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있저] "청빈한 백선엽? 강남에 2천억 건물"..미화된 전쟁영웅 공과, 제대로 밝혀야

박성진 2020. 7. 15. 19:5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앵커]

고 백선엽 장군이 오늘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지만 친일 논란은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군인 이후의 삶에 대한 재평가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의 박성진 안보전문기자를 연결해서 자세한 얘기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박성진]

안녕하십니까?

[앵커]

6.25전쟁에서 제1사단장을 맡았었죠. 낙동강전선 중에서 다부동전투 대승이 가장 큰 성과로 또 영웅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전쟁영웅이라는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있는데 그 재평가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낙동강 전투라고 하는 것이 엄청나게 넓은 지역에서 상당히 여러 개 전선이 펼쳐졌는데 그중 하나 아니냐. 아마 그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박성진]

맞습니다. 백선엽 장군이 영웅적인 다부동 전투로 대한민국을 구했다는 건 당시 일개 사단으로 북한군 3개 사단을 상대해서 격퇴했다는 건데요. 이걸 놓고 이제 이론을 제기하는 측에서는 당시 낙동강 전선이 240km였습니다. 그 당시 그 전선에서 워커 장군이 지휘했었는데요. 한국군 5개 사단과 미군 3개 사단, 그리고 일개 여단이 워커 장군 지휘 하에 방어를 했었는데. 이 다부동 지구는 그중 일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오히려 그 당시 낙동강 전선에서 다부동전투보다 높게 평가받아야 하는 것은 안강기계전투라든지 포항 전투라든지 이쪽이 훨씬 더 심각하고 그게 더 전투분단사적으로 의미가 있다 이런 주장도 나오고 있는 거죠. 또 거기에 앞서서 낙동강 상류에서 사실상 미 공군 B-29폭격기가 융단폭격을 퍼부었거든요. 대표적인 것으로 제일 기억나는 것으로는 다부동 옆에 왜관에서 B-29가 반나절 폭격해서 북한군 3만 명이 폭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그렇다면 다부동 전투도 B-29 폭격기 없었으면 이게 일개 사단이 3개 사단을 상대하기 어려웠던 상황이었겠죠. 그런 면에서는 미군의 B-29 폭격기가 더 오히려 그러면 훨씬 가치를 둬야 하는 거 아니냐는 그런 반론까지 있기는 있습니다.

[앵커]

아마도 다부동 전투가 대구방어선이었다라는 점도 부각되는 것 같고 또 나를 따르라. 내가 혹시 후퇴하면 나를 쏴버리라고 했던 뭔가 드라마틱한 장면들이 얹어지는 것 같은 느낌은 듭니다.

[박성진]

그렇습니다. 이게 지금 한국 전사가 그런 면에서 문제가 있는데요. 6.25전사라는 게 초기에는 어느 부대 상황일지를 중심으로 해서 언제, 어느 전투가 있었다. 아군 피해 상황이 뭐였다. 적의 피해 상황이 뭐였다. 이런 식으로 진술이 되다가 전사가 몇 번 개편됩니다. 그러면서 이게 뭐냐하면 소위 전투원들의 공격 위주로 바뀌거든요.

소위 말해 객관적인 전투 상황보다는 누가 앞장서서 누가 해서 이런 공로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런 식으로 바뀌면서 이게 6.25 한국군 전사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전사 연구가들이 많습니다. 이 때문에 해외에서는 차라리 일본 육전사라든지 중공군 전사가 더 한국군 전사보다 훨씬 더 신뢰성이 있다고까지 평가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앵커]

박 기자. 오늘 그 6.25 전쟁 이후의 삶을 비춰봐야 될 것 같습니다. 동생과 함께 선인학원을 설립해서 운영했는데 선인학원은 인천분들은 잘 아시겠습니다마는 논란이 컸었던 거죠.

[박성진]

그렇죠. 이게 소위 말해서 그 당시에 잘 알려졌다시피 선인학원의 명칭 자체가 백선엽 장군의 선 자하고 동생인 백인엽 예비역 중장의 인 자를 따서 만든 거지 않습니까? 고인이 1965년 설립된 선인학원의 이사로 활동했는데 이 학교 운영하고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사실이었는데 당시 박정희 정권의 비호 아래 교사가 학장이 됐고 각종 사학비리로 얼룩졌다는 비판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1981년도 검찰조사에서 이게 3년간 부정편입한 학생수만 해도 9900명에 달하고 찬조금만 6억 원이라는 수사결과가 나왔는데요. 이에 따라서 이 동생인 백인엽 전 육군중장은 사법처리, 구속됐고 구속된 것으로 끝났지만 형인 백선엽 예비역 대장도 이사로서 그 책임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었죠.

[앵커]

그러고 보니까 기억이 납니다. 신문 제목이 인천의 무법자. 이런 제목도 있었고. 인천시민 7만 명이 제발 좀 인천을 떠나달라고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던 게 기억이 나는데 또 다른 면도 있습니다. 예비역 장성 단체인 성우회가 고인은 청빈한 삶을 살았다고 주장하니까 여기에 대해서 반론이 쏟아졌습니다.

