무응답’ 뿐이었다. 결국 최씨는 23년의 짧은 생애를 외롭게 마감해야 했다.

최씨의 고향인 경북 칠곡에서 중학교 시절부터 8년 동안 친구로 지낸 전 고교 동창 추모(23)씨는 2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숙현이가 지난 6월 중순까지 매일같이 울면서 하소연했다. 저에게 ‘같이 죽자. 이렇게 살아서 뭐하냐’고 말할 정도였다”고 토로했다.

고 최숙현씨의 고향 친구 추모씨는 2일 국민일보에 생전 고인과 나눈 모바일 메신저 대화 내용을 공개했다. 추씨 제공


추씨에 따르면 최씨가 힘들다는 말을 꺼낸 건 지난 2016년 2월부터다. 당시 최씨는 경주시청에 공식적으로 입단하기 전 팀과 함께 뉴질랜드 전지훈련을 다녀왔고, 이때부터 가해자들의 폭행과 폭언이 시작됐다. 추씨는 “숙현이가 실업팀에 입단한 뒤부터 대인기피증, 우울증, 공황장애까지 앓고 약을 복용했다”며 “죽고 싶다고 말할 때마다 항상 ‘올해만, 이번 주만 버티고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했는데 결국 이렇게 됐다”며 흐느끼며 말했다.

추씨가 최씨와 지난해 4월부터 12월까지 한 카카오톡 대화엔 괴로운 심경을 밝히는 메시지가 가득했다. 최씨는 지난해 4월 11일 오전 2시쯤 추씨에게 “또 공황(장애) 왔다. 약 먹었는데…나 좀 살려줘”라고 토로했다. 추씨가 “밖으로 나가라”고 조언했지만, 최씨는 “숙소 생활 해서, 선배도 있어서 못 나가…누가 끄집어내줬으면 좋겠다. 그냥 포기해야겠다”며 “내가 잘못한 게 아닌데 왜 이렇게까지 힘들어(야)하지”라고 답했다.

고 최숙현씨의 고향 친구 추모씨는 2일 국민일보에 생전 고인과 나눈 모바일 메신저 대화 내용을 공개했다. 추씨 제공


지난해 9월 20일엔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메시지도 있었다. 최씨는 오후 10시쯤 추씨에게 “나도 뛰어내릴까 고민 중. 먼저 가도 되냐. 장례식장에 와서 육개장은 먹고 가달라”고 했다. “감정이 없었으면 좋겠다”거나 “행복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씨는 남자친구의 데이트 폭행에도 시달렸던 걸로 드러났다. 최씨는 지난해 12월 추씨에게 “남자친구에게 맞았다. 팔에 멍 다 들고 목도 졸라서 빨개졌다”고 토로했다.

고 최숙현씨의 고향 친구 추모씨는 2일 국민일보에 생전 고인과 나눈 모바일 메신저 대화 내용을 공개했다. 추씨 제공


새해를 맞아 추씨에게 “조금만 더 살아보자 언젠가는 빛 볼 날 오지 않겠냐”는 메시지를 보냈던 최씨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최씨는 지난 2월 경주시청 감독과 팀닥터 등을 고소했고, 4월엔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와 대한철인3종협회에 폭력행위를 신고하는 등 여러 루트로 피해 상황을 알렸지만 제대로 된 답변을 듣지 못했다.

오히려 가해자들은 경주시청 소속 선수들에게 ‘최씨가 원래 정신병이 있었다’거나 ‘폭력을 본 적이 없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요구하기까지 했다. 이에 최씨는 지속적으로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추씨는 “올해 부산에서 만났을 때 팔목에 자해한 흉터를 봤다”고 했다.

고 최숙현씨의 고향 친구 추모씨는 2일 국민일보에 생전 고인과 나눈 모바일 메신저 대화 내용을 공개했다. 추씨 제공


2일 청와대 국민청원이 제기된 이후에야 뒤늦은 수습이 이뤄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브리핑에서 최윤희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에게 스포츠 인권 문제를 챙기라고 지시하며 “신고한 날이 4월 8일이었는데도 제대로 조치되지 않은 건 정말 문제”라며 “재발하지 않게 철저히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시했다. 문체부는 부랴부랴 최 차관을 단장으로 한 특별조사단을 꾸려 사건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경주시체육회도 이날 운영위원회를 열고 가해자 감독과 선수들을 대상으로 경위를 조사했다.

이날 최씨의 유골이 보관된 납골당을 찾은 추씨는 “새벽에 가위 눌려서 울며 전화한 숙현이의 하소연이 아직도 생각난다”며 “숙현이가 고생하고 고통스러웠던 시간만큼 가해자들이 무거운 처벌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 끝을 흐렸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 희망의 전화 ☎129 / 생명의 전화 ☎1588-9191 /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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