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파느니 승진 포기하는 공무원들..부동산 광기의 시대

김도년 입력 2020. 7. 9. 00:07 수정 2020. 7. 9.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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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다주택 공직자 빨리 집 팔라"
번지수 어긋난 대책에 시장 대혼란
"업무능력 아닌 집 보유로 평가하나"
정권 실세들 강남 다주택 보유에
김현미 경질 요구 국민청원 올라와
노영민 뒤늦게 "반포 집도 팔겠다"
2급 이상 1081명 보유실태 전수조사
정세균 국무총리가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제개발협력위원회에 참석하며 마스크를 벗고 있다. 정 총리는 이날 내년 보건·의료 분야 공적개발원조 예산을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뉴시스]

번지수를 잘못 짚은 부동산 대책이 시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있다. 다주택자를 21번의 정책 실패의 희생양으로 삼은 부동산 포퓰리즘의 결과다. 다주택자에 대한 압박은 청와대·여당을 넘어 행정부로 향하고 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8일 “부동산 문제로 여론이 매우 좋지 않다”며 “고위 공직자가 여러 채의 집을 갖고 있다면 정부가 어떠한 정책을 내놔도 국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고 말했다. 2급(이사관) 이상 고위 공직자 중 다주택자는 빨리 부동산을 팔라는 지시다. 지난해 말 현재 1081명(일반직 기준)에 달한다. 정무직 장차관급을 더하면 규모는 더 커진다. 각 부처와 지방자치단체는 고위 공직자 주택 보유 실태를 긴급 조사하고 있다.

공직자 다주택자 논란의 불씨를 댕긴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은 무주택자가 될 판이다. 청주 집을 판 그는 서울 서초구 반포동 한신서래 아파트를 이달 중에 팔겠다고 이날 밝혔다.

자업자득인 측면이 있다. 주택 수요를 투기로 몰아붙여 놓고선 내부에는 ‘내로남불’형 다주택자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3월 공직자 재산공개를 기준으로 청와대(29.8%)·국회(30.7%)·행정부(27.9%) 고위직 10명 중 3명이 다주택자였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과 부동산 커뮤니티에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경질 등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는 글이 줄을 잇고 있다.

이들이 집을 판다고 집값이 잡히지는 않는다. 민심을 달래기 위한 ‘쇼잉’에 공무원을 동원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집값은 못 잡고 민심잡기 쇼 “1000명 판다고 집값 내리나”

서원석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가 공직자에게 다주택 해소를 강조할수록 시장에선 ‘집값이 앞으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신호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회 국토위·기재위 소속 다주택자 의원.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이는 주택 보유를 투기로 규정하는 정부 인식의 확장판이다. 정부가 한때 장려했던 임대사업자가 이제는 투기꾼으로 몰리고 있다. 보유 기간 1년 미만 주택에 대한 양도세율을 80%까지 높이려는 여당 방안, 위헌 논란에도 전·월세 임대료 상승률을 직전 계약의 5% 이내로 제한하려는 것도 마찬가지다. 최황수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주택 보유자의 거래 비용을 낮춰 매물이 나와야 가격이 하락하는데 ‘불로소득’ 도그마에 갇힌 정부는 이런 정책을 기피한다”며 “이런 기조를 수정하지 않다 보니 땜질식 대책만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동근 명지대 명예교수는 “잘못된 정책 방향으로 인해 부동산 시장이 혼돈을 넘어 광기의 시장으로 변했다”고 진단했다.

‘부동산 광기’에 따른 대가는 크다. 당장 삶이 뒤틀리고 있다. A부처에선 강남 아파트를 지키기 위해 승진을 포기한 고위 공직자까지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승진 포기자는 “승진이 내게는 자아실현일 수 있지만, 집을 팔아 가족에게 피해를 주긴 싫었다”고 말했다. B부처 공무원은 “국장 승진 대상인 과장급 공무원이 모이면 집을 팔았는지부터 물어본다”며 “업무 능력이나 실적보다 부동산 매각 여부가 인사 평가 기준이 되는 것은 정상이냐”고 되물었다.

세율 인상은 정부의 기대와 달리 주택 가격이나 전·월세 임대료에 반영돼 실수요자와 세입자에게 귀착되기도 한다. 법인세를 높이면 상품 가격이 오르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소득주도성장을 하겠다던 정부가 거꾸로 세금, 전·월세, 대출이자 부담을 늘리고 있는 것이다. 김동원 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부동산·주식 등 자산 가격이 오르면 이를 팔아 번 돈이 민간 소비로 이어지는 ‘부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지금은 아예 거래가 실종돼 소비만 침체하고 있다”며 “다주택자를 마녀사냥식의 부동산 포퓰리즘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뒤늦게 공급 추가 방안 마련에 나섰지만, 그마저도 시장과 따로 논다는 지적이다. 고성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장은 “3기 신도시 지역은 선호도가 낮다 보니 시장 수요를 흡수하기 어렵다”며 “‘필요에 따른 공급’이 이뤄지지 않는 정책이 집값을 잡지 못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세종=김도년·임성빈·김민욱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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