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아나운서는 다수가 '비정규직'..문제제기하자 '보복'이 시작됐다" [커버스토리]

대전 | 김민아 선임기자 2020. 7. 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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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 성차별에 맞서다..'싸우는 아나운서' 김도희·유지은

[경향신문]

■차별에 돌을 던지니…회사는 우리를 내치더라

‘대전MBC의 노예.’ 아나운서 유지은(34·사진 왼쪽)은 한때 이렇게 불렸다. 아침 뉴스부터 시작해 낮 시간 라디오 뉴스, 저녁 <뉴스데스크>까지 진행했다. 지금은? 라디오 프로그램 한 개만 남았다. 아나운서 채용의 성차별을 시정해달라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내자 벌어진 일이다.

전 아나운서 김도희(38·오른쪽)는 TJB대전방송 입사 후 3개월 만에 메인뉴스 앵커를 맡았다. 3년 반 진행하며 공로패도 받았다. 지금은? 충남대 로스쿨 3학년이다. 똑같이 일하고도 차별받는 현실에 분노하다 노동법이 눈에 들어왔다. 공부해가며 퇴직금 지급 소송을 냈다.

여성 아나운서, 하면 연상되는 이미지가 있다. 세련된 정장, 완벽한 메이크업, 재벌가 남성과의 결혼…. 스테레오타입일 뿐이다. 이들도 노동자다. 일에서 보람을 느끼고, 좌절을 겪고, 전문성과 숙련도를 위해 노력한다. 그들의 노동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면 ‘불안정 노동’이란 실체를 만난다. 많은 방송사의 여성 아나운서들이 비정규직이다. 경력 5~6년차가 ‘남성 신입 정규직’보다 적은 급여를 받기도 한다. ‘늙은 여성 아나운서는 시청자들이 싫어한다’고 눈치 주면 나가야 한다.

아나운서가 인기 직업이다보니, 방송사들이 ‘갑질’을 해왔다. ‘을’들은 어쩔 수 없이 계약직이나 프리랜서로 방송에 입문했다. 언젠가 정규직으로 전환되리라 기대했다. 기대는 배반당했다. ‘갑’들이 쌓아올린 성채의 담장은 높았다.

유지은과 김도희는 담장 안으로 돌팔매를 던졌다. 그 돌멩이가 과녁을 맞혔다. 지난달 17일 인권위는 유지은 등 2인이 낸 차별 진정을 받아들였다. “대전MBC가 남성 아나운서를 정규직으로, 여성 아나운서를 계약직·프리랜서로 채용해온 것은 성차별”이라며 △차별적 채용 관행 해소 대책 마련 △진정인들의 정규직 전환 △부당 업무배제에 대한 위로금 500만원 지급을 권고했다. 다음날인 6월18일 대전지법은 김도희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원고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므로 피고(TJB)는 퇴직금 지급 의무가 있다”고 했다.

승리했으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대전MBC는 인권위 권고를 거부했다. TJB는 항소 의사를 밝혔다. ‘싸우는 아나운서들’을 지난 7일 대전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정규직 기자 그만두고 ‘오랜 꿈’ 아나운서 됐지만 비정규직으로 10년
프리랜서의 정규직 전환, 여자에겐 기회도 없어

프로그램별 용역 계약 쓰게 하고 퇴직금도 안 줘…법정으로
1심서 ‘근로자성’ 인정 판결…“끝까지 싸운다”
충분히 말할 기회 주어지지 않는 약자들의 마이크 되고 싶어

“이번주는 6월 모의고사 기간이라 힘들 것 같고요…. 7월7일이나 8일이 어떨까 싶습니다.” 김도희 전 TJB대전방송 아나운서에게 문자메시지로 인터뷰를 요청하자 돌아온 답이다. 로스쿨 3학년인 그는 내년 1월 실시될 변호사시험을 준비 중이다. 김도희는 강릉MBC 기자, 서울MBC 리포터, 광명시청 아나운서, MBN 증권시황 캐스터를 거쳐 2012년 TJB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메인뉴스인 <8뉴스> 앵커로 3년 반, 아침뉴스 앵커로 2년 반 일했다. 지방자치단체장을 일대일로 인터뷰하는 <월요 대담>도 진행했다. 방송은 꿈이자 업이었다. 2018년 회사를 떠났다. 삶의 경로가 바뀌었다.

유지은 대전MBC 아나운서는 다른 지역민방에서 일하다 2014년 입사했다. <뉴스투데이> <뉴스데스크> <건강플러스> 등 주요 프로그램을 섭렵했다. 보도·편성·사업 등 모든 부문에서 종횡무진했다. 지난해 6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진정을 낸 뒤 TV 화면에서 사라졌다. 라디오 <정오의 희망곡>만 맡고 있다. 함께 진정을 냈던 동료는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이직했다. 유지은은 그러나 버티고 있다. ‘현직’이다.

