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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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봉오동전투 100주년, 홍범도 장군에 대한 오해와 진실

정원식 | 상생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입력 2020.07.0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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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 6월7일은 100년 전 독립군이 봉오동전투에서 일본 정예군에 맞서 승리한 날이다.

봉오동전투는 북간도에서 독립군 1200여명이 일본군 제19사단 월강추격대대와 남양수비대 1개 중대 500여명과 싸워 승리한 전투이다. 상해 임시정부의 기관지인 독립신문은 “일본군 전사자 157명, 중상 200여명, 독립군 전사자 4명, 중상 2명”이라고 발표하고 봉오동전투를 ‘독립전쟁 1차 대승리’라 규정했다.

정원식 | 상생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이 승리의 주역은 청산리대첩에서도 한 축을 담당했던 홍범도 장군이다. 정부는 1962년 홍 장군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그 후 홍 장군은 우리에게 위대한 독립운동가로 각인되었으나, 몇몇 사실들이 세간에 잘못 알려져 오해를 낳고 있다.

첫 번째가 봉오동전투는 ‘홍 장군 개인이 거둔 대승리’라는 오해다. 봉오동전투 승리는 최진동·운산·치흥 3형제가 이끈 군무도독부와 홍범도의 대한독립군, 안무의 국민회군 등 3단(團)이 통합한 ‘대한북로독군부’와 ‘신민단’ 등이 연합해 거둔 것이다.

임정의 독립신문을 보면 “(봉오동전투) 총사령관은 ‘대한북로독군부’ 부장 최진동이고 예하 연대장은 홍범도”라고 명시되어 있다. 특히 거부였던 최운산 장군은 사비를 들여 체코군단에서 대량의 무기를 구매하고 군량과 의복을 자체 조달해 봉오동전투 승리에 큰 견인차 역할을 했다. 홍범도 장군은 전투현장 지휘관으로 탁월한 유격전 능력을 발휘해 지형지물을 이용한 매복과 기습전으로 일본 정규군을 괴멸시켰다.

두 번째, 홍범도 장군은 ‘성명도 못 쓰는 무식인’이라는 오해다. 이 같은 오명은 초대 국무총리를 지낸 이범석 장군의 회고록 <우둥불>에서 기인한다. 김좌진 장군과 북로군정서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이범석은 청산리대첩에서의 홍 장군 공적을 저평가하며 무식한 사람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러시아 연해주 고려인문화센터에 전시된 홍 장군의 초서체 편지는 그가 지식인이었음을 증명한다.

세 번째, 홍범도 장군이 <환단고기> 발간을 지원한 것은 허구라는 오해다. 한민족의 역사 회복에 대한 열정과 환국·배달·단군조선의 후예라는 민족의식을 갖고 있던 홍 장군은 독립투쟁의 당위성을 위해 잃어버린 한민족 9000년 역사와 한민족 문화의 참모습을 밝혀준 <환단고기> 편찬에 사비를 들여 지원했다. 계연수 선생은 <환단고기> 서문에 “홍범도와 오동진 두 벗이 자금을 대어 목판에 새겨 인쇄하였다”라고 명시했다.

이처럼 홍범도 장군에 대한 오해는 과도한 공명심과 영웅·식민사관에서 기인했다고 본다. 특히 사회적 권위에 굴복해 검증없이 받아들인 과거 학계 행태는 마치 베이컨의 ‘극장의 우상’에 함몰되어 사실로의 접근을 스스로 봉쇄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는 우리의 집단기억에서 진실이 계속 왜곡되는 악순환을 낳는 배경이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홍범도 장군에 대한 최고의 예우는 객관적 사실에 기초해 역사적 인물로 복원시키는 길이다.

정원식 | 상생문화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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