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이지스함 뛰어넘겠다"..한화시스템 '두뇌' 구미 해양연구소 가보니

구미=정민하 기자 2020. 7. 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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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사하겠습니다. 3, 2, 1 발사!"

천둥소리 같은 굉음을 내며 어뢰 3발이 표적을 향해 질주했다. 이내 탐지 센서상의 동그라미 표시가 사라졌다. 표적인 적(敵) 잠수함이 격침됐다는 의미다. 침침한 형광등 아래 회색빛 실내가 순식간에 푸른 바다로 변한 것 같았다. 파도가 거세고 배는 빠르게 움직이는 중이었지만 적함을 격추하는 데 문제는 없었다. 해양 함정전투체계(CMS)가 파도 물결과 같은 수많은 변수까지 고려해 어뢰 궤도를 계산했기 때문이다.

지난 3일 찾은 경북 구미시의 한화시스템 구미 해양연구소 CMS 시험장에는 오락실 게임기계가 연상되는 콘솔이 가득했다. 대한민국 해군의 모든 함선에 들어가는 실제 전투체계 장비와 동일한 기기들이다. 기다란 콘솔에 세로로 이어진 두 화면에는 레이더와 잠망경으로 본 함선 밖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띠-’ 잠수함을 찾으려는 음파 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KDX-Ⅰ, 장보고Ⅲ 등 우리나라 영해를 지키는 주역들이 이곳에 모여있었다. 이날 찾은 구미 해양연구소는 소프트웨어 4팀과 하드웨어 1팀 등 5개팀으로 구성된 24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지난달 기준 국내 해양 무기체계연구소 가운데서 가장 큰 규모다.

최근 한화시스템은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사업에 뛰어들었다. KDDX는 6000t급으로 기본 세종대왕급 이지스함(7600t급)보다 규모는 작지만, 미사일 요격 등 이지스함의 기본 임무 수행이 가능해 ‘미니 이지스함’으로 불린다. 한화시스템 구미 해양연구소는 감시정찰시스템·지휘통제통신시스템·사격통제시스템·항공전자·해양시스템·신사업 등 인체로 치면 두뇌 및 신경계에 해당하는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 스텔스함의 핵심 ‘통합마스트’ 무인수상정… 함정전투체계 미래를 보다

초록 테이프로 쌓인 콘솔들을 지나가면 영화 스타워즈 로봇 ‘BB8’을 닮은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통합마스트(IMAST)’가 나온다. 실물은 폭 10~11m, 높이는 16m 정도다. 선체의 갑판 가운데에 수직으로 세운 기둥을 뜻하는 마스트는 기존에는 위쪽에 안테나들이 주렁주렁 달려 적에게 탐지될 확률이 높고 유지보수도 힘들었다. 통합마스트는 이러한 단점 극복을 위해 각종 안테나와 신호기 등을 하나로 합쳤다. 스텔스 함정의 핵심 기술로 대부분의 선진 해군이 통합마스트를 사용한다.

한화시스템은 지난 10여년간 연구 끝에 다기능위상배열레이다(MFR), 적외선 탐지추적장비(IRST)를 융합한 통합복합센서 마스트를 개발했다. 여기에 4면 고정형 100% 디지털 방식 능동위상배열 레이더를 적용해 차기호위함 ‘울산급 FFX 배치(Batch)-Ⅲ’용으로 시험 중이다.

박도현 한화시스템 해양연구소장은 "KDDX 통합마스트는 울산급 FFX에 장착되는 MFR과 능동위상배열(AESA) 레이더를 통합한 복합센서마스트의 진화형"이라며 "센서·통신 안테나 간 간섭 문제를 개선해 전투함의 생존 가능성을 강화하고 전투능력을 극대화해 KDDX를 완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화시스템은 해양무인체계 개발도 서두르고 있다. 국방과학연구소 주관으로 지난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진행된 ‘복합임무 무인수상정’개발 사업에 참여해 ‘아우라(AURA·로봇 아키텍처 기반 자율무인수상정)’를 개발, 해상에서 실제 테스트도 마무리했다. 지난달부터는 인공지능(AI) 기술을 융합한 무인수상정 군집 제어 기술 개발에 들어갔다. 무인수상정은 △24시간 감시 정찰 △바닷속 지뢰를 제거하는 소해(掃海) 전력 활용 등 AI 기반 학습을 통해 인간과 비슷한 수준의 교전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시험장 위층에는 이러한 전투체계 개발을 가능하게 하는 소프트웨어 연구개발실이 있다. 컴퓨터 20여대와 캐비넷 10여개에는 광개토대왕급 구축함부터 독도급 대형수송함, 윤영하급 고속함을 거쳐 차세대 호위함에 이르기까지 한화시스템의 20년 노하우가 담겨 있다. 한화시스템 관계자는 "국내 최신 ICT 기술에 세계 표준인 오픈 아키텍처 기술을 적용해 연합·합동작전에 필수인 멀티 전술 데이터링크 통합 기술을 보유 중"이라고 했다. 연구개발실에 있는 동안 컴퓨터 온도를 낮추기 위한 팬이 쉴 새 없이 돌아갔다.

◇ 국방계 신한류 만들겠다는 한화시스템, 7조원 규모 ‘KDDX 사업’ 뛰어들어

한화시스템은 국내 대표 방산 업체로서 위상을 공고히 하고 있다. 지난해 방산 부문에서만 2조2000억원의 역대 최대 수주를 기록했다. 지난해 방산에 ICT를 더한 전체 매출은 1조5460억원, 영업이익은 858억원을 기록했다. 최근 3년간 꾸준히 증가하는 성장 추세다. 이에 힘입어 지난해 11월에는 코스피에 상장했다.

해외 군사 전문매체 디펜스뉴스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기준 한화그룹은 국내 방산업계 매출 1위, 전 세계적으로는 27위에 이른다. 1977년 삼성항공주식회사로 출발한 한화시스템은 2015년 6월 한화그룹에 편입됐다.

한화시스템은 국방계의 ‘신(新)한류’를 만들겠다는 의지도 드러내고 있다. 실제 지난해 300억원 규모의 함정 전투체계 수출을 달성한 바 있다. 지난 5월 출항한 필리핀 최신예 호위함 ‘호세 리잘함’에 ‘FFX 배치(Batch)-Ⅱ’급 전투체계가 탑재됐다.

한화시스템은 KDDX의 두뇌 역할을 할 전투체계 개발 사업을 두고 LIG넥스원(079550)과 맞붙는다. 지난달 5월 29일 방위사업청이 KDDX 입찰 공고를 낸 것을 시작으로 올 4분기쯤 최종 사업자가 선정될 것으로 보인다. KDDX는 총사업비가 최소 7조원에 달하며, 이 중 전투체계 분야만 6700억원에 달한다. 이용욱 한화시스템 사업본부장은 "한화시스템은 30여년간 축적한 노하우를 통해 새로운 함정이 나올 때마다 즉시 적합한 전투체계를 개발할 수 있다는 점이 큰 강점"이라며 "이번 KDDX 수주에 성공해 이지스함을 제치는 가장 강력한 구축함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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