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윤석열을 '영웅'으로 만드는 사람들

이가영 입력 2020. 7. 9. 00:24 수정 2020. 7. 9.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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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영 사회1팀장

이럴 줄 알았다. 하지만 그 방식이 이렇게까지 노골적일 줄은 몰랐다. 여권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찍어내려 하는 지금의 상황 말이다.

‘적폐 수사’로 정권 출범에 공을 세운 윤 총장은 1년 전 여권의 환영을 받으며 임명됐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가 정권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거라 여겼지만 여권의 인식은 달랐다. 윤 총장을 ‘자기 사람’으로 생각하며 컨트롤할 수 있다고 믿는 듯했다. 그러나 조국 전 법무장관의 수사를 기점으로 믿음은 산산이 조각났다. 여권이 윤 총장을 내치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마디로 그가 고분고분하지 않아서다. 여권이라고 봐주지 않는다는 걸 조국 사건과 울산시장 사건 등의 수사에서 보였다.

노트북을 열며 7/9

총선 전 끓던 여권은 총선 압승에 자신감을 얻어 일제히 윤 총장의 자진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그래서인지 공세가 노골적일 뿐 아니라 치사스럽기까지 하다. 명분 없이 물러나라더니 장모와 측근 검사장의 일로 몰아붙였다. 윤 총장이 미동도 없으니 지휘책임자 추미애 법무장관이 총대를 멨다. 9일까지 답을 달라는 최후통첩을 날리며 수사지휘권 반납을 요구했다.

대검 중수부가 없는 총장은 사실상 칼이 없는 검투사다. 중수부가 마음먹고 수사한 권력형 비리로 정권이 흔들린 경우가 많았다. 지금 윤 총장에겐 중수부도, 실질적 인사권도 없다. 남은 것이라곤 수사지휘권 정도다. 추 장관은 그 마지막 카드를 내놓으라고 한 거다. 윤 총장은 8일 추 장관에게 “지휘는 수용하지만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은 라인에서 배제해 달라”는 취지의 건의를 냈다. 파국은 피해 가는 모양새다. 하지만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나가라고 하지 않는 이상 임기를 마친다는 원칙은 끝까지 지킬 태세다.

원칙을 어기며 임기 중의 총장을 찍어내면 무리가 따른다. 벌써 여권은 예상치 못한 부작용에 맞닥뜨리고 있다. 윤 총장의 인기가 올라간 거다. 대선 후보 여론조사에서 상위에 랭크됐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입단속을 할 정도다.

윤 총장이 질질 끌려나가는 모습이라도 연출된다면 여론은 그에게로 향할 거다. 박근혜에 이어 문재인 정권에서도 ‘권력에 저항하다 쫓겨난 검사’가 된다. ‘영웅’이 탄생하는 과정이다. 윤 총장의 의도와는 별개로 박해받는 이미지가 강해질수록 영웅시되며 정치권에 가까워질 게다. 지금이야 10%대 지지율이지만 쫓겨난 그는 (보수적인) 유권자들로부터 환호를 받을 것이다. 윤 총장이 영웅이 되기를 바라는 이들은 그럴 힘과 조직이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거꾸러뜨리려는 이들이 그 일을 대신하고 있다.

이가영 사회1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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