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이스라엘 CEO 큰그림 "日기술로 韓서 제조해 美진출"

김경진 2020. 7. 14.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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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기업 나녹스 CEO 란 폴리아킨 인터뷰
'방사선 기존의 10분의1' 디지털 X레이 개발

“소니(일본)가 연구 중이던 TV 기술을 이스라엘의 아이디어를 통해 엑스레이용으로 바꿨다. 이제 한국의 제조 기술로 한국에서 대량 생산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는 게 우리의 비전이다.”

나녹스 CEO 란 폴리아킨.

의료영상 촬영 비용과 방사능 노출량을 기존의 10분의 1로 줄인 디지털 엑스레이(CT)를 개발한 이스라엘 기업인 나녹스의 최고경영자(CEO) 란 폴리아킨의 말이다. 그는 12일 중앙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한국은 아이디어를 실제 제조로 연결하는데 뛰어난 자질이 있다. 산업적 양산과 상품화가 굉장히 잘 된다”며 한국과 손을 잡은 이유를 설명했다. 이 회사의 2대 주주는 한국 통신사인 SK텔레콤이다. SK텔레콤은 지금까지 약 2300만 달러(282억원)을 투자했다. 나녹스는 기존 아날로그(필라멘트) 방식을 반도체 칩을 이용한 디지털 방식으로 바꿈으로써 영상 촬영 장비 가격과 촬영비를 획기적으로 줄였다. 제품이 출시되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주문량만 4억4000만달러(5300억원)에 달한다.

Q : 일본 기술을 사업화하게 된 과정은.
A : 소니는 화질을 높이기 위해 나노 기술을 연구 개발하는데 10억 달러(1조 2000억원)를 투자했다. 2010년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으며 프로젝트를 중단했는데 당시 소니 측에서 ‘기술은 좋은데 이걸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내가 생각한 아이디어는 엑스레이계의 ‘LED’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소니로부터 기술을 인수해 나녹스를 세우고, 소니의 인재들을 대거 영입해 텔레비전에 적용된 기술을 엑스레이용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나녹스가 개발한 디지털 엑스레이(CT) 시연 장면.

Q : 소니는 왜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지 못했나. 당신과의 차이는 뭔가.
A : 소니뿐만이 아니라 삼성 등 모든 대기업은 누가 새 아이디어를 내도 안 된다고 하기 쉽다. 대기업은 리스크를 감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이스라엘은 매우 작은 나라로, 언제나 생존을 위해 싸워오다보니 두려움이 없다. 실패하지 않으면 성공도 없다고 생각한다.

Q : 한국 기업을 2대 주주로 선택한 이유는.
A : 양측의 이해가 잘 맞아 떨어졌다. 나녹스는 향후 SK텔레콤의 5Gㆍ클라우드ㆍAI 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 한국의 환자를 뉴욕의 병원과 연결할 수 있고, 아프리카 콩고의 환자를 한국의 삼성병원과 연결할 수 있다. 휴가를 내 병원에 갈 필요 없이 스타벅스에 앉아 아이패드로 AI가 제공하는 조언을 들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 SK텔레콤은 헬스케어를 통해 5G 콘텐트를 확보하는 한편 의료 데이터 등 사이버 보안 기술을 통해 IT 기업화될 수 있다.

Q : 내수로 돈을 버는 통신 회사가 해외 기업에 투자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을 수 있다. (SK텔레콤은 해외 벤처 기업을 중심으로 굵직한 투자를 많이 해왔다.)
A : 한국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면 한국에 제조 시설과 연구 시설이 들어서면서 많은 젊은이들이 그 일에 투입돼 일할 수 있다. 또 한국ㆍ이스라엘ㆍ미국 등 여러 국가의 주주에게 큰 가치를 줌으로써 국내로 재투자가 유입된다. 즉 글로벌 기업에 투자하면, 첫째 세상에 기여하고, 둘째 자국의 산업을 구축하며, 셋째 재투자 등 장기적인 가치를 만들어 낸다고 볼 수 있다.

란 폴리아킨 CEO가 12일 요즈마 그룹 코리아아무실에서 열린 화상 인터뷰에서 디지털 엑스레이의 특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요즈마 그룹 코리아]

Q : 미국 나스닥 상장을 앞두고 있는데, 코로나 수혜를 받는 측면이 있나. (나녹스 주요 투자자인 요즈마 그룹 등에 따르면 이 회사는 8월 중순 나스닥에 상장될 가능성이 크다.)
A : 디지털 엑스레이가 상용화되면 간편하게 공항에서 즉각적으로 코로나 감염 여부를 확인하는 게 가능해질 것이다. 저가의 스캐너를 국경마다 설치하면 국경을 폐쇄하지 않고 격리 대상자를 식별할 수 있다. 의료뿐 아니라 보안 등 활용 분야도 무궁무진하다.

Q : 한국은 세계적인 연구·개발 투자국인데 혁신 기업 수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 정부와 기업에 조언해 준다면.
A :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웃음). 100m씩 4번 계주를 한다고 생각해 보자. 일본-이스라엘-한국-미국이 각자 잘하는 분야를 열심히 뛰면 된다. 이스라엘의 DNA는 0을 100으로 만드는 것이 뛰어나다. 한국의 DNA는 100을 1000으로 만드는 것이다. 한국의 연구개발은 스케일 업(고성장) 가능한 분야에 투입되고 있다. 소량을 매우 빠르게 매우 품질 좋게 만드는데 탁월하다. 각자 가장 잘하는 것을 해야 한다. 일본 기술을 내가 사업화했고, 한국이 양산하면 마지막 주자는 마케팅을 잘하는 미국에 맡기면 된다. 각자의 다른 DNA를 통해 나녹스의 테크놀로지가 완성되는 것이다.
란 폴리아킨 CEO는 세계 최초로 무선 충전 패드를 개발하는 등 현재 9개의 회사를 창업한 연쇄 창업가다. 실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그에게 “당신은 실패한 적이 없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그렇지 않다. 성공한 것만 봐서 그렇다. 아주 많은 실패를 했다. 가장 큰 실패는 아이디어와 사랑에 빠진 것이다. 아이디어와 사랑에 빠지게 되면 점점 더 많은 돈을 쓰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실패를 하다 보면 나중엔 리스크와 데미지를 최소화하기 위해 프로젝트를 중단하는 것도 배우게 된다. 일례로 모유는 아기가 얼마의 양을 먹는지 측정이 안 되니 이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모유량을 예측할 수 있는 여성용 브래지어를 개발한 적이 있다. 기술은 완벽했지만 FDA 승인 받는 게 어려워 과감히 접었다.”

김경진 기자 kjin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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