- 두 분은 ‘싸우는 아나운서’입니다. 대중이 여성 아나운서에 대해 떠올리는 이미지와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김도희(이하 김) = 여성 아나운서라고 하면 상냥하거나 친절할 거라고 여기는 분이 많습니다. 부당한 일에 맞서 싸우는 이미지는 대중에게 익숙한 아나운서상이 아닐 겁니다. 전문성도 폄훼되는 경우가 잦습니다. 지자체장 대담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제가 대본만 보고 읽을 거라고 넘겨짚었다가 아닌 걸 알고 놀라는 분들이 계셨어요.

유지은(이하 유) = 인권위에 진정을 낸 뒤 관련 기사에도 ‘재벌한테 시집가려고 아나운서 하면서…’ 유의 댓글이 달리곤 했습니다. 몇몇 사례만 보고 일반화하는 게 속상합니다. 어떤 직군이든 이른바 ‘시집 잘 가는’ 사람은 있지 않겠어요. 아나운서는 그렇게만 치부되기엔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일입니다. 많은 능력을 요구하고, 많은 과제를 해내야 하는 전문적 직업입니다.

김도희 전 TJB 아나운서가 과거 <월요대담>을 진행할 때 모습.

- ‘노동자’로서의 아나운서는 어떨 때 보람을 느끼고, 어떨 때 고단한가요.

유 = 아나운서는 앵커를 하든, MC를 하든, DJ를 하든 하나의 작품을 최종적으로 전달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실수 없이 방송을 마쳤을 때 가장 보람이 큽니다. 뉴스 진행 중 긴박한 상황에 잘 대처했을 때 성취감을 느끼곤 했습니다. 그런 날은 집에 와서 시원한 맥주 한잔 마시고 푹 잠들 수 있었어요. 뒤집어보면 그래서 고단하기도 합니다. 순간순간 긴장의 연속이고, 사소한 실수도 용납되지 않으니까요. 이 일을 시작하면서 주변 지인들에게 ‘이러다 일찍 죽을 것 같다’고 하소연하곤 했습니다.

김 = 방송은 협업입니다. 다른 구성원들이 확인하지 못하고 놓친 부분을 잡아냈을 때 보람을 느꼈어요. 고단한 부분은… 프로그램 시간대에 따라 생활패턴이 바뀌는 게 힘듭니다. 오랫동안 저녁 8시 뉴스를 하다가 아침뉴스로 옮겼더니 석 달간 불면증에 시달렸어요. 앵커들한테는 ‘프롬프터가 작동 멈추는 것 아냐’ 같은 두려움이 있거든요. 그 시기엔 그런 중압감이 심했습니다.

- 아나운서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좋은 아나운서가 되려면 어떤 자질이 가장 필요합니까.

유 = 방송을 좋아하는 마음이지요. 저는 방송이 너무 재밌어요. 방송할 때 살아있다는 느낌이 짜릿해요. 그 마음이 작으면 오래 버틸 수가 없어요. 보여지는 모습, 화려한 모습만 기대하고 입사하면 실망하게 됩니다.

김 = 아나운서가 오랜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정규직 기자를 그만두고 10년간 비정규직으로 살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이들에게 아나운서 하라고 못하겠어요. 그 일을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사람에게 적합한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환경이 너무 열악하니까요. 돈이나 여건을 탓하지 않고 방송 일을 하려는 이들이 많으니까, 방송사들은 노동여건을 개선할 생각을 하지 않는 악순환이 이어집니다. 계속 문제를 제기해서 방송을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친구들이 제대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2018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김도희 전 TJB 아나운서(오른쪽)가 이상돈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김씨는 “6시간 기다리다 발언시간 7분을 얻었다”며 “과거 방송 영상에서 피해자들이 너무 많은 말을, 너무 빨리할 때 왜 그럴까 싶었는데 국회에 서보니 이해되더라”고 말했다. 국회방송 캡처

본론에 들어가기로 했다. ‘잘나가던’ 그들은 왜 ‘싸움닭’이 되기를 자청했을까. 유지은에게 먼저 물었다.

- 지난해 유 아나운서가 인권위에 낸 차별 진정이 받아들여졌습니다. 어떻게 싸움을 시작하게 됐습니까.

