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이슈] 與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포기가 최소한의 예의 아닌가

박정철 입력 2020. 7. 13. 09:09 수정 2020. 7. 20.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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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4월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낙마에 이어 지난 10일 박원순 서울시장의 극단적 선택으로 인해 서울과 부산에서 내년 4월7일 각각 시장 보궐선거가 치러지게 됐다.

관심은 이제 인구 1000만명과 340만명이 사는 국내 제1,2 도시의 보궐선거에 잇딴 불미스런 사태의 장본인인 더불어민주당이 후보들을 또다시 공천할 지 여부다.

민주당 당헌 96조2항에는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하여 재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고 돼 있다.

이 조항은 문재인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민주당 전신) 대표 시절이던 2015년 '김상곤 혁신위'에서 마련한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지난 2018년 '미투 폭로'에 연루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사퇴하자 같은해 6·13 지방선거에서 이 조항을 적용하지 않았고 결국 양승조 후보가 충남지사에 당선됐다.

성 범죄의 경우 당헌에 규정된 '중대한 잘못'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해석한 것이다.

민주당은 오 전 시장과 박 시장의 성추문 의혹에 대해선 아직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민주당 내에선 "오 전 시장의 경우 재판이 진행 중이고 박 시장은 극단적 선택을 함으로써 고소사건 수사가 종결된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고 한다.

후보 공천이 불가피하다는 현실론이 더 힘을 얻고 있는 셈이다.

오는 2022년 대선을 앞두고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아 자칫 서울과 부산시장직을 미래통합당에 뺏길 경우 대권 경쟁에서 상당히 불리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깔려 있는 듯 하다.

민주당에선 서울시장 후보로 추미애 법무장관을 비롯해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4선의 우상호 의원, 재선의 박주민 의원 등이 거론되고 있다.

심지어 여권 일각에선 "명예회복 차원에서 조국 전 법무장관을 서울시장이나 부산시장으로 출마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민주당이 차기 대선을 겨냥한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질 때가 아니다.

현 정부 출범 후 여당 광역단체장들의 3번째 성추문과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정규직화 논란, '내로남불'식 부동산대책이 잇따라 터지면서 정권의 도덕성과 공정성은 땅에 떨어졌고 국정 동력 또한 급속이 약화하고 있다.

지난 10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47%로 넉달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것도 이런 민심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여당으로선 '부정부패 척결'도 필요하겠지만 지금은 잇딴 성 추문에 대한 사죄와 성범죄를 근절하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먼저다.

물론 "박 시장 장례 일정이 끝날 때까지 고인에 대한 애도의 시간을 갖고 진위 공방은 이후로 미루자"는 민주당의 주장도 전혀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당이 소속 단체장들의 성 추문에도 불구하고 철저한 진상 조사 없이 '고인 추모'를 이유로 진실을 슬쩍 덮고 넘어가려 한다면 국민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하게 될 공산이 크다.

실제로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10일 박 시장 빈소에서 '성 추행 의혹에 대한 당 차원의 대응'을 묻는 취재진 질문에 "예의가 아니다"며 "XX자식 같으니라고"라는 막말을 내뱉고 역정까지 냈다.

전형적인 '제 편 감싸기'이자 피해자와 국민을 우습게 보는 오만한 행태나 다름없다.

공당의 대표가 무차별한 2차 가해로 떨고 있을 피해자의 공포와 아픔을 조금이라도 헤아렸다면 이런 고압적 자세를 보일 리가 없다.

민주당은 2006년 한나라당 최연희 전 사무총장의 '여기자 성추행' 논란, 2012년 새누리당 김형태 후보의 성추행 의혹 당시 "의원직 사퇴" "제명'등을 요구하며 강도높게 비판했다.

이처럼 '피해자 우선주의' '젠더 감수성'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던 여당의 인사들이 권력 구도와 조직내 위계 질서를 악용해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인권을 지속적으로 유린했다면 국민 앞에 혹독한 반성과 사죄부터 하는 것이 공당의 도리가 아닐까.

특히 이번 사태에 대해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면 내년 보궐선거에서 후보 공천을 포기하는 것이 충격과 분노로 허탈해하는 다수 국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염치 있는 행동일 것이다.

도덕성을 최고위 가치로 내세운 민주당이 특단의 대책을 내놓지 않는 한 '더듬어 민주당' '더불어 만진당'이라는 세간의 조롱과 비아냥은 계속될 수 밖에 없다.

[박정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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