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숙현 사건 '일파만파'.. 눈감고 귀닫은 관계기관들 비극 키웠다

이영균 2020. 7. 8.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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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선수 지난 2월 폭행 민원 제기에 / 경주시체육회, 감독 말만 듣고 외면 / 철인3종협회, 알면서도 '모르쇠' 일관 / 대한체육회도 두달 넘게 수수방관 / 피해자에 되레 "증거 더 내라" 요구 / 문체부·인권위도 사건 터질 때마다 / 안일 대응.. "체육계 구조개혁" 공염불 / 대구지검, 특별수사팀 꾸려 진상규명
경주지역 시민단체 회원들이 7일 경주시청 앞에서 최숙현 선수 사망에 대한 경주시의 사과를 촉구하고 있다. 경주=뉴스1
“억울하고 외로웠던 숙현이의 진실을 밝히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6일 국회 기자회견에 나선 동료들의 증언처럼 전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팀 소속 최숙현 선수는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하기까지 외로움과 두려움에 떨어야만 했다. 오랫동안 팀 내 가혹행위와 폭언 등에 시달리다 못해 도움을 호소했지만 체육계 등 관계 기관마다 눈을 감고 귀를 닫은 정황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를 비롯해 국가인권위원회의 안이한 대응도 한몫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 선수가 제대로 도움을 받지 못한 부분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책임자에 대한 엄정한 처벌을 주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태 축소·덮기에만 급급해 선수 보호 뒷전

7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최 선수는 소속팀에서 자행되는 각종 폭행과 괴롭힘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쳤지만 허사였다. 특히 스포츠인권센터를 운영하는 대한체육회와 경주시체육회, 대한철인3종협회 등 “도와달라”는 피해 선수의 호소에 누구보다 귀를 기울여야 할 체육단체가 믿음을 저버렸다.

최 선수 측이 지난 2월 경주시에 폭행 관련 민원을 제기했을 때가 대표적이다. 경주시체육회는 철저한 진상조사를 하기는커녕 가해자 중 한 명으로 지목된 김규봉 감독과 전화한 후 ‘폭행 사실이 없다’는 말만 듣는 데 그친 것으로 전해졌다. 최 선수가 문제를 제기한 사실이 곧바로 철인3종협회 관계자들에게도 알려졌지만 협회 역시 모르쇠 태도였다. 이 밖에 최 선수 측이 검찰에 고소장을 접수하자 경주시체육회 측이 ‘오히려 최 선수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식으로 고소 취하를 종용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이 과정에서 최 선수의 고소 사건을 맡은 경주경찰서도 부실 수사 논란에 휩싸였다. 최 선수의 동료들은 ‘참고인 조사 때 경찰이 피해 진술 축소 등 회유를 했다’는 식으로 폭로했다. 경북경찰청은 경주경찰서 수사의 적절성을 살피기 위해 감찰에 착수했다.

최 선수가 지난 4월 대한체육회 클린스포츠센터와 전화상담을 한 뒤 정식으로 접수한 진정서도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다. 센터는 전문조사관을 배정했지만 두 달 넘게 가해자를 불러 조사하거나 피해자에 대한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경북지역 방문이 어렵고 경찰이 조사한다는 이유로 그랬다가, 최 선수가 숨지기 전날에야 증거자료 제출을 요구했다고 한다. 당시 최 선수는 “이거 다 제가 해야 되는 거예요?”라며 조사관에게 되물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소속 팀을 관리해야 할 경주시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최 선수 가족이 수차례 폭력 사건의 부당함을 알리고 바로잡기 위해 찾았지만 방관했다는 게 유족 측 주장이다. 경주시 관계자는 “트라이애슬론 선수들이 활동하는 지역이 경산지역이라 선수들 관리에 애로사항이 많다”며 “체육행정 전반에 대해 면밀히 살펴보겠다”고 해명했다.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국가대표 출신 유망주로, 소속팀이던 경주시청팀 감독과 팀닥터, 선배들의 가혹 행위에 시달리다 지난달 26일 극단적 선택을 한 고(故) 최숙현 선수 사진. 고인 유족 제공
◆문체부와 인권위, 경찰도 도마에

주무부처인 문체부 역시 비판을 피해가기 어렵다. 지난해 1월 쇼트트랙 여자 국가대표 심석희, 여자 유도선수 출신 신유용 등의 ‘미투’ 폭로 등 체육계 폭력과 성폭행 사건이 있을 때마다 체육계 구조개혁과 재발방지를 다짐했지만 공염불에 그친 셈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체육계의 고질적인 폭력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대대적인 조사를 했던 국가인권위원회도 도마에 올랐다. 인권위는 조사 후 문 대통령에게 체육계 인권보호를 위한 독립적 조사기구 설립을 권고하기로 결정해놓고서 오랫동안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인권위는 이날 “고 최숙현 선수의 비극적인 피해와 (그 피해를) 적극적으로 살피지 못한 책임을 통감한다”고 사과했다. 이어 “무엇보다 국가적으로 스포츠를 활용하고 인식해 온 패러다임이 이러한 고질적인 피해의 전제”라며 “대통령이 중심이 돼 스포츠계의 폭력적 환경과 구조를 변혁해줄 것을 권고한다”고 밝혔다. 한편, 대구지검은 특별수사팀을 꾸려 진상규명에 나섰다. 검찰은 최 선수 사망사건과 관련해 책임이 있는 기관 등을 상대로도 수사를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경찰청은 전국 18개 지방경찰청에 2부장(경무관)을 단장으로 하는 ‘체육계 불법행위 특별수사단’을 구성했다. 특수단은 9일부터 다음달 8일까지 체육계지도자나 동료선수의 폭행, 강요, 성범죄 등에 대한 신고를 받기로 했다.

경주·안동=이영균·배소영 기자, 송용준·서필웅·이종민 기자lyg02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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