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최고 기린아에서 검찰수사 맞서는 처지..한동훈, "특정수사 보복 공작"
'검언유착' 의혹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는 한동훈 검사장이 "공정한 수사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외부 전문가들에게 판단을 구하겠다고 나섰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에 따라 서울중앙지검이 '검언유착' 의혹 수사를 독립적으로 하게 되자 한 검사장에 대해 강요미수 혐의를 밀어붙일 것이란 판단으로 풀이된다.
한 검사장은 13일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요청하며 "이 사건은 특정세력이 과거 특정수사에 보복하고 총선에 영향을 미치고자 소위 '제보자X'를 내세워 '가짜 로비 명단 제보'를 미끼로 기자를 현혹, 어떻게든 저를 끌어들이기 위해 집요하게 유도했으나 실패했고, '유모씨에게 돈 안 줬어도 줬다고 하라'는 등 존재하지 않는 녹취록 요지를 허위조작해 유포한 '공작'이 본질"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공작을 기획하고 실행한 쪽에 대해선 의미 있는 수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는 반면, 공작을 주도한 쪽에서 우호 언론, 민언련 등 단체를 통해 고발 단계부터 유포한 '프레임'대로 공작 피해자인 저에 국한해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 안팎에선 수사 초기 때부터 한 검사장에 대해 기소 방침이 이미 결정돼 있으며 구속영장 청구가 검토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추 장관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검언유착'을 기정사실화한 듯한 발언을 해 수사방향이 결정돼 있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그가 검찰 수사의 공정성을 신뢰하지 못하겠다며 조목조목 지적한 내용이다. 이는 그가 진두지휘했던 '조국 수사'에 대해 여권과 친문 지지자들이 그와 당시 수사팀을 비난하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의 눈에는 수사지휘 검사였던 한 검사장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게 했던 일을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한 검사장에게 되갚아주는 셈이다.
'조국 수사' 이전의 한 검사장은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직후 '특수부(특별수사부·현 반부패수사부) 에이스'만 갈 수 있다는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로 발탁된 '문재인 검찰' 최고의 기린아였다. '윤석열 사단'의 핵심 일원이기도 한 그는 SK와 현대, 삼성 등 대기업 비리 수사에서 활약을 하며 '대기업 저승사자'로 명성을 떨쳤다. '국정농단' 사건을 지휘하면서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시키는 등 문재인정부의 적폐수사 선봉장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누구보다 큰 박수를 받았다.
'적폐청산'을 국정 동력으로 삼아야 했던 문재인정부로선 그에 대한 신임도 컸던 걸로 알려졌다. 이철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검사"라며 그를 치켜세우기도 했다.
그에 대한 평가가 180도 바뀐 것은 '조국 수사'가 기점이 됐다. 윤석열 검찰총장과 함께 가장 파격적인 승진을 한 주인공이었던 만큼 추락의 골도 가장 깊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윤 총장에게 '조국 수사'가 필요하다고 보고한 당사자로 한 검사장을 지목하면서 본격적으로 여론의 타깃이 됐다.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졌지만 그와 상관없이 윤 총장의 최측근이라는 점, 수사지휘자란 점 등을 들어 한 검사장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비등해졌다.
한 검사장은 입장문에서 "현 정부 인사(조국)에 대한 수사 때문에 문책성 인사를 받은 부산고검 차장이 현 정부 인사(유시민)에 대한 서울남부지검 수사를 현 정부에 의해 서울 요직으로 재기하기 위한 '동아줄'로 생각했다는 것도 황당한 말"이라며 자신의 처지를 설명했다.
'검언유착' 의혹 수사의 공정성 논란을 두고 검찰 내부는 여러 갈래로 분열된 상태지만 한 검사장의 혐의 내용에 대해선 상당수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검사가 기자를 시켜 수감 중인 죄수에게 여권 실세의 비리를 캐는 행위는 한마디로 프로가 아마추어에게 외주를 맡기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점에서다.
한 간부급 검사는 "코로나 때문에 접견도 안되는 상황에서 외부인한테 굳이 그럴 이유가 있느냐"며 "수사 상황을 언론에 노출해 유리하게 이끌어가려는 관행이 문제가 돼 왔던 건데 '검언유착' 관계를 만들려다보니 상식 수준을 벗어나게 된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윤 총장이 전문수사자문단을 소집하면서 진상 규명보다는 '측근 감싸기' 논란을 불러일으켜 오히려 공격의 빌미를 줬다는 비판적 시각도 적지 않다. 전국 검사장 회의에서 전문수사자문단 소집 절차는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이 공통되게 나온 것도 이같은 시각을 반영한 결과다.
이와 관련해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한 검사장의 악연 때문에 서울중앙지검의 수사가 한 검사장에 대해 악의적으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조국 수사' 당시 이 지검장은 지난해 9월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재직하면서 당시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이던 한 검사장에게 전화해 '윤 총장을 제외한 특별수사팀을 만드는 것이 어떻겠냐'는 뜻을 전했다. 한 검사장이 이를 윤 총장에게 보고했고 윤 총장은 즉시 거절했다.
윤 총장의 지휘를 배제하는 문제는 '검언유착' 의혹 수사에서도 고스란히 재연됐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수사 공정성 문제를 들며 윤 총장의 수사지휘를 거부했고 결국 추 장관까지 나서 서울중앙지검의 손을 들어줬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애초에 한 검사장이 윤 총장의 측근이 아니었으면 벌어질 일이 아니었을 것"이라며 "사법농단 수사를 지휘한 한 검사장에 대해 영장 발부 등 법원의 판단이 우려된다는 얘기까지 들리고 있어 윤 총장으로선 자신이 나서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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