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떠나는 외국인 투자 기업들.. "고용규제·강성노조 개선돼야"

석남준 기자 2020. 7. 9.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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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투자 125사 조사해보니

"내년까지 한국에서 철수하는 방안까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국내에 진출한 외국인투자(외투) 기업 관계자는 "인건비 상승으로 수익성은 나빠지는데 코로나 사태까지 겹쳐 올해는 투자와 고용을 축소하기로 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미국과 일본 업체의 합작사인 자동차 부품업체 한국게이츠는 최근 대구에 있는 공장을 닫고 한국 시장을 철수한다고 밝혔다. 1989년 국내 사업을 시작한 지 31년 만이다. 매년 50억원 안팎의 영업이익을 냈는데, 사업 구조 조정의 일환으로 한국을 떠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재계에서는 한국게이츠처럼 한국에서 철수하는 외투기업이 줄 이을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부의 반(反)기업적 규제와 강성 노조에 불만을 표하며 등 돌리는 외투 기업이 많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와 한국인사관리학회 연구진이 직원 50명 이상의 외투기업 125사를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3분의 1 이상이 한국에서의 투자와 사업 규모를 축소하겠다고 답했다. 경총 관계자는 "외투기업 눈에 비친 국내 기업 환경 성적표를 보면, 경직된 노동법제와 투쟁적인 노사관계를 우선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러스트=박상훈

◇"자녀 등교할 때 집 앞서 노조 피케팅"

경총과 한국인사관리학회 조사에 따르면 응답 외투기업의 39.2%는 "한국의 경영 환경이 다른 국가와 비교해 친화적이지 않다"고 답했다. 친화적이라고 답한 외투기업은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18.4%에 불과했다. 한국의 경영 환경이 친화적이지 않다고 응답한 외투기업들은 그 이유로 한국의 고용노동 정책 및 법률, 노사관계를 꼽았다. 고용노동 정책 및 법률과 관련해서는 경직된 근로시간제도, 기간제·파견 등 비정규직 고용 규제, 해고 관련 규제 등을 불만 사항으로 지적했다. 노사관계에선 정치권의 기업 노사관계 개입, 투쟁적인 성격의 노동운동, 잦은 파업 등이 경영상 어려움을 가중하는 요인으로 꼽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외투기업 관계자는 "파업이 한창 진행 중일 때 노조가 외국인 CEO(최고경영자) 자택 앞에서 자녀 등교 시간에 피케팅을 한 적이 있다"며 "외국인 CEO는 이를 상당한 위협으로 받아들여 노조를 고소했다"고 말했다. 외투기업은 파업 때 노조가 정치권을 찾아가면 노조 출신 정치인들이 여러 형태로 기업에 압력을 행사하는 행태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최근 정부 정책과 관련해 외투기업들은 '근로시간 단축 정책'과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을 가장 부담스러워했다. 한 외투기업 관계자는 "갑작스럽게 추진된 주 52시간 근로시간 규제로 근로자를 추가 고용하면서 인건비가 상승해 큰 부담이 됐다"고 말했다.

◇ 3분의 1은 "한국 투자 축소할 것"

외투기업은 지역 경제에 활력소가 된다.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앞다퉈 외투기업 유치에 발벗고 나서는 이유다. 반대로 외투기업이 투자·고용을 줄이거나 철수할 경우 지역 경제는 직격탄을 맞는다. 한국 시장 철수를 선언한 한국게이츠는 150명 가까운 직원이 몸담고 있고, 협력 업체만 해도 50여개에 이른다.

이번 조사에서 한국에서 투자와 사업 규모를 향후 "확장 또는 매우 확장하겠다"고 밝힌 기업은 18.5%에 불과했다. 35.5%는 "매우 축소 혹은 축소하겠다"고 답했다. 고용도 마찬가지다. "매우 축소 혹은 축소할 것"이라는 응답(43.1%)이 "확장 또는 매우 확장하겠다"는 응답(15.4%)보다 훨씬 많았다.

외투기업들은 한국의 경영 환경 개선을 위해 시급한 과제로 '시장경제에 입각한 규제 완화'와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입법'등을 꼽았다. 작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의 외국인 직접투자는 전년 대비 6.3% 증가했지만, 한국의 외국인 직접투자는 20.6% 감소했다. 조사에 참여한 외투기업 관계자는 "한국 정부는 이해 당사자인 기업들과 이견을 조율하며 정책의 효과나 실현 가능성을 분석하기보다는 급하게 정책을 내놓고 따르기를 강요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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