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웅은 왜, 어떻게 손석희를 협박했나

차창희 2020. 7. 11.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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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제보로 인연, 사적으로 연락 주고받던 사이
김웅, '주차장 사건' 풍문 들은 후 금전·채용 요구
손석희 재차 거부하자 "감정적 복수하겠다"
법원 "협박으로 이익 취하려 해..공갈 고의성 인정"
김씨 요구한 2억4000만원 합의금이라 보기엔 지나쳐
김웅, 선고 공판 출석 [사진출처 = 연합뉴스]
약 2년에 걸친 프리랜서 기자 김웅 씨(50)와 손석희 JTBC 대표이사 사장(64) 간 '진실공방'에서 법원은 손 사장의 손을 들어줬다. 김씨가 주차장·폭행 사건 등 손 사장 관련한 일화를 형사고소 및 언론제보 하겠다며 장기간 협박한 사실과 고의성을 인정한 것이다.

1심 재판 최후진술에서 "기자로서 명예롭게 살아왔다. 한 번도 위반되는 행위를 목적의식을 가지고 해온 적 없다"고 밝힌 김씨는 결국 지난 8일 징역 6월을 선고 받아 법정 구속됐다. 김씨는 "항소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언론계 인연으로 만난 김씨와 손 사장은 사적으로도 종종 연락을 이어간 사이였다고 한다. 지난 3월 25일 김씨의 공갈미수 혐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손 사장은 "같이 일해본 적은 없지만 아직도 김웅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많이 갖고 있다"며 "같은 언론계 선후배 사이인데 이런 일로 여기까지 온 것이 안타깝다"고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두 사람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게 된 건 프리랜서 기자로 일하던 김씨가 경제적 상황이 어려워진 시기, 우연히 손 사장의 주차장 사건 관련 풍문을 듣고 나서부터다. 매일경제는 김씨가 왜 범행을 계획했고, 지난 2년 간 손 사장과 어떠한 대화를 했는지 법원에서 증거로 인정한 자료를 바탕으로 사건을 재구성해봤다.

◆ 제보자로 첫 인연…'주차장 사건' 이후 틀어져

김씨와 손 사장의 인연은 지난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 중이던 김씨는 당시 한 인터넷 불륜조장사이트의 국내 가입자들을 JTBC에 제보하면서 손 사장과 개인적으로 연락하게 됐다. 이후 둘은 종종 사적인 연락을 하고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 악화로 안정적인 수입원이 없었던 김씨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2018년 6월 20일, 8월 12일 두 차례 손 사장에게 그러한 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김씨는 같은 해 8월 26일 후배 기자로부터 "과천 공터에서 손석희가 뺑소니 치는 것을 잡았는데 차 안에 젊은 여자가 앉아 있었다"며 손 사장의 주차장 사건 관련 풍문을 듣게 된다. 이후 김씨는 8월 28일 손 사장에게 연락해 "주차장 사건을 제보받았다"며 "왜 기사화하지 말아야 하는지 이유를 한 가지만 말해 달라"고 얘기했다. 이에 손 사장은 "해당 사건이 기사화되면 나를 공격하는 사람들에게 악용될 수 있다"고 답했다.

◆ 손석희 해명에도 김웅 "만나서 얘기하자"

다음날인 8월 29일 오전 손 사장은 개인명의 은행계좌에서 주차장 사건 관련 합의금 명목의 돈을 송금했던 금융자료를 김씨에게 보냈다. 또 전화통화로 주차장 사건 당시 동승자가 있었다는 견인차 기사들 말은 거짓이라는 취지의 설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씨는 손 사장에게 직접 만날 것을 요구하게 되고 둘은 같은 날 저녁 JTBC 사옥 내 회의실에서 만나 게 된다.

