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죽었는데도 다 풀려나..96%는 벌금·집행유예

박민철 입력 2020. 7. 9. 21:36 수정 2020. 7. 9.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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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일하다 죽지 않게...

지난 일주일 동안 일터에서 숨진노동자 수, KBS와 노동건강연대가 집계해봤더니 모두 14명입니다.

하루 평균 2명이 일하러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겁니다.

15미터 높이 철탑 구조물에서 일하다가 떨어지고, 건설 현장에서 흙더미에 깔리고..

바로 어제(9일)도 상수도 공사를 하던 노동자가 배관 설비에 부딪혀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렇게 안타깝고 억울한 사고 뒤에 관련자들 처벌은 제대로 되고 있을까요?

KBS가 노동건강연대와 함께 최근 2년 동안의 판결문 670여 건을 전수 분석해봤습니다.

사고가 반복되는 가장 큰 이유, 박민철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2017년, 이 음료 업체에서는 노동자 한 명이 사고로 숨졌습니다.

안전 교육도 받지 않은 채 혼자서 기계를 정비하려다 기계에 몸이 끼어 일어난 사고였습니다.

숨진 노동자의 이름은 이민호 군.

당시 나이는 만 17살, 특성화고 고등학생이었습니다.

이 군의 유가족은 관련자들의 엄벌을 촉구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업체 대표에게 집행유예와 벌금 5백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이상영/고 이민호 군 아버지 : "용서는 피해자 가족이 안 하고 있는데, 판사가 용서를 하는 겁니까? 왜 판사가 용서를 해요? 판사가 용서하면 죄가 다 없어지는 거예요?"]

1심에 이어 2심 재판부도 같은 판단을 내렸고, 유가족이 요청했지만 검찰은 상고를 포기했습니다.

업체의 입장을 물어봤습니다.

[업체 관계자/음성변조 : "법인이나 그만두신 공장장님이나 대표님이나 처벌을 받았잖아요. 집행유예는 처벌이 아닌가요? "]

이런 사례는 특별한 경우일까?

KBS는 노동건강연대와 함께 2018년과 2019년에 나온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건 1심 판결문 가운데, 법원 홈페이지에 공개된 671건을 전수 분석해 봤습니다.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은 법인을 제외하면 모두 1,065명, 이 가운데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21명뿐.

전체의 1.9%였습니다.

실형 기간은 평균 9.3개월에 불과했습니다.

집행유예와 벌금형이 선고된 경우는 각각 46%와 49.5% 였습니다.

벌금의 평균 액수는 5백만 원 수준이었습니다.

숨진 노동자가 1명이든 4명이든 벌금 액수는 거의 비슷한 것도 눈에 띕니다.

'솜방망이 처벌'의 사유는 뭘까.

"피고인이 반성하고 있다", "피해자 과실이 있다", "산재 보상이 있었다"가 참작 사유로 반복됩니다.

피고인이 사단법인 이사장으로 취임해 "이사장직의 원활한 수행이 필요해 보인다"는 걸 참작 사유로 든 경우도 있었습니다.

[유성규/노동건강연대 노무사 : "중대한 범죄자로 보기 보다는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마치 자연재해와 같은 (법원이) 그런 관점에서 바라보는 거 아닌가 하는 의심, 의구심을 들게 하는..."]

이 때문에 노동계는 영국의 '기업살인법'처럼 처벌에 하한선을 두는 등 중대 재해를 낸 기업의 법적 책임을 강화하도록 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해 왔습니다.

[임선재/'구의역 김 군' 동료 : "죽음을 방치한 채 돈을 벌 수 없도록 해야 합니다. 안전하지 않으면 이윤이 없다는 교훈을 줘야 합니다."]

하지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19대 국회부터 줄곧 발의됐지만 지금까지 상임위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박민철입니다.

촬영기자:류재현/영상편집:서정혁/그래픽:최창준

박민철 기자 (mcpark@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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