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TV토론에서 거짓말해도 무죄라는 대법

조백건 기자 입력 2020. 7. 17. 03:05 수정 2020. 7. 17.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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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지사직 유지] "즉흥적이라 연설과는 다르다" 이재명 무죄 취지 결정 논란

대법원이 16일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선거법 위반(허위사실공표)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한 핵심 근거는 "즉흥적인 TV 토론회는 계획적인 연설 등과 다르다"는 것이었다. 이 지사가 2018년 지방선거 TV 토론회 당시 "친형의 정신병원 강제 입원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은 토론 과정에서 나온 즉흥적 답변이어서 계획적인 '허위 사실 공표'로 볼 수 없다는 논리였다. 법조계에선 "이 지사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판결"이란 비판이 나왔다.

◇대법원의 이재명 '4중 방어막'

이 지사의 '친형 강제 입원' 지시 의혹의 핵심은 그가 성남시장으로 재직 중이던 2012년 시 산하 보건소장 등에게 친형인 고(故) 이재선씨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1·2심 모두 이를 사실이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이 지사는 2018년 경기지사 선거 직전 열린 TV 토론회에서 "그런 (지시를 한) 일이 없다"며 "제가 (형의 정신병원 입원을) 최종적으로 못 하게 했다"고 말했다. 대법원과 1·2심 모두 이 지사의 이 발언이 사실상 거짓말이라는 것은 인정하고 있다. 판단의 문제였다. 2심은 이 지사의 이 거짓말이 '허위 사실 공표'라고 보고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지만 대법원과 1심은 법 위반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조선일보

대법원의 판단은 1심보다 더 정교했다. 다수 의견을 낸 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법관 6명은 이 지사의 발언이 왜 '허위사실공표죄'가 안 되는지를 이날 4중(重) 논리를 동원해 설명했다. 첫째는 '즉흥성'이었다. 대법원은 이날 "연설과 달리 TV 토론은 공방이 즉흥적으로 이뤄진다"고 했다. 이 지사의 의혹 부인은 상대방의 공세에 즉흥적으로 반박하면서 나온 말이어서 처음부터 허위 사실을 퍼트리려는 '범죄 의도'를 갖고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뜻이다. 판사 출신 변호사는 "너무 도식적 판단"이라며 "그럼 정치인이 즉흥 연설에서 거짓말을 하면 어떻게 되는 것이냐"고 했다.

박상옥 대법관 등 소수 의견을 낸 대법관 5명은 "(TV 토론회의 허위 사실 공표에 대해) 대법원이 일률적 면죄부를 줬다"고 했다. 현실적으로 유권자들의 선택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게 TV 토론회인데 대법원이 이를 '허위 사실 면책 구역'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소극성'이다. "이 지사가 상대방의 공격적 질문에 소극적으로 (강제 입원 지시 사실을) 부인한 것을 적극적인 허위 사실 공표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지사는 2018년 6월 MBC의 토론회에선 질문이 없었는데도 먼저 "제가 정신병원에 형님을 입원시키려 했다 이런 주장을 하고 싶으신 것 같은데 사실이 아니다. 정신병원에 입원시킨 것은 제 형수와 조카들이었다"고 했다. 대법관 5명은 소수 의견에서 "이 지사가 미리 준비한 (허위) 답변을 적극적, 일방적으로 한 것"이라고 했다.

◇"이재명 관심법(觀心法) 판결"

이날 대법원 다수 의견 중 가장 많은 비판이 쏟아진 부분은 '다의성' 논리다. TV 토론 당시 "형님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 하셨죠"라는 상대 후보의 질문을 이 지사가 부인한 것을 두고 대법원은 "이 지사가 이 질문의 의도를 '직권을 남용해 불법으로 강제 입원시키려 한 사실이 있느냐'로 해석해 이를 부인했다고 볼 수도 있다"고 했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대법원이 이 지사의 마음속 의도까지 읽어 무죄 판단을 내려주는 관심법(觀心法) 판결"이라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대법원이 이렇게 해주겠느냐"고 했다. "시민들의 평균적 해석과 동떨어져 있다"(박상옥 대법관 등)는 비판도 나왔다. 이 지사의 의혹 부인은 '나는 친형 강제 입원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게 상식적인데 대법원이 이 지사의 발언에 대해서만 과도하게 '다양한 의미'를 부여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또 "선거에서 표현의 자유를 더 넓게 보장해야 한다"고 했지만 그동안 대법원은 TV 토론회에서의 허위 사실 공표를 엄격하게 처벌해왔다는 지적이다. 2008년 총선 당시 무소속으로 출마한 이무영 전 경찰청장은 TV 토론회에서 경쟁자인 장영달 당시 열린우리당 후보에게 "장 후보는 북침설을 주장하다가 7년 징역살이를 했다"는 허위 사실을 말했다가 대법원에서 벌금 300만원 형을 확정받고 의원직을 상실했었다.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는 "최근 은수미 성남시장 판결도 그렇고, 대법원이 또 (결론을 정해놓고) 법리를 비틀어 기교적 판결을 했다"고 말했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이재명을 위한 대법원의 판례 변경 같다"고 했다.

이날 대법원 선고가 내려지자 법정에 있던 이 지사 지지자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일부 여권 인사는 며칠 전부터 주변에 "대법원에서 이재명 무죄 선고가 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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