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한겨레

부여 백제 왕릉 레이더 쏘아 탐사해보니..알려진 것보다 훨씬 컸다

노형석 입력 2020.07.15. 09:06 수정 2020.07.15. 11:36
음성 기사 옵션 조절 레이어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능산리 고분군 6년간 물리탐사 결과
사비시대 왕릉 배치와 규모 확인
현재 복원 무덤보다 훨씬 큰 규모
하늘에서 본 능산리 고분군. 아래쪽으로 돌출된 숲 한가운데 누런 땅 드러난 부분이 서고분군의 8, 10호분 발굴지점이다. 숲 오른쪽의 잔디밭 봉분들이 사적 지정된 기존 능산리 고분군이다. 숲 왼쪽의 허옇고 큰 건물터는 1993년 금동대향로가 나온 능사 터다. 사진 한국전통문화대 고고학연구소 제공
능산리 중앙고분군 지하 물리탐사 결과 작성된 지하 유구 분포 도해도. 주요 무덤들을 둘러싼 점선은 물리탐사로 드러난 호석 추정 열을 따라 그린 선으로 백제 왕릉의 봉분이 현재 복원정비 되어있는 지름 20m 규모보다 훨씬 크게 조성됐으며, 동하총과 중하총, 서상총과 서하총, 중상총과 동상총이 두 기씩 서로 연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백제 왕조는 5세기 고구려에 패해 첫 도읍지 한성(서울)에서 밀려난 뒤 6~7세기 웅진(충남 공주)과 사비(충남 부여)로 도읍을 옮겨 다시 일어서게 된다. 백제의 이 중흥기 시절 왕조를 대표하는 왕들의 무덤은 어디에 있을까?

많은 이들이 1971년 도굴되지 않은 채 수 많은 보물을 쏟아내 세상을 놀라게 한 공주 송산리 무령왕릉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고고역사학계 전문가들은 일반인에게는 낯선, 또 다른 왕릉급 고분군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백제의 마지막 도읍 부여(사비)의 동쪽 산기슭에 있는 능산리 고분군(국가사적)이 바로 그곳이다. 능산리 고분군은 백제 사비시대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왕릉급 무덤 떼다. 학계에서는 성왕, 위덕왕, 혜왕, 법왕 등 백제 후기 왕가의 여러 제왕이 묻혔을 가능성이 큰 묘역 터로 간주해왔다.

2015년 백제역사유적 지구의 일부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됐지만, 안타깝게도 일제강점기인 1910년대와 30년대 일본 학자들의 발굴 조사 뒤로는 거의 조사 되지 않았던 능산리 고분군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이 고분군에 대해 약 6년간의 지하 물리탐사를 벌인 끝에 최근 백제 사비시대 당시 왕릉의 배치와 규모가 지금 복원된 모습보다 훨씬 컸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연구소는 2014~2019년 묘역 중앙부와 진입부를 대상으로 레이더 전파를 고분군 땅 밑으로 쏘아 지하의 매장물을 파악하는 지하 물리탐사 작업을 벌였다. 결과를 보니, 각 봉분 외곽에는 호석(護石)으로 판단되는 이상체 반응이 확인됐으며, 이를 분석한 결과 사비기 능산리 왕릉의 봉분 규모가 현재 복원·정비된 지름 20m보다 훨씬 큰 25~30m정도인 것으로 파악됐다. 연구소는 이런 내용이 담긴 종합적인 물리탐사 결과를 15일 발표했다.

호석이란 무덤 봉분 외곽에 둥글게 열을 지어 두르는 고분의 경계를 표시하는 돌을 말한다. 능산리 고분군에서는 이 호석이 일본학자들의 발굴 조사 사진에서 일부 나타난 것 외엔 거의 보이지 않았는데, 물리탐사를 통해 중앙 고분군 7기의 모두에서 완형 또는 부분적인 원호가 나타난 것이다.

부여 능산리 중앙고분군과 남쪽의 평탄대지에 대한 2014~2019년 지하 물리탐사 작업의 범위를 전체 사진에 합성한 도해도. 지하에 있는 이상체 반응을 탐색한 물리탐사 작업은 국립문화재연구소 고고연구실과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공동 진행했다.
부여 능산리 중앙고분군의 물리탐사 작업 광경. 지난해 찍은 사진이다.