해당 자리에서 김씨는 "우리 사회 현실에 비추어 선배님을 보호하는 것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니 기사화하지 않겠다. 다만 합리적 의심은 거두지 않겠다"며 보도의 여지를 남겼다. 대화가 끝나갈 무렵 손 사장은 김씨에게 "운영하고 있는 회사가 사정이 어렵다는데 괜찮냐"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김씨는 사정이 여의치 않다며 "JTBC는 사람을 어떻게 뽑느냐"고 되물었고 손 사장은 "JTBC는 사람 뽑는 절차가 매우 엄격하다"고 답했다. 이에 김씨는 "그렇잖아도 사장님 뵈러간다고 하니 저희 와이프가 '손사장님에게 잘 부탁드려'라고 얘기했다"는 말을 했다. 이때부터 김씨는 장기간 손 사장에게 채용 청탁성 문자메시지를 수차례 보내게 된다.

◆ 채용부탁 거절당하자 "환멸느낀다" 압박

이후 김씨는 9월 8일 손 사장에게 "저는 지금이라도 제목 뽑고 뭐 스트레이트 쓰려면 10분 만에 쓸 수 있다"며 "선배님과 같은 배를 타고 싶다"는 말도 했다. 결국 손 사장은 9월 12일 김씨에게 이력서를 제출할 것을 요청했고 10월 3일 김씨로부터 제출 받은 이력서를 JTBC 탐사기획국 국장에게 보여주면서 "프리랜서라도 가능하겠느냐"는 취지의 말을 했다. 담당 국장은 김씨에 대한 평판조회를 한 후 손 사장에게 "결과가 좋지 않다"며 사실상 채용이 어렵다는 뜻을 전했다. 손 사장도 김씨에게 "JTBC 인사규정상 임원 외에는 반드시 공개절차를 거쳐야 해 자신이 마음대로 사람을 뽑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손 사장의 명확한 거부 의사 표현이 있었지만 김씨는 이후에도 "저 역시 말해서 먹고 살았던 인간이지만 이젠 말에 환멸을 느낀다"(11월 8일), "난 누군가를 으르고 협박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어요 이젠"(11월 17일), "JTBC의 프로토콜을 깨뜨리고 싶지 않다고 하시니 이 방법을 제안 드립니다"(12월 5일), "상황을 끝내겠습니다. 그간 모든 제안 거부합니다. 기자로서 저널리즘 원칙은 지켜야겠습니다"(12월9일) 등 문자를 보내며 손 사장을 압박했다.

◆ 김웅 "상왕의 목을 잘라 조선일보에 갖다주겠다"

정규직 채용이 어렵다고 느낀 김씨는 2019년 1월 10일 서울 상암동의 한 주점에서 손 사장을 만나 "프리랜서라도 일하게 해 달라. 관련 계약서를 써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손 사장이 재차 거부하자 "선배님도 다른 사람과 똑같다. 복수를 하겠다. 복수는 이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 감정에 의한 것이다. 상왕의 목을 잘라 조선일보에 갖다 주겠다"는 말을 했다.

당시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는 김씨를 손 사장은 다시 앉혀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손으로 김씨를 폭행하기도 했다. 폭행 사건 이후 김씨는 1월 11~13일 매일 본인 채용 관련 장문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손 사장은 폭행 사건 관련해서도 정식으로 수사가 진행되고 기사화될 경우의 타격을 매우 걱정하는 상황이었다. 손 사장은 김씨에게 "취업 문제가 진척이 늦어서 미안하다"는 취지의 말을 하기도 했다.

손 사장은 1월 19일 김씨의 지인인 A변호사에게 "용역을 통해 월수 1000만원을 2년간 보장해주겠다"는 문자메시지를 전달했다. 이를 확인한 김씨는 같은 날 A변호사를 통해 "2억4000만원 일시금을 21일 정오까지 지급하면 모든 것을 끝내겠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손 사장은 김씨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결국 김씨는 주요 언론에 손 사장 관련 주차장·폭행 사건 제보를 했고 1월 24일부터 수많은 언론보도가 이어졌다.