유 = 아나운서 생활 6년차로 넘어가는 시점이었습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이 일을 계속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생각이 들었어요. 왜 나만, 여성인 나만 불합리한 상황에 놓여 있나. 대전MBC는 1997년 이래 남성 아나운서는 정규직으로, 여성 아나운서는 비정규직으로 선발해왔습니다. 2017년 파업 과정에서, 파업이 끝나면 (여성 아나운서의) 정규직 전환을 논의해보자고 해서 자료 조사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외려 남성 정규직 아나운서가 채용됐습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벌어집니다. 정규직은 호봉제라 임금도 오르고 승진도 합니다. 저는 내일이라도 나가라면 나가야 하는 처지입니다. 저는 주사위를 던진 겁니다. 아나운서로 더 오래, 더 잘 일하기 위해서요.

- 소송을 하는 대신 인권위에 진정한 이유가 있나요.

유 = 완곡하게 문제를 제기한 것이지요. 그런데 진정을 낸 지 바로 이틀 뒤부터 ‘보복’이 시작됐습니다. <정오의 희망곡>은 ‘보이는 라디오’로 방송됐는데, 갑자기 보이는 라디오가 중단됐어요. 스튜디오 공사를 시작한다는 게 명분이었지요. 낮 시간에 하던 지역 라디오뉴스는 아예 프로그램 자체를 폐지했습니다. <뉴스데스크>는 생방송 30분 전에 하차 통보를 받았고요. 진정 넣은 지 두달 반 사이 저의 존재는 TV에서 사라졌어요. 그러면서도 해고는 하지 않고, <정오의 희망곡>을 남겨놓더군요. 차라리 해고를 하면, 싸움의 대상(사측 인사들)과는 맞부딪치지 않아도 되는데….

유 아나운서와 함께 인권위에 진정을 냈던 동료 아나운서 ㄱ씨는 주당 프로그램 출연료가 62만원에서 5만원으로 줄어들자 회사를 떠났다.

- 회사 생활이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유 = 매일 출근은 해야 하는데, 출근하면 외딴섬 신세가 됐습니다. 보직자들은 경영진 눈치가 보이니까 제 앞에선 말을 걸지 않았습니다. 보직자들이 인사를 받지 않아도 저는 계속했어요. 분노를 에너지 삼아 잘 버텼지만, 가끔은 씁쓸했어요. 회사 1층에 카페가 있는데, 진정을 낸 이후 거기 앉아본 적이 없습니다. ‘카페에서 유지은이 아무개와 이야기하더라’는 말이 나와서 상대방이 도마에 오를까 싶어서요.

- 대전MBC 측에선 인권위 결정을 거부했습니다.

유 = 인권위는 독립적인 인권전담기구이자 준사법기구입니다. 특히 인권위의 이번 결정문은 50쪽에 이릅니다. 법원 판결문을 방불케 할 정도예요. 보도 기능을 담당하는 언론사, 그것도 공영방송이 국가기관의 권고를 외면하는 오만한 행태에 대해선 창피를 줘야 합니다. 최대한 압박해서 인권위 결정을 관철시킬 겁니다. 지금 사측에선 제가 소송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요. 소송을 내는 순간 인권위 결정은 무시되고, 사측은 시간을 벌게 됩니다. 사측의 책임 회피에 판을 깔아줄 생각이 없습니다. 인권위 결정을 받아내면 현실도 바뀌더라는 선례를 남기고 싶습니다.

김도희는 유지은의 한마디 한마디를 귀담아듣고 있었다. 두 사람은 이미 ‘동지적 관계’라고 했다.

- 김 아나운서는 1심에서 승소했습니다. 투쟁 과정이 길었는데요.

■“나가떨어졌다고 기록되는 대신 정의가 승리한다는 것 보여주고 싶어”

유지은 대전MBC 아나운서가 지난 7일 대전의 한 카페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유 아나운서는 “아침 7시20분부터 밤 9시 반까지 ‘방송 노예’로 살 때는 어떤 아나운서가 돼야 하나 고민이 깊었다”며 “이번 싸움을 통해 그 답을 찾았다. 문제가 있을 때 목소리를 내는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 | 김창길 기자

주요 프로그램 섭렵하던 6년차 아나운서
인권위에 진정 내자 줄줄이 하차, TV서 존재 사라져

‘젊고 웃는 여성’ 대중의 취향 빌미로 계속되는 차별 관행
용기 내 문제제기하며 변화의 신호 주었다는 자부심 느껴
화려한 조명 없어도 내 얘기할 때 ‘진짜 아나운서’ 된 기분

