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의 정치 읽기] 타협 없는 정치판..'독주'의 代價는 비싸다

2020. 7. 6.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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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열린민주당 등 의원들이 미래통합당이 불참한 가운데 상임위원장 선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요새 벌어지는 일을 보면 ‘시간 여행’을 떠나는 느낌이다.

지난 6월 23일 법원은 지난해 11월 문 대통령을 비판하는 내용의 대자보를 단국대 천안캠퍼스 건물 내에 붙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 모 씨에 대해 건조물 침입 혐의를 인정해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이에 대학생들이 반발하고 있다.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는 6월 28일 오후부터 29일 사이 전국 430개 대학 캠퍼스에 대자보 5000장을 부착했다고 밝혔다. 대자보 제목은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란다. 제목만 봐도 ‘옛날’ 생각이 난다.

이제는 입법부마저 나서 ‘시간 여행’을 시켜주고 있다. 50여년 만에 다시 등장한 볼썽사나운 행태, 그리고 34년여 만에 다시 등장한 희한한 모습을 통해, 입법부가 과거를 소환했다.

지난 6월 29일 더불어민주당은 ‘드디어’ 17개 국회 상임위원장을 모조리 가져갔다. 다수당이 상임위원장을 독식한 것은 전두환 정권 이후 처음이다. 국회의장이 야당 의원을 ‘독자적’으로 상임위에 ‘배치’한 것도 박정희 정권 이후 처음이다.

요즘의 ‘권력 독점’ 현상은 과거와 아주 유사하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 시절에는 지방선거가 없었다. 정부가 도지사·시장 등을 임명했다. 때문에 시·도지사는 정권과 ‘초록은 동색’인 사람으로 채워졌다. 당시 역시 지금처럼 동일한 정치 색깔이 입법 권력과 중앙 권력 그리고 지방 권력을 지배했다. 물론 차이도 있다. 지금 지방 권력은 선거에 의해 형성됐다.

민주당에 묻고 싶은 것이 세 가지다.

하나는 지역구에서 미래통합당을 찍은 1185만명 유권자는 무시해도 되는 것인지다. 또 하나는 민주주의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인 관례를 이런 식으로 무시해도 되는 것인가다. 마지막은 민주당이 생각하는 ‘일하는 국회’라는 것은 도대체 어떤 모습인지다.

민주당은 첫 번째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할 것이다. “기다릴 만큼 기다렸고, 할 만큼 했다”고. “여당 원내대표가 야당 원내대표가 칩거하고 있는 산사까지 찾아가는 성의를 보였으면, 할 만큼 했다.” 이런 식의 답일 터다. 여기서 궁금한 점이 생긴다. 과거 국회는 심지어 8월에 개원한 적도 있다. 그때 여당과 국회의장은 무능했거나 할 일을 하지 않았나. 이에 대한 여당의 예상 답변은 앞서 언급한 두 번째, 세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과 이어질 수 있다.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초유의 위기 상황”이라는 점을 강조할 것이다.

지금이 ‘초유의 위기’라는 데는 동의한다. 그러나 초유의 위기 상황일수록 국민이 단결해야 한다. 단합된 국민의 힘이야말로 가장 막강한 위기 극복 수단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제1야당을 배제하고 관례를 무시하면, 국민의 단합된 힘을 통한 위기 극복은 기대하기 어렵다. 위기일수록 자신의 것을 던지고 상대 당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국민을 단합시켜야 한다. 여기서 배려와 양보는,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챙기고 나머지를 선심 쓰듯 던져주는 것과는 다르다. ‘선례’를 ‘관례’로 둔갑시켜 기존 관례를 묵살하면서까지 원하는 법사위원장 자리를 가져가면서, 상대 당에 상임위원장 몇 자리 주는 것을 배려한다 하면 과연 어떤 야당이 그런 제안을 받아들일 것인가.

