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심환 없인 약국 못열었다" 이제야 고백한 공적마스크 사투

황수연 2020. 7. 1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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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주역들이 밝히는 막전막후

공적 마스크가 4개월여 만에 사라진다. 오늘(12일)부터 대형마트, 편의점, 온라인 등에서 개수 제한 없이 KF94·80 보건용 마스크를 살 수 있다.

공적 마스크는 초유의 마스크 대란 속에 나왔다. 130여일의 대장정이 마무리되기까지 시행착오도 있었다. 그러나 마스크 수급은 차츰 안정을 찾았고, 이제 마스크를 사기 위해 약국 앞에 길게 줄을 늘어서는 풍경은 볼 수 없다.

공적 마스크 제도가 12일부터 폐지된다. 서울 한 약국에서 약사가 공적 마스크를 정리하고 있다.연합뉴스

공적 마스크는 정부부처와 유관기관, 약국 등 다자간 협력이 일궈낸 합작품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일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마스크와 관련 특별히 시간을 할애해 “소회가 많다”며 “마스크 행정이 남긴 의미를 내각이 되새기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공급이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의 투명하고 솔직한 공개, 5부제 시행, 국민의 적극 협조, 마스크 수급 안정 등의 과정은 우리 행정이 어떠해야 하는지 되돌아볼 좋은 사례였다”고 치하했다.

각종 논란 끝에 마스크 대란을 잠재운 곳곳의 주역을 찾아 막전막후를 들어봤다.


◇하루 세 시간 자고…아이 대신 마스크 돌본 사무관
일등공신으로 마스크 주무부처인 식품의약품안전처를 빼놓을 수 없다. 그 중심엔 입사 17년 차 이른바 ‘마스크 담당 공무원’ 김지연(38·여) 사무관이 있다. 김 사무관은 코로나 사태 이후 꾸려진 태스크포스(TF)의 마스크 총괄기획팀에서 수급 업무를 도맡았다.

김지연 식품의약품안전처 사무관. 사진 김지연 사무관 제공

김 사무관은 9일 전화 인터뷰에서 “지난 2월 이후 잠을 세 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특명은 ‘생산량 독려’였다. 김 사무관을 포함한 팀원 8명은 마스크 제조업체 150곳에 매일 전화를 돌려 생산량을 확인했다. ‘오늘은 몇장을 생산했는지’, 어제보다 양이 줄었다면 ‘혹시 무슨 문제가 있는 건지’, ‘추가로 지원할 건 뭔지’ 등을 묻기 위해서다. 특정 업체의 기계가 몇 대인지, 몇 대가 고장 났고 그래서 생산량은 몇 장이 줄 것이라는 점까지 업체별 사정을 속속들이 꿰뚫게 됐다.

“새벽 1시이건 2시이건 전화해 물어보고 모든 현황을 파악한 뒤 정리하면 새벽 3~4시였어요. 아침 8시엔 간부급 회의에 이런 상황을 보고하고…. 2~3월까진 매일 그랬어요.”

하루 생산량이 1500만장을 돌파했을 때의 여운이 남아 있는 듯했다.

지난 3월 대전의 한 약국 앞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구입하기위해 길게 줄 서 있다. 김성태 기자

“일주일에 그래도 개인당 마스크 5장은 살 수 있어야 일상생활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려면 하루 최소 1500만장은 찍어내야 했거든요. 다소 무리지 않나 싶은 목표였는데 그걸 또 업체들이 해내더라고요. 24시간 생산에 힘써주신 업체에 정말 고맙습니다. 1500만장을 달성한 날(5월 6일)엔 눈물이 나더라고요.”

이날 관련 직원들이 모인 단체 대화방에선 간부들의 격려가 쏟아졌다고 한다. 사태 초기 하루 800만~900만장에 그쳤던 생산량은 현재 2000만장 수준으로 올랐다.

배달 도시락은 늘 때를 놓쳐 먹기 일쑤였다. 점심 건 저녁에, 저녁 건 밤 11~12시에나 겨우 먹었다. 거른 날도 많다. 김 사무관은 “강제로 다이어트가 됐다. 저는 4㎏이지만 주변에 8㎏ 빠진 직원도 있다”고 했다. 늘 긴장하며 무리하게 쓴 몸도 성할 리 없다. 최근 급성 목디스크가 와 응급실에 다녀왔다.

김 사무관에겐 자녀가 셋(4·7·11살) 있다. 집이 여수(식약처는 오송)에 있어 초창기 3주간 아예 집에 가질 못했는데 말을 잘 못 했던 막내는 약 한 달 만에 만난 엄마에게 “엄마 내가 무지개 그려놨어”라고 또박또박 말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함께했던 주말에 아이가 무지개를 그렸길래 칭찬해줬는데 그리운 엄마를 떠올리며 그린 무지개를 내민 것이었다. 김 사무관은 “코로나의 위협보다 엄마의 부재가 더 공포였을 텐데, 아이 돌볼 겨를 없이 마스크만 지켰다”며 웃었다.

경기도 평택의 마스크 제조공장인 우일씨앤텍에서 직원들이 마스크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김 사무관은 원래 의약외품정책과 소속이다. 의약외품으로 늘 관리해오던 마스크였지만 “마스크의 세계가 이렇게 오묘한 줄 몰랐다”고 말한다. 위험의 크기가 의약품보다 상대적으로 낮았던 마스크는 이제 식약처의 중요 관리 물품 1순위가 됐다.

