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억명 걸리는 이 성병, 반세기만에 찾은 구세주는 코알라

서유진 2020. 7. 18.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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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증상에 불임 유발하는 클라미디아
반세기 이상 백신 개발 노력 성과 없어
연구팀, 코알라 대상 백신 실험에 기대

인간만이 성병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놀랍게도 굴은 헤르페스, 토끼는 매독에 걸리며, 돌고래는 생식기 사마귀가 생긴다.

특히 클라미디아라는 성병은 종을 가리지 않는 파괴력을 가졌다. 개구리·물고기에서 인간까지 모든 생명체를 감염시킬 만큼 강력하다. 전 세계에서 연간 1억3100만명이 걸릴 정도로 흔한 성병이기도 하다. 이런 클라미디아를 퇴치하기 위한 백신 개발에서 구세주로 등장한 동물은 다름 아닌 코알라다.

세계적으로 매년 1억명 이상 걸리는 성병인 클라미디아의 백신을 실험하기에 가장 적합한 동물이 코알라라는 보도가 나왔다. [트위터]

최근 뉴욕타임스(NYT)는 호주에서 코알라를 대상으로 이뤄지고 있는 클라미디아 백신 개발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코알라가 낙점된 이유는 코알라가 이 병에 잘 걸리기 때문이다. 호주 야생동물 병원에 의하면 병원에 실려 오는 코알라의 40%는 클라미디아에 감염된 상태다. 뉴욕타임스는 "이 병에 걸린 코알라는 심한 염증으로 생식기관에 상처가 생긴다"면서 "최악의 경우, 소변을 볼 때 고통으로 소리를 지르고 말할 수 없는 악취를 풍긴다"고 보도했다.

클라미디아는 숙주를 죽이지 않고 서서히 상처를 입히는 무서운 병이다. 문제는 이 병에 걸리면 고통스러운 것은 물론 불임으로까지 이어진다는 점이다. 자칫 성병으로 코알라가 멸종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연구도 나왔다.


처음엔 쥐 실험…"인간과 다른 면역반응"

처음 연구진은 쥐를 백신의 모델로 삼았다. 비용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고 구하기 쉬우며 유전자 조작에 순응할 수 있는 쥐는 오래전부터 성병을 연구할 때 단골로 쓰였다.

사진은 현미경으로 클라미디아를 200배 확대한 사진. 미국에서는 2018년 170만건의 클라미디아 감염 사례가 나왔다. [AP=연합뉴스]

그러나 쥐 모델에는 심각한 단점이 있었다. NYT는 "쥐가 클라미디아에 대해 인간과는 상당히 다른 면역 반응을 보여 결괏값을 도출하기 힘들었다"면서 "쥐를 인간 백신에 대해 실험하기엔 부적합했다"고 설명했다.

대신 연구진은 코알라로 대상을 옮기기로 했다. 코알라와 인간의 면역 반응이 매우 유사했기 때문이다. 코알라도 인간처럼 불임을 포함해 생식에 문제가 생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백신을 개발 중인 피터 팀스 박사는 "코알라가 인간 백신을 만들기 위한 '잃어버린 고리'를 마련해 줄 것"이라면서 "오랫동안 지속될 치료법을 개발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야생 코알라에 대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클라미디아가 코알라를 멸종시킬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사진은 7개월된 새끼 코알라 [EPA=연합뉴스]

인간 백신을 개발 중인 미국 터프스대 의대 면역학자인 파올라 마사리는 코알라를 연구 중인 팀스 박사팀과 협력하고 있다. 마사리 박사는 "코알라는 완벽한 임상 모델"이라고 말했다.


정자 손상에 불임 유발…무증상이 대부분

클라미디아는 생식기에 수개월~수년간 머물면서 큰 피해를 준다. 흉터와 만성 염증은 물론 여성에게 불임을 유발한다. 남성 생식능력을 해친다는 증거도 늘어나고 있다. 정자에 손상을 줘 출산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호주 퀸즈랜드 공대의 면역학 교수인 켄 비글리는 "클라미디아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진화한 성병"이라며 "숙주를 죽이지 않으면서 오랫동안 피해를 준다"고 설명했다.

난자의 벽을 통과하면서 정자의 머리와 꼬리가 분리되는 모습 [중앙포토]


가장 무서운 건 병에 걸려도 몇 년 동안 증상이 발견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감염된 남녀 모두 무증상이 대부분이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토니 다빌 박사는 "과거 성교를 했을 때는 걸렸는지 모르고 증상이 없다가 결혼하고 아기를 낳을 때가 되어서야 병에 걸렸음을 알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고 설명했다


반세기 연구에도 아직 백신 없어
연구진들은 코알라 연구를 통해 인간 백신 개발까지 성공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현재 검사법과 항균제는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게 연구진의 판단이다. 반세기 이상 클라미디아 백신 연구가 이뤄졌으나 아직 성공하지는 못했다. 지난해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과 덴마크 연구팀이 세계 첫 클라미디아 감염증 백신의 예비임상 시험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얻은 게 그나마 고무적이다.

토니 다빌 박사와 연구팀은 지난해 미 국립 알레르기 및 전염병 연구소로부터 클라미디아 백신 개발을 위한 1070만 달러(약 129억원)의 보조금을 받았다. 이들은 클라미디아와 임질 백신을 HPV(인체유두종바이러스) 백신과 결합해 미국 청소년들에게 보급하는 것을 목표로 연구하고 있다.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에 따르면 미국 청소년 10명 중 1명은 이 병에 걸렸다. 다빌 박사는 "이렇게 세 가지 백신을 결합할 수 있다면 기본적으로 불임을 예방하는 백신을 확보하게 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호주 산불 여파에 코알라들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다. 호주 캥거루 아일랜드 파르다나에 있는 야생동물공원 비상대응센터에서 부상당한 코알라가 치료를 받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다만 지난해 호주를 휩쓸고 간 산불 때문에 호주 코알라들이 스트레스를 받아 지쳐 있는 상태라 활발하게 실험을 진행할 수 없다는 점은 걸림돌이다. 호주 외의 다른 지역에서 코알라 연구를 하기엔 비용이 많이 들 수 있다. NYT는 "코알라 한 마리를 나무에서 내려오게 해 검진을 하는데 약 2000달러(241만원)가 든다"고 덧붙였다.

서유진 기자·김지혜 리서처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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