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공정 뛰어넘는 '원자' 반도체로 메모리 용량 1000배 높인다

김승준 기자 2020. 7. 3.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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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과기원 연구진, 9개월의 검증 거쳐 '사이언스' 게재
1비트를 저장할 때, 수천 개의 원자집단(왼쪽)을 사용하지 않고, 소수의 원자들을 직접 제어해 저장할 수 있다. 기존 메모리 1비트 면적에 수천 개의 비트를 넣을 수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2020.07.03 / 뉴스1

(세종=뉴스1) 김승준 기자 = 국내 연구진이 현재 반도체 기술이 맞닥뜨린 '나노 미세 공정'의 한계를 넘을 수 있는 신개념 반도체 소재를 발견했다. 이 소재를 이용하면 현재보다 같은 크기의 칩에서 1000배가량 더 많은 정보를 처리할 수 있다.

0과 1로 이뤄진 디지털 세계와 현실을 이어주는 방법의 하나가 반도체다. 반도체는 소자의 특성에 따라 특정 조건에서 성질이 바뀌며 0과 1을 표현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크기에 이르러서도 이런 특성을 유지하는 반도체 소자가 개발되며 더 작은 기계로 더 많은 정보를 처리할 수 있게됐다. 현재의 문제는 소자의 크기가 점점 작아지면서 반도체가 가진 디지털과 현실을 이어주는 역할을 효율적으로 못하게 되는 단계까지 도달했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울산과학기술원(유니스트·UNIST)은 UNIST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이준희 교수팀이 메모리 소자의 집적도를 1000배 이상 높일 수 있는 산화하프늄(HfO2) 활용법을 발견했다고 3일 밝혔다.

이번 연구 성과는 세계적으로 저명한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이준희 교수팀 연구진이 단독교신저자로 게재됐다. 순수 이론분야 논문이 사이언스에 게재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기존 반도체는 스케일링 현상으로 크기가 작아지면 물성이 약해지다가 사라져 버린다. (왼쪽) 반도체 원자 메모리의 경우 원자들이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점에서 독립적인 피아노 건반과 비슷하다. 동일한 공간에 수천 개의 개별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 (오른쪽)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2020.07.03 / 뉴스1

고체 내부의 원자 사이의 거리는 매우 가까워 스프링 같은 탄성 상호작용을 크게 느낀다. 하나의 원자가 움직이면 물결이 퍼지듯 주변 원자들도 스프링(상호작용)에 의해 함께 움직이게 된다. 고체의 진동은 단일 원자의 진동으로 묘사되지 않고, 수천 개의 원자가 같이 움직이는 집단의 진동으로 표현된다. 이 때문에 고체 내의 원자를 개별적으로 제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다.

이준희 교수 연구팀은 산화하프늄에 대해 연구하던 중 특정한 전압 조건에서 이러한 상호작용이 끊기는 현상을 발견했다. 그 결과 산화하프늄 한쪽에 에너지를 가해줘 원자를 움직이게 만들면 그 움직임이 물결치듯 주변 원자로 퍼지는 게 아니라, 에너지를 받은 부분만 상태가 바뀌게 만들 수 있었다. 이렇게 하면 산화하프늄 결정이 부분부분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이를 이용해 0과 1을 표현하는 반도체로 이용할 수 있다.

연구진은 산소 원자 4개씩을 개별적으로 조절해 메모리 (반도체) 소재로 응용할 수 있음을 입증해냈다. 산소 원자 4개가 신호를 주고 안 주고에 따라 상태가 바뀌게 만들어 0과 1을 표현할 수 있게 됐다. 현재의 반도체는 0과 1을 표현하기 위해 원자 수천 개 이상이 필요하다.

현재 반도체 소자가 '0과 1'(1비트)을 표현하기 위해 필요한 크기는 수십~수백 나노미터(nm, 10억분의 1미터) 가량 된다. 이번 연구 결과를 응용할 경우 대략 0.5nm의 크기에서 0과 1을 표현할 수 있게된다. 이는 크기가 작은 편인 원자 몇개 규모다. 연구진에 따르면 제곱센티미터당 0.1 테라비트를 표현할 수 있는 현행 실리콘 기반 반도체 공정의 한계를 돌파해 같은 크기에서 500테라 비트를 표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0.2 나노미터 영역의 산소 원자 몇 개만을 완벽히 스위칭시키는 모식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2020.07.03 / 뉴스1

원자 몇 개만을 이용해 정보를 저장해, 기존 메모리 소재로는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초집적·초저절전형 반도체 구현에까지 이를 가능성이 열렸다. 산화하프늄은 기존의 반도체 공정에서 사용되는 물질이기 때문에, 다른 신소재 개발 연구 결과보다 상용화가 빠를 가능성이 크다.

이준희 교수는 "이번 연구는 9개월간 오랜 검증 과정을 통해 사이언스지에 논문으로 출간하게 됐다"며 "검증 과정 중에 (사이언스지가 아닌) 다른 유력 학술지에 이번에 발표한 이론으로 예측할 수 있는 현상을 보고한 실험 연구 논문이 나오기도 했다"며 사이언스 지와의 검증 과정을 소개하기도 했다.

최신 과학 이론이 유용성을 따지기 위해서는 논리적 완성도와 기존 현상에 대한 설명 능력을 살피는 것 뿐 아니라 새로운 현상에 대한 예측 능력도 하나의 기준이 된다. 이 교수의 논문이 게재되기 전에 다른 학술지를 통해 간접적으로 이론의 유용성에 대한 증거가 생긴 셈이다.

이어 "초집적 반도체 분야에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중요한 기반이 될 수 있는 이론"이라며 "(소수의) 원자단위를 이용해 정보를 저장하는 기술은 현 반도체 산업에서 마지막 집적 저장 기술이 될 확률이 높다"고 연구의 파급력을 설명했다. 이번 연구가 상용화되기 위해서는 이에 맞춘 미세 전극 기술과 제어 기술 또한 개발돼야한다.

이준희 울산과학기술원(UNIST)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부교수가 지난 1일 세종시 어진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기자실에서 '원자단위까지 개별 조작가능한 강유전체 메모리 개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 부교수는 원자 메모리 발견으로 스케일링 효과를 제거해 메모리 반도체 용량을 1000배 이상 향상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2020.7.3/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계산과학 등 신연구방법론으로 새로운 물성과 기능을 구현하는 신소재 개발 추진하는 '미래소재 디스커버리사업' 및 데이터 집약형 공학·과학분야 문제해결을 지원하는 '국가초고성능컴퓨팅 센터'의 지원으로 이뤄졌다.

한편 과기정통부는 디지털 뉴딜과 연계해 '소재연구데이터 플랫폼 구축' 사업을 추진할 예정으로, 향후 데이터 기반 소재 연구가 더욱 활성화되도록 지속해서 지원할 계획이다.

seungjun24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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