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미, 경제학과 싸우고 있다" 수요 잡으려다 공급만 줄여

김도년 입력 2020. 7. 7. 00:03 수정 2020. 7. 7. 06:4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대출 억제 등 수요 억제책 폈지만
재건축 규제 등에 만성 공급부족
세금만큼 집값·임대료만 올려놔
"집값 더 뛸라" 사려는 사람 늘어
안철수 "김현미 무인도에 사나"
통합당은 김 장관 해임 추진 검토

지난 6월 17일 부동산 대책(6·17대책) 이후 청년층과 실소유자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6일 “부동산 대책이 잘 작동하고 있다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무인도에 나 홀로 사느냐”고 말했다. 미래통합당은 부동산 정책 실패의 책임을 물어 김 장관의 해임 추진을 검토하고 있다.

김현미 장관

정권 지지율이 50% 이하로 떨어지자 당·정·청은 더 급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지금 최고 민생 과제는 부동산”이라고 단언했다. 시장에선 한층 강화한 세율 인상과 대출 규제를 추가로 시행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은 규제가 수도권 집값을 잡을 수 있다는 논리에 회의적이다. 현 정부가 규제를 시작한 3년 전부터 끊임없이 같은 의견을 내놨다. 근거는 경제학 원론이다. 정갑영 전 연세대 총장이 최근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가 경제학 원론과 싸우고 있다”고 일갈했을 정도다.

수요 억제 위주 부동산 규제로 정부가 기대한 모습. 그래픽=신재민 기자

◆정부 의도는 수요 억제→집값 하락=정부 정책이 겨냥한 것은 주택 수요의 억제다. 수단은 대출 억제와 세금 강화다. 수요자가 집 살 돈을 마련하기 어렵게 하고, 집을 샀을 때 세금 부담을 높여 주택 보유의 매력을 낮추면 수요가 줄어 가격이 내려갈 것으로 예상했다. 규제 발표 직후 얼마 동안 집값 상승세가 주춤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단기적으로’ 이 같은 효과가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공급 측면에서의 실패=그러나 조금만 지나면 집값이 튀어올랐다. 정책 효과가 사라진 것이다. 수요 억제 정책은 되레 공급을 옥죄는 결과를 낳았다. 양도소득세 부담 강화가 그런 사례다. 임대사업자 등록과 가족 간 증여가 늘면서 매물이 자취를 감췄다. 초과이익환수제와 분양가 상한제 등도 재건축·재개발 지역의 공급 억제를 유도했다. 특히 분양가 상한제는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가격보다 싼 값에 집을 분양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초과 수요가 생길 수밖에 없는 대표적인 가격 통제 정책(가격상한제)이다.

부동산 규제 이후 공급 곡선의 이동. 그래픽=신재민 기자

박원순 서울시장이 재건축 이후 주택 층수를 기존 49층에서 35층으로 제한한 것도 공급을 억제했다. 공급을 억제하면 가격만 오르고 시장 내 거래량은 줄어든다.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19 회계연도 총 세입 결산’에 따르면 지난해 양도세 세수는 한 해 전보다 1조9000억원 줄었다. 같은 기간 주택 매매량이 80만5000건으로 6%가량 줄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요자가 원하는 지역에 주택이 공급되리라는 믿음을 주지 못했다.

고성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원장은 “정부가 내놓은 3기 신도시 건설 대책은 수도권 주택 수요를 흡수하기 어렵다”며 “공급 정책 실패가 집값을 잡지 못한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주택 공급자에게 세금 부과 이후 공급 곡선의 이동. 그래픽=신재민 기자

◆수요 측면에서의 실패=수도권 주택 공급은 주는데 인구는 계속 유입됐다. 이런 현상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더욱 가속화했다. 이상호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이 6일 발표한 ‘포스트 코로나와 지역의 기회’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3~4월 수도권 순유입 인구는 2만75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만2800명)의 두 배로 증가했다. 여기에 저금리 정책으로 시중에 풀린 현금이 증가했다. 주택 구매력이 있는 중산층 이상 가구는 교육 여건을 중시한다. 자립형 사립고와 특수목적고등학교 폐지 등 교육정책 변화로 서울 강남·목동 등 학군을 찾아 이동하는 수요도 늘었다. 이런 환경 변화는 수도권 주택 수요를 다시 증폭시켜 집값을 올리는 요인이 됐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주택 수요는 누른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며 “잠재된 대기 수요가 (집값 상승세 등) 상황이 바뀌면 곧바로 시장 내 수요로 전환해 가격을 올리게 된다”고 말했다.

◆집값 올리는 조세 부담=정부는 주택 거래·보유세를 올리면 증세 타깃으로 삼은 사람만 ‘고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거운 세금으로 계속 괴롭히면 언젠가 부담을 못 이기고 내놓을 것이란 계산이다. 그러나 조세 부담은 결국 시장 가격에 반영된다. 세금만큼 비용이 늘면 공급자가 공급을 줄이고, 그만큼 집값과 전·월세가 오른다. 조세를 부담하기 전보다 더 높은 가격에 상품을 거래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되기 때문에 실수요자나 세입자에게 세금 부담이 전가되는 것이다. 이는 경제원론 교과서의 ‘조세 부담의 귀착’ 부분에 나오는 기본 중의 기본 원리다.

무엇보다 경제학에서 시장 참여자를 움직이는 동력은 ‘기회비용’이다. 대출·세금 등의 규제로 실제 부담하는 회계적 비용이 늘어도 경제적 선택에 따라 잃어버리는 가치가 더 크다면 비용을 감수하는 선택을 한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 등 청와대 참모들이 종부세 강화에도 강남 아파트를 절대 팔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란 분석이다. 15억원 이상 고가 주택은 주택담보대출 자체가 어려워 다시 사기가 힘든 데다 강남권 수요 증가에 따른 자산 가치 상승 효과까지 고려하면 강남 아파트를 파는 데 따라 포기해야 할 가치가 너무 큰 것이다.

고성수 원장은 “서울 강남권은 교육, 교통, 직장·주거 근접 등 생활 인프라가 우수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수요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며 “정부 관료들이 이곳의 주택을 매각했을 때 기회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에 ‘똘똘한 한 채’로 남겨 놓으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