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호의 시선] 위기의 여당.."일 더 생길까 걱정"

신용호 2020. 7. 17.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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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지지 조국사태 이후 최저
총선 이후 거대 여당 곳곳서 독선
박원순 의혹 대처에도 안 달라져
신용호 논설위원

민주당엔 쓴소리가 드물다. 금태섭(전 의원)처럼 당론을 거스르면 징계를 받는 당이라서다. 일사불란하다. 근데도 계속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있다. 70년대생 박용진(의원)과 김해영(최고위원)이다.

14일 오후, 세종로 한 커피숍에서 박용진을 만났다. 지쳐 보였다. 그는 이날 아침 라디오에서 박원순 시장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무책임한 것 아닌가. 민주당 차원의 진상 파악을 해야 한다”고 했다. 박원순만 중요하고 피해자는 안중에 없어 보였던 당에서 처음 나온 진상 조사 요구였다. 박용진은 이날 백선엽 장군 빈소에도 갔다 왔다. 그랬더니 더 난리가 난 모양이었다.

Q : 피곤해 보인다.
A : “힘들다. 지금도 힘들다. 진상 조사나 조문 모두 각오하고 갔다. 감당해야지 어쩌겠나.”

Q : ‘문자 폭탄’ 많이 왔나.
A : “안 세봤다. 계속 양 갈래로 찢어져 있는 게 지긋지긋하다. 나라도 넓혀가야지 싶어 조문도 다 갔다. 설마 박용진이 좌파고 진보라는 것까지 부정하겠나.”
김해영은 앞선 13일 당 회의에서 “당의 일원으로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당 차원의 첫 사과였다. 그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부산에 있었다. 그는 “누구라도 해야 하니까 한 것”이라고 했다. ‘더 할 말이 없느냐’고 하니 “다음에 하겠다”고 했다. 당 상황과 관련해선 “(위기의) 조짐이 보인다. 할 말은 있지만, 아직 대안이 없어서…”라고 했다. ‘이번에도 고생했나’는 질문엔 “한 번씩 얘기하면 늘…. 많게는 문자 2000개씩 오는데 이번에는 많이 안 왔다”며 웃었다.

둘의 사과와 진상 조사 요구는 어려운 시기에 힘을 낸 용기였다. 여론이 갈수록 악화하자 결국엔 이해찬(당 대표)이 직접 나서 사과하고 진상 조사까지 요구하지 않았나. 하지만 둘은 이번에도 곤욕을 치렀다. “당을 떠나라”란 소릴 또 들었다. 평소에도 둘은 거의 당내에서 이방인이다. 그들은 왜 힘들어야 하고, 도대체 당은 왜 포용을 못 하는 걸까. 그건 민주당이 사안마다 보여준 독선적 자세를 보면 답이 나온다.

사실 최근 위기는 민주당이 자초했다. 총선 후 석 달 만이다. 오거돈 성추행 사건 이후 양정숙의 부동산 의혹, 윤미향 사건, 임오경 논란으로 초선 여성의원들이 민심의 화를 돋웠고 단독 원 구성, 금태섭 징계, 추미애의 윤석열 압박 등으로 거대 여당의 독주 이미지를 굳혔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 전환 논란은 젊은이들의 이반을 불렀다. 결정판은 부동산이었고, 박원순 성추행 의혹은 여권을 나락으로 몰았다.

악재야 터질 수 있고 문제야 꼬일 수 있지만 보는 이를 숨 막히게 하는 건 대처다. 독선적이었다. 조국 사태 때와 같이 감싸기로 일관한 윤미향 사건, 상임위원장 독식을 포함한 단독 원 구성, 공수처 당론을 거부한 금태섭 징계, 대법원 판결이 난 한명숙 재심 요구 등은 하나같이 176석을 등에 업은 독선이었다.

그런 기운은 박원순 의혹의 대처에도 고스란히 묻어났다. 당 대표의 언행이 대표적이다. 당 차원의 박원순 대응을 묻는 기자에게 “예의가 아니다. XX 자식”이라고 버럭하며 막말을 했고 마지못한 사과(13일)는 대변인에게 대독시켰다. 이 때문에 여론이 더 안 좋아지자 등 떠밀린 직접 사과(15일)를 했지만, 그것도 ‘피해자’가 아니라 ‘피해 호소인’이란 표현으로 피해자를 다시 때렸다. 뼛속 깊이 자리한, 누가 뭐래도 ‘우리는 선’이란 인식, 독선 때문일 거다. 장례를 오일장으로, 서울특별시장(葬)으로 한 것도 그와 다름 아니다.

얼마 전 만난 한 민주당 의원은 “현 지도부는 이 대표에게 말을 할 사람이 없는 1인 독주 체제이자 당 안팎의 목소리 전달이 안 되는 1인 중심”이라며 “청와대의 일방통행식 전달, 당의 이상한 일사불란함이 위기를 키우고 있다”고 했다. 박용진도 “쓴소리와 이견이 존재해야 민주정당인데 일사불란함만 강조돼 좋은 상황이 아니다. 176명 모두가 반짝이는 전등이 돼야 한둘이 꺼져도 조도를 유지하는 당이 되는데…”라며 “앞으로도 예기치 않은 일들이 더 벌어질 것 같아 걱정”이라고 했다.

마침 16일 나온 리얼미터 조사 결과를 보면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도(44.1%)가 조국 사태 이후 가장 낮았다. 민주당(35.4%)은 통합당과 격차가 오차범위 내로 좁혀졌다고 한다. 하락세가 가파르다. 총선에서 국민이 모든 걸 다 준 것 같지만 오만해지고 독선 하면 빼앗아가는 것도 한순간이다. 겸손해져야 한다. 민심이 떠난 뒤 후회해도 때는 이미 늦다.

신용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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