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주의 아웃룩] 그 많은 '가짜 뉴스'는 누가 다 만들었을까

이은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2020. 7. 15.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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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카카오톡 등을 통해 ‘빌 게이츠의 편지’란 글이 화제가 됐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위대한 교정자(a Great Corrector)’라면서 코로나가 빈부귀천에 관계없이 우리가 평등하고, 모든 사람이 연결되어 있으며, 결국 중요한 건 건강과 가족임을 상기시켜 준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빌 게이츠는 이 글을 쓰지 않았고 게이츠 재단에선 '거짓 정보'이니 공유하지 말아달라는 입장도 밝혔다. 글 내용 자체와 무관하게 팩트체크 기관들은 출처가 사실과 다르다는 점에서 이 글을 '거짓(false)'으로 판정했다.

이 편지는 단순 소동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가짜 뉴스 폐해는 간단하지 않다. 지난 4월 영국에서는 5G 네트워크를 통해 코로나가 전파된다는 동영상을 본 사람들이 수십 곳 기지국에 불을 질렀고, 이란에선 코로나 예방·치료에 좋다는 이유로 메탄올을 마시고 700여 명이 숨졌다.

'가짜 뉴스'는 뉴스가 아니다

사실관계가 맞지 않는 오정보(misinformation),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기만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허위 정보(disinformation)라는 말보다 우리에게는 '가짜 뉴스(fake news)'가 더 익숙하다. 가짜 뉴스의 사전적 정의는 "언론 보도의 형식을 띠고 마치 사실인 것처럼 유포되는 거짓 뉴스"로, 2017년 영미권의 주요 사전들이 "올해의 단어"로 선정할 정도로 몇 년 전부터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짜 뉴스라는 말은 들을수록 편치 않다. 첫째, 펜실베이니아대 제이미슨 교수는 "가짜인 순간 이미 그 메시지는 뉴스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찬란한 슬픔의 봄'처럼, 일종의 형용모순인 셈이다. 가짜 뉴스가 있다면 진짜 뉴스도 있다는 말인데, 이처럼 가짜 뉴스를 뉴스의 일종으로 취급하는 건 뉴스라는 소통 양식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다.

둘째, 가짜 뉴스란 말은 온라인에 넘쳐나지만 뉴스로 분류되지 않는 거짓 정보, 검증되지 않은 콘텐츠를 논외로 만들 수 있다. 뉴스로 취급될 만한 형식 요건을 갖추지 않았더라도 유튜브나 블로그 같은 소셜미디어상에서 생산·유포하는 메시지들이 기성 언론사 9시 뉴스 이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금, 가짜 '뉴스'로 검증 대상을 한정할 필요가 없다. 한국언론진흥재단·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설문조사를 보면 코로나 관련 허위 정보·오정보를 많이 접한 출처로는 '정치인'(41%)이 가장 많았다.

셋째, 언제부턴가 가짜 뉴스라는 말이 객관적으로 사실관계가 틀린 부정확한 기사나 보도를 걸러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정보의 가치를 폄하하고 정보원을 공격하기 위한 '꼬리표(label)'로 활용된다.

믿고 싶지 않은 기사(좋아하는 연예인이 마약 사건에 연루되었다거나) 혹은 본인 의견에 반하는 기사(사실은 원전이 그렇게 위험하지 않다거나)를 접했을 때 가짜 뉴스라는 낙인을 찍어 기존 태도나 의견을 되짚어보는 수고를 덜고, '혹시 내가 잘못 생각했나'라는 데서 오는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관점 뉴스 선호하는 시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우리의 습성은 새롭지 않다. 하지만 요즘처럼 정보뿐 아니라 소음에 가까운 메시지까지 정보의 좌판에 널려 있어 입맛대로 골라잡고 광범위하게 퍼나를 수 있는 환경에서 이런 편향은 우려스럽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20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언론을 신뢰한다는 응답이 21%(전체 평균 38%)로 40국 중 최하위였다. 동시에 본인 의견과 같거나 비슷한 성향을 보이는 매체를 주로 이용한다는 비율은 44%(전체 28%)로 조사 대상국 중 4위였다. 정보 이용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정파성을 보인 것이다. 이런 성향은 정치에 관심이 많을수록 두드러진다. "정치에 매우 관심이 많다"고 한 응답자 중 70%가 '나와 같은 관점의 뉴스'를 선호한다고 답했다.

가짜 뉴스에 대한 논의는 대체로 가짜 뉴스를 진짜로 믿는 게 얼마나 위험한가를 강조하고 있으나, 진짜 뉴스를 가짜로 무시해버리는 것도 문제다.

해외 저명 학술지(Political Behavior)에 실린 논문에서 연구자들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미 하원의원들 정책 관련 연설을 시청하고 이를 사실에 맞게 보도한 기사를 읽도록 했다. 그런데 "기사 중 부정확한 정보가 있다"는 거짓 경고를 들은 사람들은 해당 기사 공신력을 낮게 평가했을 뿐 아니라 보도된 사실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고 본인 기억에 대한 확신도 낮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기사를 읽기 전 직접 연설 비디오를 시청했기 때문에 기사 내용이 사실이라는 걸 충분히 판단할 수 있는데 "부정확한 정보가 있다"라는 경고를 접하자 사실마저 의심하고 거부하게 된 것이다.

최근 '기승전 가짜 뉴스'라고 할 정도로 여러 사회적 갈등과 문제 원인을 언론사들 가짜 뉴스 탓으로 돌리는 정치인이나 공직자들 발언을 자주 접한다. 수준 미달 기사를 쏟아내 위기를 자초한 일부 언론사들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가짜 뉴스와의 전쟁, 허위 정보 규제 강화 같은 당위적 발언조차 코로나 사태로 말미암아 허위 정보에 대한 경각심이 잔뜩 높아진 틈을 타 가짜 뉴스라는 죄목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매체들을 옥죄려는 시도가 아닌가 의구심이 드는 건,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린 탓일 거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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