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은 건 6·25전쟁 때문이었다
소련은 정식 참전 않고도 큰 이득
이승만은 입지 강화, 독재의 길로
장제스는 국민의 후한 지지 얻어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38선을 넘은 후엔 38 이북을 비군사구역(非軍事區域)으로 설정하자는 묘한 주장도 했다. 유엔에서 중국의 지위 회복과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열린 토론회에 중국대표를 초청하자고 목청을 높인 것도 영국이었다. 미국의 함대 파견도 찬성하지 않았다. 베이징 측 관방대표들과의 관계도 단절된 적이 없었다. 얄밉고 현명한 처신 덕에 정전 후 홍콩 문제로 중국과 마찰을 빚지 않았다. 무역량도 늘어났다.
발등의 불 끄기 바쁜 중국에 참전 빌미 줘
당시 신중국은 토지개혁과 대만 해방, 국민당 잔존세력 처리 등 해결할 일이 많았다. 북한이 동북 해방에 도움 준 혈맹이라 하더라도 전쟁에 끼어들 형편은 아니었다. 미국도 막 대할 나라가 아니었다. 미국은 중국이 국·공연합으로 8년간 항일전쟁을 펼 때 중공에 신경을 많이 썼다. 중공의 항일 근거지 옌안(延安)에 미군이 상주하고 로스앤젤레스 탁아소도 세웠다. 중국을 방문한 미국 기자의 보도나 정보원들의 보고도 국민당보다는 중공에 호의적인 내용이 많았다. 정전협정에 조인한 미군 사령관조차 얄궂은 말을 남길 정도였다.
한반도 분단은 1945년 초 얄타에서 루스벨트와 스탈린이 주고받은 밀약 때문이었다. 북한이 38선을 깨는 바람에 국제전으로 비화하는 것은 당연했지만, 소련이 뒤로 숨어버리자 미국도 전면에 나서지는 못했다. 국무부의 국 정도로 취급하던 유엔 깃발 내걸고 유엔군 명의로 참전하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었다. 38선을 휴전선으로 대치해서 전쟁 전으로 되돌려 놓기는 했지만 유엔에서 체면이 깎였다.
중국은 항미원조에서 승리했다며 자화자찬이 굉장했다. 신중국 선포 1년 후, 압록강까지 도달한 세계 최강의 미군과 유엔군을 38선까지 밀어붙이다 보니 그럴 만도 했다. 대만 해방의 기회를 놓쳤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천이(陳毅·진의)가 지휘하는 화동야전군(華東野戰軍) 30여 만 명의 대만 출병을 앞두고 한반도에 전쟁이 벌어지고 미국이 대만해협 봉쇄했다”며 애석해하지만 당시 중국은 대륙에서 철수하며 이전시킨 대만의 해군과 공군을 감당할 능력이 없었다. 인명 손실도 엄청났다. 고구려 원정에서 떼죽음 당한 수양제(隋煬帝) 때를 능가했다.
정식으로 참전도 안 하고 최대의 이익을 본 나라는 소련이었다. 소련은 중국의 항미원조 초기인 1950년 가을부터 겨울까지 공군 13개 사단을 중국에 파견했다. 주 임무는 방공이었다. 1년 후 미그15 전투기 372대와 장비를 중국 공군에 무상으로 넘기고 철수했다. 중국은 “역시 큰형님은 다르다”며 입이 벌어졌다. 소련은 60여 개 육군사단과 공군 22개 사단의 장비도 중국 지원군에 제공했다. 이번엔 무상이 아니었다. 소련이 등을 떠미는 바람에 지원군 명목으로 참전한 중국은 인명 손실에 빚쟁이까지 됐다.
소련에 진 빚 13억 달러 갚느라 허덕거려
가천대 라종일 교수님의 탁견도 빠뜨릴 수 없다. “6·25전쟁을 계기로 한국의 안보와 군사력은 강화됐다. 전쟁 초기 한국군은 10만 내외였다. 정변을 일으키기엔 어림도 없는 규모였다. 군사력 보강은 전쟁 발발 10년 후 군사정변을 가능하게 했다. 미국은 민족통일 전쟁은 침략 전쟁이 아니라는 스탈린의 말을 흘려 듣지 않았다.
서독은 재무장을 추진했다. 당시 서독은 경찰서가 보유한 권총 몇십 정이 다였다. 동독의 인민경찰군은 한반도의 상황을 재현할 수 있는 공격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서독은 나토군의 일부라는 명분으로 모병을 할 수 있게 됐다. 일본 못지않은 전쟁특수도 누렸다. 급증하는 전쟁물자 수요를 감당할 시설과 기술을 갖추고 있었다. 서독 초대 경제상 에르하르트도 한국에서 일어난 전쟁 때문에 독일경제가 크게 발전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이승만과 장제스는 득을 봤다. 전쟁 발발 직전 이승만의 대통령직은 풍전등화였다. 주먹 불끈 쥐고 북진통일 외치며 독재의 길로 들어섰다. 반대하는 사람은 빨갱이로 몰아버렸다. 장제스의 처지도 비슷했다. 역사는 냉혹하다. 일전을 불사하겠다며 국민을 흥분시키는 지도자보다 전쟁을 막기 위해 모욕을 감수하고 굴욕을 삼킨 지도자에게 후한 점수를 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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