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 치솟자 '펑펑' 터지더라"..새벽 3시 병원은 지옥이었다

김준희 2020. 7. 10.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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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명 사상' 전남 고흥군 병원 가보니
70·80대 여성 환자 3명 사망, 27명 부상
병원 1층서 시작된 불·연기 위층 번져
소방당국, 화재 원인 전기적 요인 추정


비상벨 울려 대피…스프링클러는 없어

10일 오전 전남 고흥군 고흥읍 한 중형 종합병원에서 불이 나 소방대원들이 현장 조사를 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3층) 병실에 있던 환자 한 명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오더니 '1층에서 불이 났다'고 해서 빠져나왔죠. 우리가 내려올 때 뒤에서 불길이 치솟고 (폭발음이 연달아) 막 터지더라고요."

10일 오전 11시 전남 고흥군 고흥읍 한 중형 종합병원. 환자복을 입고 허리에 보호대를 두른 노모(48)씨가 병원 쪽을 바라보며 한 말이다. 노씨는 전남 순천에서 허리 수술을 받고 이 병원에 입원한 지 일주일 만에 화재사고를 겪었다.

이날 오전 3시42분쯤 이 병원에서 불이 나 70대 여성 환자 2명과 80대 여성 환자 1명 등 3명이 숨지고, 27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불이 난 병원 간판은 검게 그을렸고, 1층(397㎡) 내부는 모두 불에 타 아수라장이었다. 노씨는 "(화재 당시) 간호사가 119에 전화하고 난리였다. 그때가 (오전) 3시 반이 넘었다"고 했다.

전남 고흥 중형 종합병원 화재 상황.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60대 이상 노인환자 등 다수 발생
병원 1층에서 시작된 불과 연기가 위층으로 번져 60대 이상 노인 환자 등 사상자가 다수 발생했다. 소방당국은 1층 내과와 정형외과에 가연성 물질이 많이 있어 거기서 짙은 연기와 유독가스가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사망자 3명 중 2명(70·여)은 2층과 3층 계단에서 발견됐다. 두 사람 모두 병원 6층 같은 병실에 입원한 환자였다. 소방당국은 이들이 대피하는 과정에서 연기에 질식해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불로 전신 화상을 입은 환자(82·여)는 다른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오후 3시쯤 숨졌다.

병원에 있던 86명 중 20명은 1층 문을 통해 스스로 빠져나왔으나, 나머지 66명은 3층과 옥상 등에서 소방구조대가 사다리차 등을 이용해 구조했다.

이 과정에서 고흥에서 이삿짐 사다리차를 운영하는 신복수(59)씨도 현장에 달려가 본인 사다리차를 이용해 6·7·8층에서 기다리던 환자와 간호사 등 6명을 구하기도 했다.

10일 오전 전남 고흥군 고흥읍 한 중형 종합병원에서 불이 나 소방대원들이 현장 조사를 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장비 35대, 인력 450명 투입 불길 잡아
인근 주민들도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병원 인근 한 법무사사무소 여직원은 "자고 있는데 새벽에 (불이 난 병원) 주위 아파트에 사는 주민이 '(병원에서) 불이 났다'며 그 모습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영상을) 찍어서 보내줬다"며 "밤새 걱정했는데 주변 건물로 불길이 번지지 않아 다행"이라고 했다.

소방당국은 화재 당시 병원에 있던 86명 중 대부분이 고령에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여서 인명 피해가 컸던 것으로 봤다. 불이 난 병원은 지하 1층, 지상 7층 건물로 주변에 고흥버스터미널과 고흥읍사무소 등이 있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병원 관계자가 1층 내과와 정형외과 사이에서 불이 난 것을 보고 119에 신고했다.

소방당국은 인력 450명과 펌프차 등 장비 35대를 투입해 오전 6시1분쯤 불길을 완전히 잡았다. 화재 당시 병원에는 86명이 있다가 날벼락을 당했다. 입원 환자 69명, 간호사 7명, 보호자 10명 등이다.

박상진 고흥소방서장이 10일 이날 30명의 사상자를 낸 고흥 한 병원 화재 사건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김준희 기자
10일 30명의 사상자를 낸 고흥 한 병원 화재 사건 관련 상황판. 김준희 기자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대상 제외
화재 원인은 전기적 요인으로 추정된다. 소방당국 내부에서는 "병원 1층 에어컨 실외기 배선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박상진 고흥소방서장은 "방화와 실화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정밀 감식을 통해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할 방침"이라고 했다.

해당 병원에는 자동 소화장치인 스프링클러가 한 대도 설치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2004년 설립된 이 병원은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대상이 아니어서다.

앞서 소방청은 2018년 190명(사망 39명, 부상 151명)의 사상자를 낸 경남 밀양 세종병원과 같은 참사를 막기 위해 '소방시설법 시행령' 개정안을 공포했다. 법령 개정 후 이 병원도 스프링클러 설치 대상에 포함됐지만, 2022년 8월 31일까지 유예 기간을 줘 아직 스프링클러를 설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10일 오전 전남 고흥군 고흥읍 한 중형 종합병원에서 불이 나 소방대원들이 현장 조사를 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경찰·소방당국, 화재 원인 등 조사
소방당국은 합동감식 등을 통해 화재 당시 소방시설이 제대로 작동했는지와 119 신고 후 병원 관계자들의 대처가 적절했는지 등을 확인하고 있다. 박 서장은 "화재 당시 자동화재탐지 설비가 작동해 사이렌(비상벨) 소리가 울려 간호사 등 병원 관계자들이 화재를 인식해 환자들을 대피 조치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유관 기관과의 합동감식을 통해 정확한 화재 원인 및 소방시설 작동 여부, 피해자 구조 경위, 소방·건축 등 관련법 위반 여부를 수사 중이다.

고흥=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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