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같은 곳"을 어찌하나..박원순 깊어가는 '그린벨트 고민'

최은경 2020. 7. 9.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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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여당 주택 공급 위해 그린벨트 해제 추진
"풀 수 없다"던 박원순, 이해찬에 만남 제안
2년 전에도 해제 두고 정부와 서울시 대립
文 직접 주문에 선택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
박원순 서울시장이 8일 오전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2조6000억원을 투입하는 '서울판 그린뉴딜' 추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정부와 여당의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해제’ 압박이 거세지면서 서울시가 깊은 고민에 빠진 모양새다.

지난 2일 문재인 대통령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부동산 대책과 관련한 보고를 받으며 “발굴해서라도 주택공급 물량을 늘리라”고 주문했다. 이어 여당에서 물량 확대 방안으로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해제’ 카드가 심도 있게 거론되면서 박원순 서울시장의 입에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달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박 시장은 지난 6일 취임 2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서울시로서는 정부 정책에 적극 협력해왔고 앞으로도 할 것”이라며 “다만 서울시의 기본 철학에 해당하는 그린벨트는 안 된다”고 해제 반대 의견을 확고히 밝혔다. 박 시장은 “(그린벨트는) 미래세대를 위해 남겨놔야 할 보물과 같은 곳”이라며 “그린벨트를 지키는 대신 서울시가 다른 시유지를 이미 양보했고 공급만 능사가 아니기 때문에 보유세 강화 등 여러 다른 대책이 함께 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8일 서울시 내부에서는 여전히 “해제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 시장의 지침이 분명하다”는 반응이 나왔지만 정작 박 시장 본인은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깊은 고민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이날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주택 공급 확대를 위해선 서울시내 그린벨트 일부를 해제하는 것도 필요하다”며 “필수불가결한 그린벨트라면 모르지만 해제 여지가 있는 곳이라면 (서울시가) 주택공급 확대를 위해 내놓을 수 있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5일 비공개로 가진 고위 당·정·청 협의회에서 강남권 그린벨트 해제 문제가 논의 테이블에 올랐다는 얘기도 들린다.

서울시 그린벨트 추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정부 여당의 그린벨트 해제 압박이 계속되는 가운데 박 시장은 8일 오후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비공개 면담을 했다. 서울시 핵심 관계자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면담은 박 시장의 제안으로 이뤄졌고 이 자리에서 이 대표는 그린벨트 해제의 불가피론을 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그린벨트 해제로 집값을 잡고 서민 안정에 기여하는 기대이익이 크다면 모르겠지만 그린벨트 해제로 공급될 수 있는 물량은 1만호 정도 밖에 안 된다”며 “박 시장의 기본 철학은 바뀌지 않겠지만 여당 입장도 들어봐야 할 거 같아 만남을 가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시는 정부 여당과의 협의를 거쳐 내주 초쯤 부동산 대책을 발표할 계획이다.

박 시장은 그 동안 일관되게 환경·녹지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장기미집행 도시공원 일몰제’ 시행을 이틀 앞둔 지난달 29일 “한 평의 공원녹지도 줄일 수 없으며 한 뼘의 공원도 포기하지 않았다”고 기자설명회까지 열었다. 서울시에 따르면 박 시장 재임 동안 경계선 관통 등 불합리하게 지정된 그린벨트 지역을 해제한 적은 있지만 대규모 주택공급을 위한 목적으로 지정을 해제한 사례는 없다.

지난해 8월 기준 서울시 그린벨트 면적은 149.13㎢다. 서초구가 23.88㎢로 가장 많고 그 뒤를 이어 강서구(18.91㎢)·노원구(15.9㎢)·은평구(15.21㎢) 순이다. 전체 면적 대비 비율로 보면 은평구(51.06%), 서초구(50.92%), 강북구(49.37%) 순으로 높다. 강서·노원 등지는 산이 많아 집단 거주지로 적합하지 않고 강남 3구에 주택 수요가 몰리다 보니 그린벨트 해제 예상 지역으로 서초구 내곡동 일대, 강남구 세곡동 일대가 주로 지목된다.

서울시 자치구별 그린벨트 현황.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전문가들은 문 대통령이 주택 공급 확대를 직접 주문한 데다 부동산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인 만큼 결국 그린벨트 해제가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이제 더 공급할 곳이 없다. 조율이 끝나는 대로 해제에 대한 안이 나올 것으로 본다”며 “하지만 그린벨트 해제에 따른 주택 공급 물량으로 시장이 안정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권 교수는 서울시가 현재는 해제를 강하게 반대하지만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면 이를 수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변세일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은 “서울 외곽이 아닌 도심에 주택 공급을 하려면 그린벨트 해제와 용적률 상향밖에 방법이 없는 상황”이라며 “그린벨트 해제가 일부 도움 되겠지만 서초구 같은 강남권에서는 집값을 또 한 번 자극할 우려가 있어 고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변 연구위원은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직권으로 그린벨트를 해제할 수 있지만 그러기엔 부담이 클 수 있다”며 “박 시장 역시 그린벨트에 대한 나름의 생각이 있어 신중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2018년에도 그린벨트 해제를 두고 정부와 맞붙었다. 당시에는 박 시장이 대안을 제시해 김 장관이 한발 물러섰지만 이번에는 문 대통령이 직접 물량 확대를 지시한 만큼 선택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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