공적 마스크는 끝났지만 할 일은 여전히 산더미다. 김 사무관은 “수급이 현재 안정화됐다고 해도 여전히 관리할 의제가 많다. 몸이 아프니 업무를 바꿔주겠단 얘기도 있었는데 힘들어도 평시 상황으로 돌아갈 때까진 업무를 책임지고 맡고 싶다고 말했다. 기여할 수 있다는 게 뿌듯하고 자랑스럽다”고 전했다.

식약처는 김 사무관처럼 마스크 관련 업무를 담당한 직원들의 수기 25편을 엮은 스토리 북, ‘국난극복 중에 본 식약처의 일상의 기록’이란 제목의 마스크 백서를 만들고 있다. 13일 공개될 예정이다.


◇청심환 먹고 약국 문 연 약사들
약국이 공적 판매처로 포함되면서 매일 마스크 전쟁을 치렀던 일선 현장의 약사들도 만감이 교차한다. 전국 2만3000여 약국은 그간 7억장 넘는 마스크를 공급했다.

경북 문경시 점촌1동에서 16년째 약국을 해온 박상훈(49) 약사는 “마스크는 동나 존재하지도 않는데 나눠줘야 하는 의무감으로 하루 8~9시간을 견뎌야 했던 게 가장 큰 고충이었다”고 말했다. 박 약사는 “약국 문을 열면 심장이 쿵쾅거려 우황청심환을 먹고 시작한다는 약사도 있었다”고 전했다. 실제 당시에 마스크를 둘러싼 크고 작은 실랑이가 벌어지면서 약사들이 스트레스를 호소하기도 했다.

박상훈 약사. 사진 박상훈 약사 제공

박 약사의 약국엔 다른 약국에서 이미 마스크 10장을 산 뒤 신분증을 건네며 마스크를 요구하는 80대 노인도 있었다고 한다. 중복 구매가 불가능한 이유를 올 때마다 설명해도 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4월 총선을 앞두고는 선거에 개인정보가 어떻게 악용될지 모른다며, 신분증 제출을 거부한 손님도 있다. 그래도 박 약사는 초기 사회적 동요와 불만을 잠재우는 데 약사의 역할이 컸다고 강조했다.

“시민 입장에서도 정책에 대해 할 말이 많았을 거잖아요. 어디 얘기할 데도 없고 불만을 배설할 곳이 어떻게 보면 약국이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박 약사는 “단순히 마스크를 골고루 뿌리는 것 이상의 사회적 불안을 완충하는 역할을 했다는 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김대업 대한약사회장은 “나라와 국민이 힘들 때 약국이 역할을 잘 해줬고, 잘 정리돼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며 “약국 문 열기가 겁난다거나 공황장애가 올 것 같다는 회원도 있었지만, 협조해줘 고맙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 한 약국에 마스크 품절 안내문이 부착되어 있다. 연합뉴스

김 회장은 “약국이 가진 강력한 접근성과 개인정보 관리 능력 등을 기반으로 약국의 공적 기능을 보여줬다”며 “선의를 갖고 민관이 협력해 좋은 결과를 만든 만큼 약사, 약국의 노력과 참여에 따른 면세 등 정부의 후속 조치까지 약속대로 잘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소회를 전했다.


◇“시스템 오픈 직전까지 버그 수정, 진땀”

이영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실장(오른쪽에서 세번째)이 정보통신실 직원들과 함께 의료진과 국민에 감사와 응원의 마음을 전하는 '덕분에 챌린지'에 동참하고 있다. 사진 이영곤 실장 제공

중복구매자를 거르는 데 핵심 역할을 한 것 중 하나가 ‘마스크 중복구매 확인시스템’이었다. 이걸 만드는 데 일조한 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다.

이영곤(59) 심평원 정보통신실 실장은 떠올리면 아직도 아찔한 기억이 있다. 지난 3월 6일 선보인 마스크 5부제가 시행되기 바로 전날이었다. 모두가 밤을 새워 시스템을 점검하던 도중 오픈 3시간을 앞두고 문제를 발견한 것이다.

이 실장은 “새벽 3시쯤 완벽한 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했는데 새벽 4시쯤 오류(버그)를 발견했다. 수정과 테스트, 실패를 반복하는 과정이 꼬박 3시간 걸렸다”고 회상했다.

이어 “오픈 직전에서야 정상 구동된 걸 보고 남아있던 통신실 전 부서원들이 박수를 치고 하이파이브했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이 시스템은 단 5일 만에 나왔다. 초기에 사용자가 일시에 몰리며 혼란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마스크 대란을 잠재우는 데 기여했다.

심평원 정보통신실 부원들이 회의하고 있다. 사진 이영곤 실장 제공

시스템을 가동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다. 몇 날을 제때 퇴근하지 못하고 식사도 도시락으로 때운 터라 직원들과 간만에 외부로 나와 점심을 먹는데 가장 빨리 나오는 음식을 주문하고 숟가락을 드는 순간이었다. 트래픽 증가로 시스템 사용자 접속 지연 현상이 생겼다며 호출이 왔다고 한다. 이 실장은 “서로 눈치를 보다 최대한 입속에 음식물을 많이 구겨 넣고 오물거리며 회사로 뛰어갔던 서로의 모습이 지울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아있다”고 전했다.

이 실장은 “공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자원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보여준 좋은 사례이자 당연한 역할을 한 것”이라며 “민관의 유기적이고 원활한 집단지성의 발휘와 기술력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라고도 전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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