김 = 동료 아나운서 한 명이 2016년 퇴사했습니다. 4년3개월간 근무했는데 퇴직금을 받지 못했어요. 이후 대전지방고용노동청(노동청)에서 ‘근로자성(노동자성)’을 인정받았고 민사소송 끝에 퇴직금 일부를 받았습니다. 그 무렵 혼자서 노동법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같은 일을 저도 겪게 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사측은 1심에서 지고 나자 그 동료에게 화살을 돌렸습니다. 갑자기 ‘임금 총액은 맞춰줄 테니 프로그램별 용역 계약서를 쓰라’ 하고 유급휴가도 무급으로 바꿨습니다. 향후 소송에 대비해 근로자성의 근거를 은폐하려 한 거죠. 원인 제공은 자기들이 하고, 화살을 동료에게 돌리는 데 화가 나서 회사 윗분들과 싸웠습니다. 저는 용역계약서에 서명했다가 곧바로 계약서를 파기했어요. 이 일로 완전히 찍혔습니다. 외부에서 의뢰하는 행사(진행)를 회사 측이 배분하는데, 저한테는 시간이 나는지 묻지도 않았습니다. 사내 다른 직군은 아나운서 직군과 함께 밥도 안 먹는 분위기가 됐어요.

- 회사를 떠나는 데 결정적 계기가 있었나요.

김 = 2017년 10월, 할머니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경조휴가를 이틀 냈습니다. 허락도 받았고, 프로그램을 대신 진행할 아나운서도 정해 놓고 갔어요. 그런데 다녀오고 나니 ‘무단결근’으로 처리돼 있었어요. 부의금은커녕 이틀치 임금을 안 주겠다고 하더군요. 그 자리에서 펑펑 울었습니다. 그러곤 2018년 1월 퇴사했습니다. 퇴직금을 주지 않아 노동청에 진정을 냈지만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먼저 퇴사한 동료는 4년3개월 일하고도 근로자성을 인정받았는데, 6년을 근무한 저는 근로자가 아니라고 하더군요. 너무 고통스러워서 심한 안면통증을 겪었습니다. 근로감독관에 문제가 있다고 국민권익위원회에 청원했더니, 권익위는 다시 노동청으로 보내는 등 핑퐁이 계속됐어요. 결국 지쳐서 소송을 냈습니다.

- 1심 판결을 듣고 마음이 어땠습니까.

김 = 6월18일 일부 승소 이야기를 들었지만 판결문을 보지 못해서 떨렸습니다. 쟁점이 여러 가지인데 근로자성이 인정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으니까요. 다음날, 근로자성을 인정한 판결문을 받아보고서야 안심했습니다.

- TJB는 항소 의사를 밝혔습니다.

김 = 저도 항소했습니다. 과거 제 동료는 2심에서 조정으로 마무리했지만, 저는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근로자성 인정과 공식 사과라는 두 가지 요구를 끝까지 밀고 나갈 생각입니다.

두 사람이 용기 내 공론화한 것일 뿐, 여성 아나운서에 대한 차별적 고용 관행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여성 아나운서의 노동을 ‘젊음’과 ‘외모’ 중심으로 바라보는 해묵은 편견 때문이다.

유지은 대전MBC 아나운서가 과거 뉴스데스크 앵커로 활동하던 시절의 모습. 유지은씨 제공

- 지역 방송사들은 대부분 여성 아나운서를 비정규직으로 고용하고 있지요.

유 = 인권위 결정문에도 나오지만 MBC 지역계열사의 경우 남성 아나운서는 정규직 비율이 80%를 넘어요. 여성 아나운서는 20%대이고요. 이런 관행이 너무나 깊고 오래됐습니다. 대전MBC에선 1997년 이후 정규직 여성 아나운서가 전무합니다. 아예 모집 공고에서부터 차별하니까요.

김 = TJB는 2000년대 초 이후 아나운서 직군에 정규직을 채용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도 프리랜서로 들어온 남성 아나운서가 정규직으로 전환된 사례는 있어요. 여성에게는 아예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고요.

- 왜 이런 관행은 바뀌지 않는 걸까요.

유 = 방송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워낙 많으니까, 사용자 측에서 악용하는 측면이 큽니다. 또한 저항하고 싶어도 쉽지 않아요. 바닥은 좁고 소문은 빠르니까요. 인권위에서 제 진정을 인용한 뒤 어느 분이 익명으로 꽃다발을 보내왔어요. ‘10여년 전 계약직 아나운서로 일했다. 나는 두려워서 목소리를 못 냈는데, 저항해주시니 고맙다’는 취지였습니다. 지금도 많은 동료들이 그분과 비슷한 마음일 겁니다. 계약직이든, 프리랜서든 철저히 ‘을’이니까요. 그리고 차별 관행의 저변에는 ‘여성은 젊어야 한다. 웃어야 한다’는 시대착오적 생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대중이 그걸 원한다고 하는데, 방송사 경영진이 대중의 취향을 빌미로 취약한 고용구조를 포장하는 것 아닐까요.

