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최숙현 숙소도 '지옥'..팀닥터 작년까지 근처서 살았다

김정석 2020. 7. 7.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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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출신의 최숙현 선수가 지난달 26일 부산의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최 선수의 유족은 고인의 사망 후 고인이 전 소속팀 경주시청에서 모욕 및 폭행을 당하는 내용의 녹취록을 공개했다. 사진은 고 최숙현 선수의 유골함. 뉴시스


폭행과 가혹행위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전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철인3종 경기)팀 고(故) 최숙현 선수는 훈련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와서도 마음 편히 머무를 수 없었다. 최 선수 유족이 가해자로 지목하고 있는 팀닥터(운동처방사)가 최 선수의 숙소 바로 인근에 살고 있었던 탓이다.

6일 최 선수 유족과 체육계 인사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팀닥터는 최 선수가 부산시청으로 소속팀을 옮기기 직전인 지난해까지 경북 경산시에 있는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숙소 바로 인근에 살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경주시체육회 관계자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팀닥터가 최 선수 숙소 근처 원룸에서 작년 말까지 살았던 것으로 전해들었다. 팀 숙소에 드나들었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최 선수 부친과 친구들도 같은 증언을 했다.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은 경주에 50m 길이의 수영장이 없어 경산시 경북체육고등학교 수영장 등에서 훈련을 했다. 이 때문에 숙소도 근처 원룸을 구해 사용했다. 경주시에서 매년 지원한 9억원 정도의 보조금에서 월세를 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다시 실업팀에서까지 팀닥터가 최 선수 주변에 있었던 셈이다.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폭행 의혹에 대한 경찰 수사가 확대되자 ‘제2, 제3의 최숙현’도 연이어 등장하고 있다. 최 선수처럼 자신도 폭행과 가혹행위에 시달렸다는 이들의 추가 폭로가 나오면서다.

가해자로 지목된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 감독 김모씨와 선수들이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故 최숙현 선수 사망 사건과 관련해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참석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경북지방경찰청은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에 폭행 추가 피해자가 있을 것으로 보고 2개 전담수사팀을 편성해 수사 중이다. 최 선수 외에도 팀 내에 15명이 피해 사실을 경찰에 증언했다고 한다.

경찰은 경주시체육회로부터 최 선수를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모 감독이 활동했을 당시에 있었던 전·현직 선수 명단을 확보했다. 김 감독이 근무한 2013년부터 최근까지 활동한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 전·현직 선수는 27명이다. 이 중 10명의 선수는 경기에 나갈 때만 김 감독과 함께 임시로 훈련했기 때문에 별다른 접촉이 없어 수사 대상에서 빠졌다.

경찰은 명단을 토대로 팀 선수들의 피해 사실을 파악하고 있다. 현재까지 15명 정도가 김 감독이나 팀닥터 등으로부터 폭행당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고 최숙현 선수의 동료 선수들과 이용 의원 등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고 최숙현 선수 사망사건과 관련해 피해실태를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 감독에게 지도를 받았다는 한 선수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나도 많이 맞았다. 이유 없이 때리진 않았지만 이유가 있더라도 때리는 건 아니지 않느냐”며 “철인계 중에선 우리 팀이 유일하게 맞는 팀이었다”고 말했다. 최 선수의 부친도 “폭행 정황이 담긴 녹취 자료가 다른 휴대전화에 더 있다. 필요하면 복구할 것”이라고 했다.

최문태 경북경찰청 강력계장은 “최 선수 사건 외에 팀 내에서 폭행 등 추가 피해가 있는지 수사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며 “최 선수가 생전에 고소장을 낸 곳이 검찰이어서 초기엔 검찰로부터 전해받은 고소장을 토대로 수사를 했다면, 이번엔 범위를 한정짓지 않고 동료 선수들이 당한 폭행 피해까지 함께 수사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대구지검은 기존 수사팀을 확대 개편했다. 양선순 여성아동범죄조사부장을 팀장으로 하고 아동학대 전담 검사 4명, 수사과 전문 수사관 5명 등 총 14명으로 구성된 특별수사팀을 편성했다. 특별수사팀에 피해자지원팀을 마련해 유족 심리치료와 범죄피해구조금·생계비·장례비 지원, 각종 법률 지원도 병행할 방침이다.

경상북도도 나섰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6일 “‘죄를 밝혀 달라’는 메시지를 남길 만큼 어린 선수가 겪어야 했을 고통과 괴로움을 생각하면 참담하고 비통한 마음이 앞선다. 문화체육관광부, 대한체육회와 협조해 비위 관계자에 대해 민·형사상 엄중한 책임을 물어 고인의 억울함을 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경북도는 행정부지사를 단장으로 하는 ‘스포츠인권 침해 조사단’을 꾸렸다. 도내 419명의 모든 실업팀 선수를 대상으로 폭행·폭언 등 인권침해 긴급 실태조사를 벌인다. ‘스포츠인권 콜센터’도 별도로 만들 방침이다.

하지만 가해자로 지목된 감독과 선수들은 폭행사실을 강하게 부인했다. 경주시청팀 감독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이날 긴급 소집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원회 현안질의에 나와 “폭행과 폭언 사실이 없느냐”는 이용 미래통합당 의원 물음에 “감독으로서 관리감독, 선수폭행이 일어난 부분을 몰랐던 내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드리겠다”고 말했다. 팀 감독은 “관리감독만 인정하는 것인가. 폭행과 폭언에 대해선 무관하다는 것인가”라는 질의에 “네”라고 답했다. 팀 주장과 최 선수의 선배 선수도 “(폭행한 적이) 없다”고 했다.

앞서 최 선수는 지난달 26일 부산시청 트라이애슬론 직장운동부 숙소에서 ‘나를 괴롭혔던 사람들의 죄를 밝혀달라’는 문자메시지를 가족에게 남기고 숨진 채 발견됐다. 경북체육중학교와 경북체육고등학교를 졸업한 최 선수는 2017년과 2019년 경주시청 직장운동부에서 활동하다 올 초 부산시청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경산·안동=김정석·백경서·김윤호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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