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포장재 '0'.. 알맹이만 파는 마트가 있다

유종헌 기자 2020. 7. 18.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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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웨이스트 '알맹상점'
서울 합정동에 있는 제로 웨이스트 매장 ‘알맹상점’에서는 샴푸, 세제, 섬유유연제 등을 모두 포장재 없이 알맹이만 살 수 있다. 포장재를 빼 가격도 저렴하다. / 이한솔 영상미디어 기자

종이 박스, 에어캡(뽁뽁이), 스티로폼, 아이스팩, 플라스틱 포장 용기…. 무심코 주문한 택배 상자 하나에 들어 있는 쓰레기 종류만도 이 정도다. 대형 마트에 나가 장을 봐도 쓰레기가 딸려오는 건 마찬가지. 식료품과 각종 생활용품을 담은 포장재를 모아보니 양이 어마어마하다. 국제 환경 단체 그린피스 서울사무소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한 명이 1년에 생수 페트병 96개, 일회용 플라스틱 컵 65개, 일회용 비닐봉지 460개(2017년 기준)를 썼다고 한다. 이쯤 되면 쓰레기는 소비 활동과 불가분 관계일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서 지역 환경 운동가 세 명이 운영하는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쓰레기 0) 매장 '알맹상점'에서는 포장재 하나 없이 향신료와 세제, 심지어 샴푸나 보디워시까지 살 수 있다. 고객들이 집에서 페트병을 가져와 샴푸, 세제 등 액체를 담으면 매장은 저울에 무게를 달아 g당 가격을 매기는 방식으로 판다. 병을 가져오지 않은 고객에게는 페트병과 유리병을 빌려주기도 한다.

알맹상점에서 배출되는 폐기물은 말 그대로 '제로'에 가깝다. 액체 상품은 재사용 가능한 대형 생수통을 제조업체에 보내 받아 온다. 물건을 담아 갈 봉투도 고객이 가져와야 한다. 택배 판매는 하지 않고 심지어 영수증도 손님이 먼저 요청하지 않으면 아예 뽑지 않는다.

납품도, 판매도 '쓰레기 제로'

양래교(38) 알맹상점 공동대표는 "제로 웨이스트 매장은 단순히 쓰레기만 덜 나오는 게 아니다"라고 말한다. 고객은 각자 필요한 만큼만 물건을 담으면 돼 과소비 염려가 없고, 포장에 드는 돈이 적어 가격 경쟁력도 있다는 것이다. 알맹상점은 친환경 세제와 섬유유연제는 ㎖당 4~7원, 샴푸와 린스는 ㎖당 15~30원에 판다. 이곳에서 ㎖당 15원에 판매하는 샴푸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500㎖에 1만2000원(㎖당 24원), ㎖당 7원인 친환경 세제는 같은 쇼핑몰에서 1ℓ에 1만200원(㎖당 10.2원)에 팔고 있으니 인터넷보다 싼 셈이다. 티백 포장하지 않은 차 원료는 g당 30원에서 350원으로 다양하다. 이 외에도 대나무 칫솔, 자연 분해되는 코코아 화분 등 친환경 생필품이 알맹상점 인기 상품이다.

매장 한편에는 지역 주민들에게 재활용품을 기부받는 '자원회수센터'가 있다. 주민들이 빨대나 플라스틱 등 각종 재활용품을 깨끗이 씻어 이곳에 가져다 주면 직원들이 이를 색깔별로 분류해 재활용 업체로 보낸다. 이곳에서 모인 커피콩은 화분이 되고 병뚜껑은 치약 짜개로, 우유팩은 화장지로 재탄생한다. 이 중 일부는 재활용품을 기부한 주민들에게 돌려준다.

별도 포장 없이 액체를 소분해서 파는 만큼 위생을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이 때문에 알맹상점은 고객들이 가져오는 페트병을 에탄올로 소독하고 말려서 상품을 담도록 안내한다. 화장품을 소분 판매하기 위해 고금숙(42) 공동대표는 맞춤형 화장품 조제 관리사 자격증도 땄다.

"제로 웨이스트는 유통 단계부터 필요"

미국의 제로 웨이스트 인플루언서 비 존슨은 저서 '나는 쓰레기 없이 산다'에서 5R 원칙을 제시한다. 필요 없는 소비를 거부하고(Refuse), 어쩔 수 없이 소비할 때는 사용량을 줄인다(Reduce). 되도록 재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사고(Reuse), 다시 쓰기 어려울 때만 재활용한다(Recycle). 그리고 되도록 썩는 제품을 사용해야 한다(Rot). 물론 이를 모두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홍수열 자연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사과 한 알도 낱개 포장하는 판매점이 즐비한 현실에선 소비자들이 쓰레기를 줄이고 싶어도 줄일 수가 없다"고 말한다.

해외에선 제로 웨이스트 매장이 이미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2014년 독일 베를린에 문을 연 세계 최초 '포장 없는 수퍼마켓' 오리기날 운페어팍트는 과일이나 채소 같은 식료품부터 치약, 알약까지 600여 종을 모두 포장재 없이 판매한다. 런던의 언패키지드, 뉴욕의 더 필러리 등도 제로 웨이스트 매장이다. 국내에서는 2016년 문을 연 서울 성동구의 편집숍 더 피커를 시작으로 동작구의 편집숍 지구, 서대문구의 카페 보틀팩토리 등이 제로 웨이스트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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