- 방송사 조직 운영에서도 성차별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유 = 처음 아나운서 생활을 시작할 무렵에 ‘다리가 이뻐’ 운운하는 외모적 품평을 들었습니다. 입사 후 겨우 2년쯤 지났는데 ‘일, 오래 하지 않았어?’하고 묻는 사람도 있었어요. ‘회사에 어린 여자들이 빨리빨리 들어와야지’ 하는 인식이 많았습니다.

외롭고 지난한 투쟁은 유지은과 김도희의 삶을 바꿔놓았을 것이다. 목소리를 내기 전의 그들과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그들은 같은 사람일 수 없다.

유지은 대전MBC 아나운서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한 후인 지난해 8월 서울 상암동 MBC 본사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 스스로 어떤 점이 달라졌다고 생각합니까.

김 = 제 관심사는 오로지, 어떻게 하면 방송을 오래 하고 더 잘할 수 있을까뿐이었습니다. 경제 분야는 나이 든 아나운서도 쓴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증권투자상담사 자격증을 따기도 했습니다. 편집기술도 배웠고요. 그런데 퇴사한 동료 사연을 들으면서 노동법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로스쿨 입학 후에도 2학년이 듣는 노동법을 1학년 때부터 청강했습니다. 노동법학회 들어가 부회장도 하고요. 인생 행로가 바뀌었지요.

- 정신적으로 고통스럽지 않았나요.

김 = 처음에는 사람들에 대한 원망이 컸습니다. 노동청에서 진정과 재진정 모두 거절당했고, 사회적 공론화도 되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2018년 여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하는 인권법 캠프에 갔다가 서지현 검사 특강을 들었습니다. 굉장히 강한 분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차분하고 여려 보였어요.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래, 엄청나게 강한 사람만 싸우는 게 아니다, 싶더군요. 이후 서 검사 인터뷰를 많이 찾아봤는데 큰 힘이 됐습니다.

유 = 다들 제가 당연히 힘들 거라고 전제하고 물어보는데요…. 외려 저는 자존감이 높아졌어요. 용기 내 문제를 제기하면서 많은 동료 아나운서들에게 변화의 신호를 주었다는 자부심이 생겼습니다. 소송비용을 지원해주겠다는 지인도 있고, 방송사 시청자게시판과 개인 SNS를 통해 시청자들께서 응원해주고 계세요. 제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해주시나 감동할 때가 많습니다. 아침 7시20분부터 밤 9시반까지 ‘방송 노예’로 살 때는 어떤 아나운서가 돼야 하나 고민이 깊었어요. 이번 싸움을 하며 그 답을 찾았습니다. 화려한 조명이 없어도, 제 목소리로 제 이야기를 할 때 ‘진짜 아나운서’가 된 기분입니다.

-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습니까.

김 = 방송할 때는 마이크가 사회적 약자에게 주어진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싸움을 하면서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2018년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했습니다. 6시간 기다리다 간신히 발언권을 얻었는데 발언시간이 7분이라고 하더군요.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7분은 너무 짧은 거예요. 앵커 시절 방송 영상에서 피해자들이 너무 많은 말을, 너무 빨리 할 때 왜 그럴까 싶었는데 국회에 서보니 이해되더라고요. 충분한 시간을 갖고 우아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기득권’인 겁니다. 방송 일을 10년 넘게 한 저도 어려운데, 일반 피해자들에게 짧은 시간에 조리있게 말해보라고 하는 건 ‘폭력’입니다. 앞으로 그런 사람들의 목소리가, 약자들의 마이크가 되고 싶어요. 또 언론의 민낯을 증언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위법적인 일을 하고도 인정이나 반성을 하지 않는 언론사는 뉴스를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유 = 문제가 있을 때 목소리 내는 사람, 그렇게 목소리를 내면서도 34세의 평범한 직장인 유지은으로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에서 보직자·책임자들의 무게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됐습니다. 중요한 문제를 다룰 때 올바른 결정을 해서 회사가 제대로 나아가도록 방향을 정하는 게 그들의 기능입니다. 지금 회사에 이런 기능이 작동하고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저는 문제제기만 하고 ‘나가떨어진’ 아나운서로 기록되고 싶지 않습니다. 정규직 사원이 되고, 당당히 진급해 사장이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정의가 승리한다는 사례를, 해피엔딩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대전 | 김민아 선임기자 ma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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