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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반년.."죽음의 공포 아직도 생생"

신정연 입력 2020.07.16.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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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 앵커 ▶

코로나 19 와의 싸움, 어느덧 반년이 됐습니다.

올해 초, 국내에서 첫 확진자가 나왔을 때만 해도 이 싸움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대구 신천지 교회에서 1차 폭발이 발생하면서 하루 확진자가 최대 9백 명을 넘기도 했었죠.

◀ 앵커 ▶

걱정이 컸던 4월 총선의 고비를 무사히 넘겼지만 서울 한복판, 이태원 클럽에서 2차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이후 수도권에서 비수도권으로 크고 작은 집단 감염이 전국적으로 이어지고 있는데요.

이렇게 정리해본 코로나 반년을 코로나 완치자들은 어떻게 기억하는지, 신정연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 리포트 ▶

코로나 19는 소리도 없이 찾아왔습니다.

보건소 직원인 마흔 살 선명희 씨는 지난 3월, 폐쇄된 병원에 코로나 역학조사를 나갔다가 갑자기 본인 몸이 이상하단 걸 느꼈습니다.

[선명희 (병원 역학조사 중 감염)] "아침에 갑자기 커피를 마시는데 커피 향이 안 나는 거예요. 샴푸 향도 안 나는 거예요. 그래서 커피를 마셨는데 커피 맛이 안 나요. 어 이상하다."

출장차 지난 2월 미국 뉴욕에 갔던 손문성 씨도 처음엔 감기에 걸렸나 싶었다고 합니다.

[손문성 (미국에서 치료)] "뉴욕이 초기여서 병원들이 코로나라는 증상에 대한 인식이 없어서, 심한 감기 몸살이라고 두 번 다 오진을 한 거예요."

처음부터 통증이 크지는 않았습니다.

[손문성] "근육통부터 시작해요. 타이레놀 먹고, 복통이 왔을 때 또 복통약 먹고. 약을 먹으면 낫는듯하다가 얘가 다른 곳으로 옮겨가요."

하지만 견딜만하다고 생각할 즈음 갑자기 고통이 휘몰아치기 시작했습니다.

[선명희] "밤에 11시 반에 자려고 하는데 갑자기 숨이 안 쉬어지는 거예요. 여기 가슴이 완전 쪼여져요. 쪼여지면서 여기가 흉통이 엄청나게 아프더라고요. 등 뒤쪽까지 통증이 심하면서 아예 못 움직이는 거에요."

통증은 죽음의 공포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손문성] "진짜 아프냐는 이야기를 해요. 코로나 걸리면 진짜 아파요 그리고 죽어요. 죽음 직전까지 가요. 호흡이 딱 멈추는데 이러면 죽는 거구나, 라는 느낌이 왔어요. 내 옆에 할아버지 두 분이 중환자실에서 소천하셨고"

다행히 고통이 조금씩 사라져 가더니 몸이 천천히 회복되는 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이젠 정신적인 절망감과 무력감이 찾아왔습니다.

[선명희] (며칠 입원하셨던 거예요?) "37일이요. 3주 지나니까 생기더라고요 그때부터 우울증이. 내가 과연 이곳을 나갈 수가 있나. 이틀에 한 번씩 검사를 하는데 계속 양성이 나오니까 희망이 갑자기 절망으로 변하는 거죠. 한순간에 그냥 무너지는 거예요."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완치 판정을 받고 소중한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코로나19 환자였다'는 주변의 시선은 또 다른 고통이었습니다.

[손문성] "약간 서운할 만큼 의식이 있어요. 코로나 걸렸던 사람이라고 안 만나줘."

[선명희] "저희 아이들은 제가 아직도 확진됐는지 모르거든요. 그걸 알면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이야기해요. 그러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또 걱정하시니까. 모르세요 아직도. 그냥 출장 갔다 온 줄 알아요."

아직도 끝나지 않은 코로나 19와의 전쟁,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남았기 때문에 그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은 방역수칙을 지켜달라고 신신당부합니다.

[선명희] "지인들한테 연락했어요. 마스크 잘 쓰고 다니라고. 미국 사람들이 다 그렇게 죽어나가는 거는 다 이유가 있는 거다. 국가에서 하라는 것은 좀 그대로 지켜주셨으면…"

[손문성] "제가 살았던 것 너무 기적적이고 감사한 일이에요. 후유증도 많아요. 그래서 정말 조심해야 해요. 젊기 때문에 자신할 수 없어요."

MBC뉴스 신정연입니다.

신정연 기자 (hotpen@m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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