◆ 김웅 측 "공갈 고의성 없어…JTBC 채용은 손 사장이 먼저 제안"

그동안 김씨는 재판에서 공갈의 고의성에 대해 "손 사장에게 다수의 이메일, 문자메시지를 보내긴 했지만 주차장 사건 등을 기사화할 것 같은 태도를 보이는 등 협박한 적은 없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또 주차장 사건은 공인의 도덕성과 관련된 문제로 충분히 취재 가치가 있는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김씨가 손 사장에게 JTBC 채용을 요구했다는 점에 대해서도 "보도 여부를 빌미로 JTBC에 취직시켜달라는 부탁은 전혀 한 바 없었다"며 "(김씨의) 기자로서의 능력, 경력을 높이 산 손 사장이 먼저 채용을 제안해왔다"고 밝혔다. 오히려 손 사장이 먼저 채용을 제안했음에도 약속을 여러 차례 어겼고 이에 김씨가 과격한 표현을 한 적은 있지만 이는 순간적인 불만의 감정 표출일 뿐 공갈의 고의를 갖고 한 말은 아니었단 취지다.

김씨는 2억4000만원의 돈을 요구하는 문자메시지를 손 사장에게 보낸 것도 "실제로 돈을 받아내겠다는 의사가 아닌 현실성 없는 금액을 제시하면서 손 사장이 주차장 사건을 무마하려하지 말고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라는 의미"라고 주장했다.

◆ 법원 "5개월 간 사적 이익 추구" 실형선고…"피고인 재능 안타깝다"

하지만 법원은 김씨의 주장을 일체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련의 김씨, 손 사장 간 갈등에 대해 재판부는 "(김씨가) 주차장·폭행 사건의 언론 보도 등을 빌미로 피해자를 협박해 재산상 이익, 재물을 취득하려고 했다고 인정된다"며 공갈행위 및 공갈의 고의를 인정했다. 또 "당시 피해자는 주요 언론인으로서 반듯한 이미지로 대중에 널리 알려진 사회적 영향력이 큰 인물로 해당 언론사 신뢰도의 척도가 되는 인물"이라며 "주차장·폭행 사건이 보도될 경우 사실 여부를 불문하고 명예, 언론인으로서 경력, JTBC 신뢰도에 큰 흠이 갈 것이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언제든지 주차장 사건을 보도할 수 있을 것처럼 행동하였던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의 언행은 객관적으로 피해자를 두렵게 하기에 충분했다"고 밝혔다. 또 김씨가 주차장 사건 관련 손 사장과 전화로 충분히 설명을 들었음에도 만날 것을 요구하며 인터뷰 명목으로 JTBC 채용 절차를 묻는 등 5개월 간 사적 이익을 추구한 사실이 기자의 일상적 업무 범위에 속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한편 김씨는 손 사장 주차장 사건 관련 견인차 기사들로부터 연락을 받은 사실도 없었고 사실관계 확인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견인차 기사들은 주차장 사건 당시 손 사장 운전 차량에서 동승자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단지 자기들끼리 대화를 하던 중 농담조로 한 말이 와전됐다는 것이다.

김씨가 요구한 2억4000만원도 폭행 사건 합의금 성격으로 보기엔 지나치게 많다고 법원은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폭행을 당했음에도 곧바로 법적 조치를 하지 않고 형사조치, 언론보도를 암시하는 등 이를 협박의 내용으로 삼았다"며 "피고인이 폭행 사건, 주차장 사건을 빌미로 피해자에게 합의금 명목의 돈을 갈취하려고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선고 후 김씨에게 마지막 한 마디를 덧붙였다.

"피고인이 제출한 탄원서 등을 다 읽어봤고 글을 잘 쓰고 능력이 출중한 건 잘 알고 있다"면서도 "다만 방법이 잘못됐다. 안타깝게 생각한다."

[차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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