이를 통해 중앙 고분군을 이루는 주요 무덤인 동하총과 중하총, 서상총과 서하총, 중상총과 동상총이 각각 두 기씩 모여 있는 배치 얼개를 보여준다는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 장한길로 학예사는 “탐측 결과 호석 추정 열이 붙은 고분이 두 기씩 모여 있는 것으로 보아 무덤 간에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왕과 왕비 무덤이 함께 조성됐거나 가족 단위로 조성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육안으로는 각각의 고분이 제각기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무덤끼리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셈이다. 연구소 쪽은 무덤 사이 빈 곳 여기저기서 이상체가 감지된 만큼 그 동안 몰랐던 새로운 무덤이 출현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이번 조사는 백제 후기 능원 종합 학술연구 사업의 핵심인 능산리 고분군 중장기 학술조사의 첫 단계인데,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은 정보가 나와 학계의 기대감이 높아지는 분위기다.

공중에서 본 부여 능산리 고분군 전경. 중간에 일곱개의 무덤 자리가 보이는 곳이 능산리 중앙고분군이며, 왼쪽 상단에 숲으로 둘러싸인 네모진 구역이 지난 2016년 4기의 무덤이 발굴된 서고분군이다.

능산리 고분군은 조선 영조 때인 1757년 나온 공주의 옛 읍지인 <여지도서> 등에 언급돼 있다. 부여현 관아 동쪽에 ‘능산’이 있다는 기록이 나와 조선시대 선조들은 이미 백제의 왕릉급 무덤들이 있음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능의 내부 실체가 처음 드러난 것은 일제강점기 일본 학자들에 의해 이뤄진 세 차례의 발굴조사였다. 1915년 구로이타 가쓰미와 세키노 다다시, 1917년 야쓰이 세이이치가 중앙고분군과 서고분군을, 1937년 우메하라 스에지가 동고분군을 발굴했다. 정식 보고서 없이 1916년 간행된 <조선고적도보>와 1920년 나온 <대정6년도고적조사보고>에 간단한 설명과 내외부를 찍은 유리건판 사진 몇 장만 남겼을 뿐이지만, 중앙 고분군의 고분 6기와 동서 고분군의 9기 등 고분 15기가 당시 확인됐다.

이후 60년대 봉분을 정비하면서 고분 2기가 다시 드러났고, 2016년 한국전통문화대 조사팀의 서고분군 발굴로 3기의 고분이 추가 확인돼 현재까지 20기가 파악된 상태다. 특히 2007년까지 무덤 내부가 개방됐던 중앙 고분군의 동하총은 고구려 강서무덤처럼 사신도 벽화가 남아있는 유일한 백제무덤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무덤 얼개는 백제 후기의 전형적인 굴식 돌방무덤이지만, 세부 양식에선 웅진 시기 벽돌 무덤의 아치식 천장이 정제된 판석과 꺾임 천장을 쓰는 석실분으로 변모돼 가는 양상을 잘 보여주고 있어 백제 능원 제도의 전형을 보여주는 유적으로 주목됐다. 고분군 서쪽 능산리 절터(능사)에서는 1992년 백제 미술품 가운데 최고 걸작인 백제금동대향로(국보 287호)와 석조사리감(국보 288호)이 출토됐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오는 9월부터 일제강점기 발굴 이래 100여년 만에 능산리 중앙고분군에 대한 본격적인 재발굴 조사에 들어간다. 잠정적인 계획안에 따르면, 2038년까지 진행되는 대규모 중장기 조사다. 올해 하반기 첫 조사는 시굴 성격으로 이번 물리탐사에서 확인된 무덤 부근 지하 호석을 확인하고, 내부를 흙으로 메운 동하총의 관대 등을 해체·분석할 계획이다. 김대영 학예연구사는 “발굴을 통해 능산리 중앙고분군 무덤의 실제 토층 연대를 확인하고 분류하게 되면 무덤의 선후 관계와 무덤 주인을 추정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문화재청 제공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