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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 성소피아, 85년만에 '박물관' 취소..모스크로 전환(종합2보)

김승욱 입력 2020.07.11.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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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최고행정법원, 성소피아 박물관 지위 취소
에르도안 대통령, 성소피아 모스크 개조 행정명령에 서명
유네스코·그리스·러시아 정교회·미국 등 반발
박물관 지위가 취소된 터키 최대 관광명소 성소피아 [AFP=연합뉴스]

(이스탄불·파리=연합뉴스) 김승욱 김용래 특파원 = 터키 최대의 관광 명소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성소피아 박물관이 85년 만에 박물관 지위를 잃었다.

터키 최고행정법원은 10일(현지시간) 성소피아의 '지위'를 박물관으로 정한 1934년 내각회의 결정을 취소했다.

동로마제국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537년 콘스탄티노플(현재의 이스탄불)에 건립한 성소피아 대성당은 916년간 정교회의 총본산이었으나, 1453년 오스만 제국에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면서 오스만 제국의 황실 모스크로 개조됐다.

세계 1차대전으로 오스만 제국이 멸망한 후 터키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 된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강력한 세속주의를 앞세워 1934년 내각회의에서 성소피아를 박물관으로 전환하기로 결정했으며, 이듬해인 1935년 성소피아 박물관이 개장했다.

이후 성소피아는 연간 약 400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터키 최대의 관광 명소가 됐으며, 성소피아 박물관이 속한 '이스탄불 역사지구'(Historic Areas of Istanbul)는 유네스코(UNESCO·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의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이슬람주의를 앞세운 정의개발당 소속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집권이 이어지면서 성소피아를 다시 모스크로 전환하자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에 터키 최고행정법원은 지난달 성소피아의 지위 변경 안건에 대한 심의에 착수했다.

성소피아 박물관 지위 취소에 환호하는 터키의 이슬람 신자 [로이터=연합뉴스]

이날 최고행정법원은 "성소피아는 1453년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한 술탄 메흐메트 2세의 개인 재산이었다"며 "공화국 수립 이후 술탄의 재산을 관리하는 재단 소유물이자 모스크로 대중에게 개방됐다"고 밝혔다.

이어 "그 성격이 모스크로 규정됐고 그 외의 사용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모스크로 사용을 종료하고 성소피아를 박물관으로 규정한 1934년 내각 결정은 법률에 어긋난다"고 덧붙였다.

AFP 통신은 이 결정이 재판관 전원의 만장일치로 이뤄졌다고 전했다.

최고행정법원의 결정 내용이 알려지자 성소피아 외부에서 대기하던 이슬람 신자 수십 명은 "알라후 아크바르"(아랍어로 '신은 위대하다'는 뜻)를 외치며 환호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날 최고행정법원의 결정이 나온 직후 성소피아를 모스크로 개조하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자신이 서명한 행정명령서를 공개했다.

행정명령에는 '아야 소피아(터키어로 성소피아를 뜻함) 자미'(이슬람 사원을 뜻하는 터키어)를 터키 종교청인 '디야네트'가 관리하고 이슬람 신자의 신앙을 위한 공간으로 재개장하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성소피아 모스크로 개조 행정명령 [에르도안 대통령 트위터 캡처]

앞서 유네스코는 성소피아를 모스크로 전환하는 것에 사실상 반대의 뜻을 표명했다.

유네스코 대변인은 이날 최고행정법원의 결정이 나오기 전 AFP통신의 질의에 "세계유산 등재는 많은 약속과 법적 강제를 수반하는 일"이라면서 "해당 국가는 특정 조치가 해당 문화유산의 특별하고도 보편적인 가치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네스코는 세계유산에 특정 조처를 하려면 유네스코에 사전 검토를 요청해야 하고 세계유산위원회(World Heritage Committee) 심사도 거쳐야 한다는 입장이다. 유네스코 대변인은 이어 성소피아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이스탄불역사지구'의 박물관으로 등재돼 있다면서 이런 내용을 터키 측에도 사전에 수차례 고지했다고 말했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성소피아 박물관을 특정 종교의 건물로 만들면 세계유산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우려가 터키에서 제기되자 터키 정부는 모스크로 전환하더라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서 제외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웃 국가이자 역사적 '앙숙'인 그리스는 이번 결정에 대해 "전 문명 세계에 대한 공개적인 도발"이라고 비판했다.

리나 멘도니 그리스 문화부 장관은 성명을 내고 "에르도안 대통령이 보여준 민족주의는 터키를 6세기로 되돌렸다"고 비난했다.

이어 "이번 법원 결정은 터키에 독립된 정의는 없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줬다"고 덧붙였다.

세계 최대 정교회 교구인 러시아 정교회 역시 과거 정교회의 총본산이었던 성소피아의 모스크 전환에 반발했다.

인테르팍스 통신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레고이다 정교회 대변인은 "터키는 수백만 정교회 신자의 우려를 듣지 않았으며, 오늘 법원 결정은 이 문제와 관련해 극도의 세심함을 요구한 모든 요청이 무시됐음을 보여줬다"고 비판했다.

러시아 총대주교구는 전 세계 정교회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교구로 신자 수는 약 1억명으로 추산된다.

앞서 미국 국무부도 성소피아의 박물관 지위를 유지할 것을 촉구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1일 성명을 내고 "성소피아는 종교와 전통, 역사의 다양성을 존중하겠다는 약속의 모범 사례"라며 "모든 사람이 성소피아에 접근 가능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성소피아의 지위 변경은 이 놀라운 문화유산이 서로 다른 종교와 전통, 문화를 연결하는 다리로서 인류에 봉사할 수 있는 능력을 저해할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성소피아 박물관 천장의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 마리아 모자이크 [로이터=연합뉴스]

kind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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