강남에 있는 건물이 지금 2000억대 아니냐. 그리고 그 건물을 소유하기까지 어떤 정부의 개발 정보를 이용한다든가 또 소유한 다음에 아들과 소송을 벌인다든가 그런 걸 평가한다면 글쎄요, 청빈한 삶을 붙이기 어려운 단어가 아니냐 이런 얘기가 있거든요.

[박성진]

그렇죠. 그 이야기가 나왔죠. 지하 5층, 지상 16층짜리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데 청빈하다 하면 좀 애매한 상황이죠. 마침 오늘 국방일보 1면에도 성우회가 대대적인 추모 광고를 실었습니다. 거기에서도 청빈 삶 그 자체로 후배들에게 정신적 지주인 영웅이라고 백선엽 장군을 표현하는데요. 이건 사실은 대부분 관사에서 생활하는 집이 없는 장교들 입장에서는 후안무치한 표현인 거죠. 거기다 국방부는 합참에 근무하는 장교들은 고인이 평소 관련 행사 때마다 목격하지 않았습니까? 그때마다 뭐냐하면 백 전 장군이 기사 딸린 벤츠 S클래스 승용차를 타고 다닌 걸 다 아는데 말이죠. 벤츠 S클래스라는 것도 다 아는데 그걸 보고 청빈 그 자체라고 그거를 후배들이 정신적 지주로 배우라고 하니까 거기에서 약간 반응이 언짢은 반응들이 많이 나오더군요.

[앵커]

알겠습니다. 친일 행위에 이어서 반공투사가 되고 그러면서 관료로 나서서 사회지도자가 되고. 그리고 역시 독재 군부정권 아래에서 기득권을 누려온 그 삶이 어떻게 보면 한국 현대사의 굴곡하고 너무 비슷한 것 같습니다. 현충원 안장 논란을 넘어서 백 장군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가 필요하다고 보시는 이유는 뭡니까?

[박성진]

저는 이게 개인적으로 일본군 출신 장교라고 무조건 척결 대상으로 보지는 않거든요. 같은 일본군 출신이라고 해도 해방 뒤 잘못을 인정하고 대한민국에 기여한 훌륭한 장군들이 많습니다. 이게 대대적으로 전쟁 초기 북한군을 저지한 6.25전쟁 영웅 김종호 장군 같은 경우 대표적인데요. 그러나 백 장군 같은 경우는 본인이 지원해 들어간 간도특설대에 대해 제대로 사과한 적이 한 번도 없거든요. 일제 만행을 담은 역사 화보에서도 사람 목을 칼로 베는 장면이 바로 이 간도특설대가 조선사람 죽이는 모습입니다.

일본군이 이이제이식으로 조선인 손으로 조선을 제압하라고 만든 부대가 간도특설부대인데요. 여기에 대한 것을 사과라도 한 번 했으면 이런 논란이 조금이라도 덜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고요.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이게 지금 군의 가짜역사를 바로잡는 계기가 되어야 된다는 겁니다. 혹시 육탄10용사, 육탄5용사니 하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앵커]

아니요.

[박성진]

육탄10용사 하면 소위 말해서 우리 이달의 호국인물로도 보훈처, 국방부가 추모를 하는데 1949년 개성송악산전투에서 첫 육탄10용사소위 말해서 우리 군 10명이 박격포탄을 품에 안고 적의 토치카를 폭파했다 해서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온 적이 있거든요. 그런데 그래서 우리 부사관학교에서는 육탄10용사상까지 수여를 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뭐냐하면 그중 1명은 북한군에 귀순해서 대남방송까지 나와서 방송을 한 사람이거든요. 이게 있을 수가 없는 일이고.

또 하나가 육탄5용사 같은 경우는 춘천지구전투에서 무려 우리 군 후배들이 30년 동안 추모행사를 하면서 재연행사까지 했거든요. 이게 뭐냐 하면 적의 자주포를 다 폭파했던 육탄5용사 해서 휘발유가 든 사이다병으로 적의 자주포를 폭파했다 해서 육탄5용사라고 해서 우리 육군이 매년 30년 동안 재연행사를 했습니다. 조사를 해봤더니 뭐가 됐냐햐면 전부 가짜예요. 있지도 않은 고사들 가지고 만든 거죠.

[앵커]

그러니까 왜곡된 전사와 왜곡된 군사를 이번 기회에 바로잡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말씀이신 거죠?

[박성진]

한마디만 말씀드릴게요. 그게 문제가 뭐냐하면 원로장군들이 하는 얘기가 그걸 만들라고 한 배후에는 전부 백 장군의 지시가 있었다는 거예요. 이런 부분에 대해서 철저하게 군의 가짜역사를 바로잡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앵커]

알겠습니다. 도움 말씀 고맙습니다.

[저작권자(c) YTN & YTN PLU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시각 코로나19 확진자 현황을 확인하세요.

▶ 대한민국 대표 뉴스 채널 YTN 생방송보기

▶ 네이버에서 YTN 뉴스 채널 구독하기

Copyright © YT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