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도 외면한 日스타트업..일본은 어쩌다 벤처 후진국이 됐나

이현승 기자 2020. 7. 14.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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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유니콘기업 1개…美中은 물론 韓보다 적어
연간 벤처투자액 2.2조…미국의 50분의1
디지털화 늦고 실패 피하려는 문화가 원인

"손 마사요시(손정의 회장의 일본명)도 일본에 투자를 안하는데, 왜 당신이 해야 하나."

작년 7월 블룸버그에 이런 제목의 칼럼이 올라왔다. 일본 소프트뱅크 그룹의 투자사업체 비전펀드가 그동안 1000억달러(120조5000억원)를 전세계 75개 유니콘 기업에 투자했지만 일본 기업은 단 하나도 없었다고 칼럼은 지적했다.

14일 일본 정부가 도쿄, 아이치, 오사카, 후쿠오카 일대에 일본판 실리콘밸리 조성을 검토한다는 보도가 나온 배경에는 전세계적으로 구글, 아마존 등 IT기업이 경제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가운데 철저히 뒤쳐지고 있다는 절박감이 있다.

일본은 미국, 유럽, 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경제대국이지만 벤처 후진국으로 평가 받는다. 기업가치가 1조원 이상인 유니콘 기업이 2018년 기준으로 단 1개. 미국(150개)과 중국(91개)는 물론 국내총생산(GDP)이 훨씬 적은 한국(6개)에도 뒤진다.

연간 벤처투자금액은 1976억엔(2조2000억원). 유럽(9조1500억원), 중국(38조2000억원), 미국(106조7000억원)에 비하면 초라한 숫자다. 일본판 나스닥인 마더스 시장을 통한 자금 조달도 미미하다. 마더스 상장기업의 96%가 기업가치 10억달러(1조2000억원) 미만으로, 나스닥은 3분의1에 달하는 것과 비교된다.

스타트업이 부진한 배경에는 일본 특유의 아날로그 문화가 있다. 스타트업의 사업모델이 되는 디지털화가 미국, 유럽, 중국 등 주요국에 비해 뒤늦게 진행되고 있다.

아날로그 문화를 대표하는 것이 바로 도장문화다. 주요국 기업에서 전자결제가 일상적인데 반해 일본은 여전히 서류를 인쇄해 도장을 찍어 서면으로 결제를 받는다. 아베 신조 총리가 "날인이나 서면 제출 등의 제도와 관행을 재검토하라"고 지시한 게 불과 지난 4월의 일이다.

아날로그 문화를 중시하고 전통 산업을 우선하다 보니 정부 주도의 지원 정책도 미흡하다는 평가다. 벤처 지원 정책을 추진하고는 있지만 전통 산업과 충돌하는 경우 벤처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 오히려 혁신을 막는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실패를 최대한 피하고 싶어하는 문화도 창업 에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일본 벤처엔터프라이즈센터가 작년 설립 5년 이내인 벤처기업을 대상으로 '일본에서 창업이 활발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더니 '실패에 대한 의구심'이라는 대답이 가장 많이 나왔다. 실패가 두렵고 한번 실패하면 재도전이 어렵다는 것이다.

영국 옥스포드 이코노믹스의 나가이 시게토 일본경제연구실장은 최근 일본의 장기 저성장 문제를 분석한 보고서에서 경제의 역동성을 확대하기 위해 실패한 사람에게 다시 일어설 기회를 주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 파산법의 챕터11을 사례로 들며 부채를 상환할 수 없는 기업을 파산시키기보다는 회생절차를 밟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창업이 늘 것이라고 했다.

디지털화가 많이 진행되지 않은 만큼, 일본에 새로운 기회가 열려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줌(Zoom)과 알리바바, 틱톡 모회사 등에 출자한 미국 유명 벤처캐피탈(VC) 세쿼이아 캐피탈이 올해 일본에 진출한다고 지난달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가 보도했다.

세쿼이아 캐피탈은 기업가치 1500억엔(1조7000억원) 이상인 디지털 기업에 투자할 방침이다. 이 회사는 그동안 중국을 아시아 주요 시장으로 평가했지만 중국 경제 성장이 둔화 하고 있고 미국의 규제가 강화되고 있어 위험요인이 크다고 판단, 일본을 새로운 투자처로 선택했다.

일본 정부는 일본판 실리콘밸리를 적극 육성해 벤처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계획이다. 연간 벤처투자 금액이 두 배로 늘어날 수 있도록 스타트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 규제완화를 추진해 2024년까지 유니콘 기업을 35개 만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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