‘일 잘하는 국회’도 그렇다. 국회가 일을 잘해야 함은 당연하다. 문제는 ‘어떻게’ 일을 잘할 것인가다. 국회는 대의기관이다.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타협할 줄 알아야 하고 양보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대의민주주의의 핵심이다. 그런데 관례를 무시하며 법사위원장 자리를 차고앉아 “일하는 국회를 만들어야 하니 우리 말을 들으라”는 식은 대의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모습이다.

통합당 역시 여당에 끌려가서는 안 된다 생각하는 모양이다. 의원 속성상, 장관급인 상임위원장을 웬만하면 하고 싶을 텐데 욕구를 참아가며 일사불란하게 여당에 대항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특히 정진석 통합당 의원이 보여준 모습은 다선 의원으로서 귀감이 될 만하다. 정진석 의원은 야당 몫 국회부의장 자리를 거부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국회부의장을 해봤자 제대로 역할을 하기 힘들 것이라 판단했을 터다. 정치판에서 보기 드문 결단이다.

어쨌든 이제 여권은 하고 싶은 것은 모두 할 수 있는 ‘여권을 위한 파라다이스’를 만들었다. 공수처법을 다시 고쳐 예정대로 공수처장을 임명하겠다는 말이 여당 지도부에서 스스럼없이 나오는 것만 봐도, 이제 준비는 끝났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은 여당에 좋기만 한 것일까? 그렇지만은 않을 것 같다.

이유는 이렇다. 만일 정치적 재편성(political realignment), 즉 이념 지형의 변화가 일어나고 이것이 완성됐다면 지금같이 여당이 독주하는 환경은 분명 여당에 상당히 유리할 것이다. 정치적 재편성이 어느 정도 진행됐거나 완성됐다면 고정 지지층이 그만큼 늘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여당 주도 ‘일’이 성공하건 그렇지 않건 재집권에는 큰 영향이 없다. 그런데 정치적 재편이 일어나지 않았거나 일어났더라도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면, 지금 같은 정치 생태계는 여당에 결코 유리하지 않다. 당장은 여당이 하고 싶은 일을 모두 처리할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독박’을 쓸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이념 지형의 변화, 즉 정치적 재편성이 어느 단계인가가 매우 중요하다. 이를 판단하기 위한 초보적 접근 방식으로 대선 때 진보 후보들이 받은 득표의 합과 총선 때 진보 정당이 획득한 득표의 합을 비교해보자.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와 심상정 후보 득표의 합과, 이번 총선 때 민주당과 정의당 그리고 민중당이 지역구에서 득표한 표의 합은 거의 비슷하다. 투표율을 배제한 상태에서 전체 유권자 대비로 계산하면 그렇다. 반대로 대선 당시 보수 진영이 받은 득표의 합과 총선에서 보수 정당의 득표 합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총선 때 보수 진영 득표율이 대선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떨어진다.

상황을 종합하면 아직 정치적 재편성이 구체화됐다고 보기 힘들다. 물론 보수 측이 안심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대선에 비해 중도층의 통합당 이탈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물론 총선과 대선 득표를 단순 비교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총선보다 대선은 정당 선호에 의한 투표보다는 대선 후보 개인에 대한 선호 투표가 두드러진다. 때문에 득표율을 두고 섣부른 판단을 내리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정치적 재편성 과정이 완성됐다고 보기도 힘들다.

앞으로 경제위기는 더욱 심화될 것이고, 대일·대미 외교도 상당한 어려움에 봉착할 가능성이 높다. 여당은 이제 ‘독주’라는 이름의 심판대 위에 서게 됐다. 특히 미국 대선을 생각하면 그렇다. 누가 되든 북핵 문제 해법을 근거로 한 외교는 더욱 엉킬 가능성이 높고, 경제위기가 더욱 심화되면 여권은 그 해법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 맞닥뜨릴 것이다. 이때 홀로 독주해온 여당이 야당의 발목 잡기라는 상습적 핑계도 대기 어렵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66호 (2020.07.08~07.1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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