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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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친일'이라는 아킬레스건을 어찌할 것인가

남상훈 입력 2020. 07. 17.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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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인의 친일행위는 '족쇄'
올해도 팔봉문학상 반대집회
미당 작품은 교과서에서 추방
'功過'를 함께 논할 수는 없을까

올해도 팔봉비평문학상 시상을 반대하는 집회가 열렸다. 서울 마포구 양화로에 있는 북앤빌딩 앞에서 민족문학연구회와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민족문제연구소 관계자 30여명이 ‘친일문인 김기진을 기리는 팔봉비평문학상 즉각 폐지하라’는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성명서를 낭독하고 구호를 외쳤다. 이들의 노력으로 미당문학상이 여러 해 전에 폐지되었다. 동인문학상 시상을 반대하는 집회도 해마다 열리고 있다.

올해 팔봉비평문학상을 받는 구모룡 교수나 작년에 동인문학상을 받은 최수철 작가나 문학인과 교육자의 길을 평생 걸어온, 훌륭한 수상자임이 틀림없다. 수상자의 이름만 봐도 심사위원들이 공정하게 심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두 사람은 본인의 약력을 쓸 때 아무 거리낌 없이 ‘제31회 팔봉비평문학상 수상’, ‘제50회 동인문학상 수상’이라고 쓸 수 있을까? 마음 한구석이 찜찜하여 쓸까 말까 망설이게 될 것이다. 상을 받았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된 이유는 팔봉과 동인의 친일행각 때문이다.
이승하 시인·중앙대 교수
이 땅의 대표적인 문인인 두 인물의 친일행위를 열거하면 도대체 몇 페이지가 필요할까? 춘원과 육당은 몇 갑절이 될 것이다. 1939년에 발족한 친일문학단체 ‘조선문인협회’의 발기인은 이광수 김억 김동환 정인섭 유진오 이태준이었다. 이 단체의 창립총회에서 회장으로 뽑힌 이는 이광수였고, 간사로 뽑힌 이가 박영희 이기영 유진오 김동환 정인섭 주요한 등이었다. 일제강점기에 단편소설 미학의 최고 정점에 이른 이태준과 해외문학파의 일원인 영문학자 정인섭, 최초의 자유시를 쓴 시인이라는 영광을 누린 시인 주요한이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했는데 찾아보면 훨씬 많은 문인이 ‘친일’이라는 족쇄를 쓸 것이다.

동료문인들을 만나 문학인의 친일행위에 대해 얘기를 나눠보면 정확히 두 파로 나뉜다. 사람과 작품은 분리해서 논해야 하므로 친일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그의 다른 작품까지 비판하고 폄하하지 말자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다른 부류는 그것을 어떻게 분리할 수 있느냐, 친일작품을 쓴 문인은 반민족행위를 한 것이므로 응당 다른 작품도 검증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비판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주장이 맞설 때 반드시 거론되는 이름이 있으니 서정주다.

서정주의 시는 어떤 교과서에도 실려 있지 않다. 나의 제자가 된 학생들에게 시문학사 시간에 물어보는 것이 있었다. 서정주 시인의 작품 중 아는 것이 있느냐고 물어보면 학생들은 ‘국화 옆에서’도 ‘귀촉도’도 모른다. 학부생 중 서정주의 시를 읽어본 학생이 없다는 것이 놀라웠지만 대학원생들조차도 이름만 들어보았고 작품은 제대로 읽어본 학생이 없다는 사실이 나로선 더 놀라운 일이었다. 그런데 이보다 더 놀라운 일은 이구동성으로 ‘친일시인’, ‘친일문인’이라고 말하며 화난 표정을 짓는다는 것이다. 다시 학생들에게 물어본다. 서정주의 친일문학작품 중 읽어본 것이 있냐고. 나의 놀람은 충격으로 바뀐다. 작품명을 말하는 학생이 한 명도 없었다. 서정주에게 ‘친일문인의 대표자’라는 불명예를 선사한 ‘헌시’ ‘무제’ ‘송정 오장 송가’를 읽어본 적이 없는데, 다만 친일문인으로 분류되고 있기에 일부는 적개심을 갖고 대하게 되었고, 일부는 무시하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상의 이름이 될 뻔한 춘원과 육당, 현재 그의 이름을 기려 시상하고 있는 동인과 팔봉의 작품은 물론 수많은 친일문인의 대표작품이 교과서에서 추방될 것이다.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송정 오장 송가’를 가르치면 안 될까. 그와 함께 서정주의 주옥같은 시를 가르치면서 공과를 함께 논할 수는 없는 것일까.

30대 때 독서토론회에서 임종국의 ‘친일문학론’을 읽어보자고 했다가 다수의 반대로 책 채택을 못한 적이 있었다. 덮어버린 치부를 왜 들추느냐는 다수의 논리였다. 이 논리는 우리 문학사에서 수많은 문인을 배제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승하 시인·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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