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급소라며 찔렀지만 한국 반도체 더 강해졌다

한종수 기자,권혁준 기자 2020. 7. 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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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수출규제 1년] <상> 기술 국산화로 '탈일본' 성과
산업생산 차질 없이 日 기업만 되레 부정적 영향 미쳐

[편집자주]일본이 한국의 반도체 생산에 꼭 필요한 핵심 소재에 대해 수출규제 조치를 내린 지 1년이 됐다. 우리 핵심산업인 반도체에 타격을 가하기 위한 사실상의 '경제침략'이었지만 1년이 흐른 지금, 당시 우려와는 달리 정부와 산업계의 발빠른 공조로 국내 소재·부품·장비 산업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계기로 만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한일 양국 갈등이 수그러들지 않아 일본이 2차 수출규제에 나설 가능성이 큰 만큼 이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두 차례에 걸쳐 지난 1년간의 일본 수출규제에 대한 대응과 성과를 짚어보고 향후 대책을 모색해본다.

서울 강남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딜라이트룸에 전시된 반도체 웨이퍼의 모습. 2019.8.7/뉴스1DB

(세종=뉴스1) 한종수 기자,권혁준 기자 = "일본의 수출규제 단행 이후 지난 1년간 국내 핵심소재 산업은 놀라울 만한 성과를 냈습니다. 그중에서도 SK머티리얼즈가 '파이브나인'(순도 99.999%를 뜻함) 이상의 에칭가스(기체 상태의 고순도 불화수소) 개발에 성공한 것을 꼽을 수 있죠.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당장 국산화가 어렵다고 봤기 때문입니다"(산업당국 관계자의 말)

최근 산업계에서 들려온 소재·부품·장비(소부장)의 국산화 성과는 실로 대단하다. 지난해 7월 일본이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인 불화수소, 극자외선(EUV)용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3개 품목에 대해 수출규제 조치를 단행하자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잡은 업계의 뚝심이었다.

솔브레인의 '트웰브나인'(99.9999999999%) 불산액(액체 상태의 고순도 불화수소) 생산기술 확보, 동진쎄미캠의 불화아르곤(ArF) 포토레지스트 공장 증설, 미국 듀폰의 EUV용 포토레지스트 한국(천안) 공장 건설 투자 유치, 코오롱인더스트리의 폴리이미드 생산설비 구축 등 SK머티리얼즈의 에칭가스 개발 성과 전후로 국산화·대체수입선 확대 소식은 줄줄이 이어졌다.

이러한 산업계의 선제 대응에 힘입어 일본의 수출규제 단행 이후 애초 우려했던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에서 생산 차질은 일어나지 않았다. 일본에서 공급하지 않겠다면 우리가 직접 만들겠다는 업계의 강한 홀로서기 덕이었고, 이러한 배경에는 정부의 핵심소재 산업에 대한 과감한 행·재정적 지원이 큰 힘이 됐다.

반도체 소재부품 제조업체인 A기업 관계자는 "정부로부터 소재·부품기술 연구개발(R&D)비를 지원받아 소재 국산화에 기여할 수 있었다"며 "수요대기업과의 개발 소재에 대한 공급 협약 덕도 있지만 무엇보다 정부의 재정 지원이 없었다면 이루기 힘든 성과였다"고 말했다.

경북 구미산업단지 내에 있는 코오롱인더스트리 구미사업장을 방문해 불화폴리이미드 제조 공정을 살펴보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제공) 2020.4.1/뉴스1DB

◇소부장 자립 총력…핵심품목 공급안정에 큰 성과

정부는 지난해 7월 일본의 수출규제 단행 이후 곧바로 소·부·장 경쟁력 강화대책을 발표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전기전자, 기계·금속, 기초화학 등 공급안정이 필요한 100대 품목을 선정하고, 이 가운데 안보상 수급 위험이 큰 20개 품목을 추려 1년 내 공급 안정화 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여기에 투입되는 R&D 예산만 7년간 7조8000억원에 달한다. 자체 기술개발이 어려울 경우 글로벌 소부장 기업과 인수·합병(M&A), 해외기술 도입을 통해서라도 기술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이를 위해 2조5000억원의 M&A 자금을 투입기로 했다.

기술 개발이 시급한 연구 분야엔 초과근무 허용, 핵심소재 공급망 확보를 위한 반도체 관련 해외기업 M&A땐 법인세 감면 등 세제·규제특례 조치도 내놨다.

소부장 산업 모든 주기를 지원하는 내용을 담은 '소부장 특별법' 전면 개정을 비롯해 기업 맞춤형 서비스 제공과 기업애로 상시접수를 위한 소재부품 수급대응지원센터 구축 등 지원 조직 신설도 주목할 만하다.

과거 정책이 소재부품 시장 자립화보다는 글로벌 공급망(GVC)에 의한 수입이 이득이라는 경제적 관점이었다면 이제는 '산업안보' 차원에서 해외 의존도를 낮추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 나타날 새로운 글로벌 공급망에도 선제 대응하겠다는 취지다.

정부의 과감한 정책적 지원 속에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는 우리가 대일 의존도를 줄이고 자립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오히려 일본 내에선 지난 1년간 자국 경제만 피해를 봤다는 자조적 반응이 확산하고 있다.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일본에서 소재부품을 수입하는 149개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이들 기업은 한국 소부장 경쟁력(100점 기준)을 지난해 7월 89.6에서 올해 6월 91.6까지 상승했다고 평가했다.

일본 도쿄신문은 "수출규제로 공급 불확실성이 높아져 한국 경제에 큰 타격을 입힐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지만 삼성전자를 비롯해 반도체 생산에 지장이 생기지 않았다"며 "(오히려) 일본 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썼다.

©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일본 2차 보복 가능성…소부장 2.0 전략 내놓는다

이제 관건은 한국의 소부장 산업 경쟁력이 더 이상 일본에 의존하지 않고 완전 독립을 수년 내에 이룰 수 있느냐다. 한일 관계 악화에 따른 일본의 2차 보복 조치가 나올 수 있어 마음을 놓을 상황도 아니다.

일본이 지금은 불화수소·포토레지스트·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3개 품목만을 대상으로 규제하고 있지만 블랭크마스크 등 반도체 소재의 추가 규제는 물론 전기차배터리, 정밀화학원료 등 여러 품목으로 규제 대상을 확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정부는 일본의 추가 보복과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대비해 기존 100대 핵심전략 품목을 338개 품목으로 늘리고, 바이오·소프트웨어 등 품목을 확대하는 내용의 '소재부품장비 2.0 전략(가칭)'을 마련하는 중이다.

또 미래 첨단 소부장을 선도할 차세대 전략기술 개발을 위해 올해 하반기 소부장산업 특화단지를 5개 이상 지정·육성하고, 실증시험과 성능 테스트 지원, 산업생산 패스트트랙 적용 등 지원 전략도 논의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핵심소재 기술을 보유한 해외 기업 유치를 위해 보조금, 입지·규제 특례, 세제 등 다각적인 지원책을 준비하는가 하면 외국 첨단기업과 공동 R&D 확대 등을 통해 첨단기술의 브레인을 확충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한다.

정부 관계자는 "추가 보복 움직임에 대해 대비하고 있지만 이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사태가 생기지 않게 외교적 노력을 다하는 것"이라며 "지난 1년간 정부와 산업계의 공조로 잘 극복해온 것처럼 앞으로 민관 협력을 더욱 강화에 위기를 돌파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소재·부품·장비산업 현안 점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는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2020.6.24/뉴스1DB

jepo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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