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곳 많은데 곳간 비어가.. 재정 메울 증세 논의 서둘러야 [이슈 속으로]

박영준 2020. 7. 5.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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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증세' / 재정건전성 급속도로 악화 / 코로나 위기에 복지수요 갈수록 증가 / 관리재정수지 112조 적자.. 74조나 ↑ / 1년 사이 국가 채무도 100조원 늘어 / 역대 정부 '심리적 마지노선' 넘어 / 정부는 "증세 불가" 손사래 / 홍남기 "국민 공감대 있어야 현실화 / 비과세·감면 제도 정비 등으로 확충" / 전문가 "재정지출 확대 증세 불가피 / 고통분담 차원.. 중장기적 논의 필요"
“당장 증세를 하자는 게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도 결코 동의하실 수 없다는 입장인가.”(정의당 장혜영 의원)

“5년 정도의 중기재정 계획을 짜면서 증세보다는 기존의 세입 기반을 좀 더 여러 다른 방법으로 확충할 수 있는, 예를 들어서 비과세·감면 제도를 정비한다든가….”(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홍남기 부총리는 지난 6월17일 21대 국회가 시작하고 처음으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중장기적 증세 논의에도 확실히 선을 그었다. 홍 부총리는 “증세 여부에 대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라며 “국민적 공감대가 있어야 증세가 현실화될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했다. 사실상 증세 불가 입장을 못 박은 셈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를 뛰어넘는 경제 위기를 맞았다. 사상 초유의 전 국민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포함한 확장적 재정 정책이 계속되고, 급기야 기본소득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급속한 고령화 등의 여파로 복지수요는 급격히 늘 수밖에 없다. 쓸 곳은 많은데 세수는 줄어든다. 최근 1년 사이 국가채무는 100조원 가까이 급증했다. 증세를 논의할 ‘적기’라는 전문가들과 증세 논의 자체가 어렵다는 정부의 간극이 크다.

◆코로나19 경제위기 속 ‘증세’는 금기어

3일 기획재정부 등의 취재를 종합하면 향후 5년간, 최소 문재인정부 내에서는 증세 논의는 없으리라는 것이 중론이다. 홍 부총리는 향후 5년간의 재정 수입·지출 계획에 증세를 포함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다.

코로나19라는 특수상황에서 증세를 논의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정부의 첫 번째 논리다. 코로나19에 따른 경제 상황 악화로 확장적 재정 정책은 물론이고 소상공인, 중소기업 등을 대상으로 한 세제 감면 혜택 등을 시행하는 동시에 증세를 논의한다는 것 자체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홍 부총리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증세 논의와 관련해 “액셀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는 식”이라고 말한 것이 대표적이다.

증세 논의가 가져올 ‘후폭풍’도 정부와 정권에 부담이다. 코로나19는 물론이고 국내외 이슈와 과제들이 산적한 상황에서 소위 ‘블랙홀’이라고 불리는 증세 논의를 하기에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집권 4년차를 맞아 할 일이 많은 문재인정부가 모든 이슈를 집어삼키는 증세를 논의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라며 “증세는 집권 초기에나 가능한 것이지 문재인정부 내에서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증세 논의를 한다고 해도 문제다. 부자 등 특정 계층이나 종합부동산세처럼 ‘핀셋 증세’로 급증하는 재정 수요를 뒷받침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결국 보편 증세로 가야 한다. 법인세는 문재인정부가 2018년 최고세율을 22%에서 25%로 인상했지만 올해 세수는 오히려 감소할 전망이다. 40%에 달하는 소득세 면세자 비율을 낮추자는 지적이 꾸준히 이어지지만 저소득층에 대한 증세라는 ‘조세저항’은 피할 수 없다.

1977년 10%로 정해진 뒤 한 번도 인상이 없었던 부가가치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절반 수준이라는 지적과 함께 증세 논의의 ‘단골손님’이지만 마찬가지로 물품이나 서비스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국민 저항이 불 보듯 뻔하다. 기재부 관계자는 “부가가치세의 경우 남북통일 등 유사시를 대비해 여력을 확보해 둬야 하는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악화하는 재정건전성… 국책연구기관도 “증세 논의 불가피”
정부의 증세 불가 입장이 무색하게 재정건전성 악화 속도는 급속도로 빨라지고 있다. 정부가 제출한 35조3000억원 규모의 3차 추가경정예산 기준으로 정부의 실제 재정 상태를 나타내는 관리재정수지는 2019년도 본예산 기준 37조6000억원 적자에서 112조2000억원 적자로 적자폭이 74조6000억원 불었다. 2019년 본예산 기준 740조8000억원이었던 국가채무도 840조2000억원으로 100조원 가까이 증가한다. 역대 정부가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겼던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비율 3.0%,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40%는 각각 5.8%와 43.5%로 급증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증세 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꾸준히 이어지는 이유다. 먼저 국책연구기관에서 증세 논의에 불을 붙였다. 김유찬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은 지난 5월 재정포럼 특별기고를 통해 “현재와 같은 재난의 시기에는 고통 분담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인식하에 필요한 증세를 뒤로 미루지 말고 적절한 규모로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 원장은 특히 확장적 재정지출의 글로벌 공조를 전제로 재정지출 확대규모와 동일한 규모의 증세, 재정지출 확대규모보다 작은 규모의 증세 모두 경제 침체기에 긍정적인 경제 활성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재정지출확대 수요가 있는 만큼 그에 준해 재정수입도 확대해야 하는데 그 방법으로서 중장기적으로 증세가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을 지낸 황성현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코로나19로 국가채무가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올해 코로나19가 없었더라도 재정적자와 국가채무가 늘어나는 것으로 재정계획이 잡혀 있었다”며 “코로나19는 일시적 요인이지만 인구 고령화를 포함해 구조적으로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려야 하고 국가채무를 사용하는 것도 한계가 있어 증세는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조세부담률과 국민부담률이 여력이 있는 만큼 매년 세제개편 때마다 수조원대 규모라도 꾸준한 증세를 통해 지속가능한 재정 운영을 하고 경제성장으로 이어지게 해야 한다”며 “증세는 당연히 정치적 저항이 따를 수밖에 없지만 정치권이 국민에게 솔직하게 현실을 알리고 설득을 해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박영준 기자 yj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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