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 치솟자 '펑펑' 터지더라"..새벽 3시 병원은 지옥이었다
70·80대 여성 환자 3명 사망, 27명 부상
병원 1층서 시작된 불·연기 위층 번져
소방당국, 화재 원인 전기적 요인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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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벨 울려 대피…스프링클러는 없어
"(3층) 병실에 있던 환자 한 명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오더니 '1층에서 불이 났다'고 해서 빠져나왔죠. 우리가 내려올 때 뒤에서 불길이 치솟고 (폭발음이 연달아) 막 터지더라고요."
10일 오전 11시 전남 고흥군 고흥읍 한 중형 종합병원. 환자복을 입고 허리에 보호대를 두른 노모(48)씨가 병원 쪽을 바라보며 한 말이다. 노씨는 전남 순천에서 허리 수술을 받고 이 병원에 입원한 지 일주일 만에 화재사고를 겪었다.
이날 오전 3시42분쯤 이 병원에서 불이 나 70대 여성 환자 2명과 80대 여성 환자 1명 등 3명이 숨지고, 27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불이 난 병원 간판은 검게 그을렸고, 1층(397㎡) 내부는 모두 불에 타 아수라장이었다. 노씨는 "(화재 당시) 간호사가 119에 전화하고 난리였다. 그때가 (오전) 3시 반이 넘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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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이상 노인환자 등 다수 발생
병원 1층에서 시작된 불과 연기가 위층으로 번져 60대 이상 노인 환자 등 사상자가 다수 발생했다. 소방당국은 1층 내과와 정형외과에 가연성 물질이 많이 있어 거기서 짙은 연기와 유독가스가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사망자 3명 중 2명(70·여)은 2층과 3층 계단에서 발견됐다. 두 사람 모두 병원 6층 같은 병실에 입원한 환자였다. 소방당국은 이들이 대피하는 과정에서 연기에 질식해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불로 전신 화상을 입은 환자(82·여)는 다른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오후 3시쯤 숨졌다.
병원에 있던 86명 중 20명은 1층 문을 통해 스스로 빠져나왔으나, 나머지 66명은 3층과 옥상 등에서 소방구조대가 사다리차 등을 이용해 구조했다.
이 과정에서 고흥에서 이삿짐 사다리차를 운영하는 신복수(59)씨도 현장에 달려가 본인 사다리차를 이용해 6·7·8층에서 기다리던 환자와 간호사 등 6명을 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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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 35대, 인력 450명 투입 불길 잡아
인근 주민들도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병원 인근 한 법무사사무소 여직원은 "자고 있는데 새벽에 (불이 난 병원) 주위 아파트에 사는 주민이 '(병원에서) 불이 났다'며 그 모습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영상을) 찍어서 보내줬다"며 "밤새 걱정했는데 주변 건물로 불길이 번지지 않아 다행"이라고 했다.
소방당국은 화재 당시 병원에 있던 86명 중 대부분이 고령에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여서 인명 피해가 컸던 것으로 봤다. 불이 난 병원은 지하 1층, 지상 7층 건물로 주변에 고흥버스터미널과 고흥읍사무소 등이 있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병원 관계자가 1층 내과와 정형외과 사이에서 불이 난 것을 보고 119에 신고했다.
소방당국은 인력 450명과 펌프차 등 장비 35대를 투입해 오전 6시1분쯤 불길을 완전히 잡았다. 화재 당시 병원에는 86명이 있다가 날벼락을 당했다. 입원 환자 69명, 간호사 7명, 보호자 10명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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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대상 제외
화재 원인은 전기적 요인으로 추정된다. 소방당국 내부에서는 "병원 1층 에어컨 실외기 배선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박상진 고흥소방서장은 "방화와 실화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정밀 감식을 통해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할 방침"이라고 했다.
해당 병원에는 자동 소화장치인 스프링클러가 한 대도 설치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2004년 설립된 이 병원은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대상이 아니어서다.
앞서 소방청은 2018년 190명(사망 39명, 부상 151명)의 사상자를 낸 경남 밀양 세종병원과 같은 참사를 막기 위해 '소방시설법 시행령' 개정안을 공포했다. 법령 개정 후 이 병원도 스프링클러 설치 대상에 포함됐지만, 2022년 8월 31일까지 유예 기간을 줘 아직 스프링클러를 설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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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소방당국, 화재 원인 등 조사
소방당국은 합동감식 등을 통해 화재 당시 소방시설이 제대로 작동했는지와 119 신고 후 병원 관계자들의 대처가 적절했는지 등을 확인하고 있다. 박 서장은 "화재 당시 자동화재탐지 설비가 작동해 사이렌(비상벨) 소리가 울려 간호사 등 병원 관계자들이 화재를 인식해 환자들을 대피 조치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유관 기관과의 합동감식을 통해 정확한 화재 원인 및 소방시설 작동 여부, 피해자 구조 경위, 소방·건축 등 관련법 위반 여부를 수사 중이다.
고흥=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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