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누적 적자 1조, 우체국의 눈물

정철환 기자 2020. 7. 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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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수입원 우편물 8년새 35% 감소.. 택배는 경쟁 격화로 수익성 악화

지난 3일 서울 종로 대로변에 있는 한 우체국. 손님을 맞는 간판부터 여기저기 금이 가고 헐어 있었다. 창구가 늘어선 좁은 공간에는 마스크를 쓴 손님 20여 명과 소포를 나르는 철제 카트들이 어지럽게 뒤엉켜 있고, 직원들은 낡은 에어컨 아래 땀을 흘리며 일을 하고 있었다. 한 직원은 "(우편사업) 적자 때문에 (설비나 집기에) 충분한 투자를 못 하는 것으로 안다"면서 "우리는 둘째치고 손님들께 죄송한 마음뿐"이라고 했다.

금이 간 간판 -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종로5가 우체국의 낡은 간판 모습. /김연정 객원기자

우리나라 통신 서비스의 근간인 편지와 소포·택배를 담당한 우정사업본부 우편사업(우체국)이 적자 수렁에 허우적대고 있다. 6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우정사업본부 우편사업은 올해로 10년 연속 적자가 유력하다. 지난 2011년 적자 439억원을 시작으로 2018년에는 1000억원을 넘었다. 지난해까지 누적 적자는 6072억원. 인건비 증가와 우편 매출 감소로 올해는 적자 3000억원이 예상되면서 전체 적자 규모는 1조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우체국 사업의 예견된 적자

우리나라 우편사업은 정부가 운영하지만, 정부 예산은 쓰지 않는 '특별회계'라는 독립채산제로 운영된다. 다른 정부 사업처럼 예산 지원을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적자가 누적되면 우편 서비스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일선 우체국은 이미 내부 인테리어나 사무 집기를 제때 못 바꾸는 곳이 허다하다. 한 집배원은 "전기 요금 아낀다고 작년엔 에어컨·히터도 제대로 못 틀었다"고 했다. 업무 강도는 꾸준히 높아지면서 지난해 7월 '집배원 총파업' 시도도 있었다.

우편사업 적자는 기술 발달과 독점 붕괴로 이미 예견되어 온 것이다. 국내에서 스마트폰 서비스가 본격화한 2010년부터 우체국의 채산성은 악화하기 시작했다. 이메일과 모바일 메신저가 보편화하면서 주요 수입원인 일반 우편물은 2011년 43억통에서 2019년 28억통으로 35% 급감했다.

2012년엔 기업 우편물 배송 시장에서 민간 기업과 경쟁이 본격화했고, 택배 사업은 CJ대한통운, 한진택배, 롯데택배 등 대기업과 경쟁이 심해지면서 시장점유율과 수익성이 동반 하락했다.

이런 상황에서 소상공인 판로 지원(우체국 쇼핑), 민간 택배의 농·어촌 오지 배달 대행, 알뜰폰 판매까지 수익이 나지 않는 공적 역할은 늘어났다. 최근 코로나 사태 때는 공적 마스크 판매를 맡았고, 현관문 앞에 소포를 두면 집배원이 가져가는 비대면 소포 접수 서비스도 시작했다. 우체국 내에선 "할 일은 점점 느는데, 돈 버는 곳은 줄어든다"는 얘기가 나온다.

인건비는 매년 늘고 있다. 2011년 2조5213억원 수준이었던 우정사업본부의 인건비는 지난해 3조4746억원으로 38% 급증했다. 이 중 우편 부문의 인건비성 경비가 2조6086억원에 달한다. 우편사업 전체 비용(3조2131억원)의 81.2%다. 지난해 집배원의 평균 연봉은 5763만원이었다.

◇국회 입법조사처 "우편사업 살려라"

정부는 올 들어 "2023년 이후 우편 물량이 13억~18억통 수준으로 줄고, 비정규직 집배원 정규화와 임금 상승으로 인건비는 매년 1000억원 이상 증가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여전히 이렇다 할 대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우체국 폐국과 인력 감축, 자산 매각과 농어촌 우편 배송 감축 등 근본적인 대책보다는 일시적 '비용 절감책'이 고작이다. 서비스 질을 낮춰 적자를 줄이려다 보니 결국 경쟁력 악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비대면 문화 확산에 발맞춰 '보편적 우편 서비스'를 더욱 강화한다"는 우체국의 경영 목표와 정반대로 가는 것이다.

지금처럼 우편사업 적자가 누적되면 결국 요금 인상은 피할 수 없다. 일반 우편 요금은 지난해 330원에서 380원으로 15.2% 인상됐다. 우정사업본부는 "영국과 일본의 평균 우편 요금은 지난해 기준 각각 750원, 713원으로 우리나라(380원)의 두 배"라고 강조하고 있다. 우편 요금을 더 올릴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아니면 오지에 대한 서비스를 축소하거나 인위적인 인력 구조 조정을 피하기 힘들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지난 4월 "우편사업 적자를 내버려 두면 우편사업의 공적 기능이 크게 약화할 것"이라며 적자 보전 방안을 촉구했다. 우체국 금융사업(예금·보험)의 수익금으로 우편사업 적자를 메우거나, 정부 혹은 지방자치단체가 예산으로 우편사업을 지원하는 방법이 거론됐다. 입법조사처는 그러나 "금융사업 수익금으로 우편사업 적자를 무작정 메워주면 방만 경영이 조장되고, 우편사업의 부실이 우체국 금융까지 악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입법조사처는 "쌀 수매 사업(양곡관리특별회계)도 우편사업처럼 독립채산의 특별회계로 운영되지만, 올해 전체 예산의 76%가 정부 지원"이라며 "우편사업도 현행법상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영국 정부도 우편사업 매출로는 보편적 서비스와 공적 기능을 위한 우편사업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자 우체국에 '네트워크 보조금'이라는 이름의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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