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한국전쟁 참전자에 훈장..'항미원조' 부각해 미국과 대립각 세우나
스탈린 지시 영향 아닌 '얄타체제' 도전
"미·소에 대항해 중국의 뜻과 능력 보여줘"
"그 결과 미·중·소 '대삼각' 구도 형성" 평가
중국은 지난 2일 공산당 중앙과 국무원, 중앙군사위원회 등 세 곳의 명의로 한국전쟁을 뜻하는 ‘항미원조(抗美援朝, 미국에 대항하고 북한을 도운) 전쟁'에 참전한 중국인민지원군 출신 노병들에게 ‘항미원조 출국작전 70주년’ 기념 훈장을 수여한다고 발표했다.
한국전에 의료, 철도와 운송, 통역, 민병, 기자, 작가 등으로 참여한 사람과 1953년 7월 정전 이후 58년 10월까지 북한에 주둔한 이에게도 훈장을 준다. 오는 25일까지 신청을 받아 중국인민지원군이 실제 참전한 50년 10월을 기념해 10월부터 훈장을 수여한다.
중국이 올해가 한국전 발발 70주년임을 내세우며 참전자에게 기념 훈장을 수여하겠다고 하는 건 왜일까? 그 의도를 짐작하게 하는 해설이 6일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人民日報)의 소셜미디어 계정 샤커다오(俠客島)를 통해 나와 눈길을 끈다.
주목할 건 ‘항미원조’에 대한 해석이 중국의 덩치가 커지고 미국과의 충돌이 최근 격화되는 것과 맞물려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중국의 한국전 참전 배경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마오쩌둥(毛澤東)은 왜 한국전 참전을 결심했나. 참전하라는 스탈린의 지시를 무시하기 어려웠고 또 한반도가 한국 중심으로 통일될 경우 자본주의 국가와 국경을 마주해야 하는 위험 등이 참전의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게 이제까지의 주류 설명이다.
한데 샤커다오는 중국이 항미원조를 결정한 건 그 자체가 얄타체계에 도전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반도는 왜 나뉘었나. 45년 2월 미·영·소 지도자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국제 문제 처리를 협의하며 한반도 분할의 씨앗을 뿌렸다.
얄타협정엔 중국이 참여하지 않았다. 루즈벨트와 스탈린 등 미·소 두 강대국의 지도자가 다른 나라의 의사와 상관없이 자기 입맛대로 세계를 나누고 자신의 세력 범위를 획정했다고 샤커다오는 말한다.
중국의 한국전 참전 결정은 이 같은 얄타체계에 대한 일종의 도전으로 중국이 대국의 강권 정치에 따르지 않겠다는 걸 보여준 것이라고 샤커다오는 주장한다. 전쟁의 결과 역시 중국이 미·소 양국에 중국의 뜻을 관철할 능력이 있음을 보여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정전 협정 이후 미·소는 중국의 힘을 보고 중국에 대한 인식을 바꿨으며 이는 행동으로 이어졌다. 소련은 중국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게 됐고 미국은 중국의 존재를 깊이 인식해 한국 이승만 정권의 한반도 통일을 더는 지지하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그 결과 세계의 판도는 72년 미·중 해빙에 따라 중국과 미국, 소련에 의한 대삼각(大三角) 구도를 그리게 됐으며 이러한 구도 변화의 기원을 따져 올라가면 항미원조 전쟁이 나오고 자연히 이 전쟁에서 숨진 중국인민지원군의 희생으로까지 연결된다는 논리다.
중국인민지원군이 항미원조 전쟁에 참전해 중국의 힘을 미·소 양국에 보여줌으로써 미·소가 양분하던 세계 판도를 미·중·소의 삼각 구도로 바꾸는데 커다란 기여를 했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한국전 참전 중국 노병들에게 훈장을 수여한다는 것으로 설명된다.
그러면서 샤커다오는 항미원조 전쟁의 교훈 하나를 덧붙였다. “투쟁으로서 단결을 구해야 단결이 되지, 타협으로 단결을 도모하면 그 단결은 망한다”는 것이다. 현재 각종 문제에서 충돌하고 있는 미국에 타협적 자세를 보이기보다 계속 투쟁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런 중국의 주장을 보자니 먼 훗날 혹시 중국이 미국을 앞지를 시점이 온다면 항미원조에 대한 의미가 또 바뀔 것 같다. 그때는 아마도 항미원조 전쟁이 중국의 미국 추월을 시작하는 출발점으로 선전되지 않을까 싶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