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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남] "기내식도 안 나오고..여행사 너무해!" 배상 책임은?

백인성 입력 2020. 07. 18.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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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까지 올라가는 사건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건들은 대부분 1, 2심에서 해결되지만 특별한 사건이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는 게 현실이죠. 재판부의 고민 끝에 나온 생생한 하급심 최신 판례, 눈길을 끄는 판결들을 소개합니다.

계약을 맺은 후 외견상으로는 계약 내용을 이행했지만, 제대로 계약 내용이 이행되지 않은 것을 두고 '불완전 이행'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여행계약상 불완전이행이란 어떤 걸 말하는 걸까요.

여행을 떠나 비행기 탑승 도중 기내식이 제공되지 않았다면, 계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것일까요? 숙소의 문 자물쇠가 고장난 상태에서 방을 바꿔주지 않았다면 또 어떨까요. 여행계약에서 계약을 제대로 이행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된 최신 판례를 소개해 드립니다.

앞서 A 씨 등 일행 5명은 2018년 7월 일본 나가사키와 후쿠오카 관광을 하기 위해 하나투어에 계약금 50만 원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하나투어는 그해 9월 "여행객이 10명 이하여서 여행계약을 취소한다"고 통보하면서, '블라디보스톡 3일' 패키지여행을 권했습니다.

A 씨 등은 이를 받아들이고, 하나투어에게 이미 지급한 계약금 50만 원을 차감한 잔금 645만 3,440원을 지급한 후 하나투어로부터 9월 24일부터 26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라고 적힌 '여행 확정일정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A 씨 등은 여행을 다녀와 "하나투어 측이 계약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여행 요금의 절반인 각 70만 7400원의 재산상 손해와 100만 원 상당의 정신적 손해를 입었다"며 서울중앙지법에 소송을 냈습니다. 1인당 170만 7400원씩을 청구한 겁니다.

■"기내식 안 주고 호텔 객실은 잠금장치 고장…여행계약 제대로 이행 안 돼"

A 씨 등은 재판에서 비행기 이동 중 기내식이 제공되지 않았고, 그에 대한 여행사 측 설명도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A 씨 등은 "하나투어는 원고 등에게 저가 항공기를 이용하게 하면서 통상적으로 제공되는 것으로 알고 있던 기내식이 제공되지 않는다는 설명도 하지 않아 점심을 제공받지 못함은 물론, 미리 이러한 점에 관하여 고지받지 못하여 점심을 준비할 기회도 없어 뜻하지 않게 점심식사를 굶게 되어 불편한 마음으로 여행을 시작하여 육체적, 정신적인 피로감이 생기게 하였다"고 주장했습니다.

A 씨 등은 또 하나투어 측 가이드가 미숙했고 여행일정이 일방적으로 변경되거나 여행일정표에 따른 여행 서비스가 누락되기도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A 씨 등은 이와 관련해 "가이드는 루스키섬 내 프리모르스키 아쿠아리움 관람 시 사전에 차량등록을 하여야 출입이 가능함에도 차량 등록을 하지 않아 원고들로 하여금 원거리에 주차된 여행 차량이 있는 곳까지 약 40~50분 정도를 도보로 이동하게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A 씨 등은 또 "당초 여행 일정 2일 차 오후에는 '혁명광장, 잠수함 C-56 박물관, 영원의 불꽃, 블라디보스톡 개선문, 아르바트거리, 해양공원' 관광을 할 예정이었으나 일방적으로 시베리아 횡단열차 탑승 관광 일정으로 변경됐고, 그 결과 일행이 도착한 세단카역에서 약 3시간을 허비했으며, 가이드가 오라고 말한 장소인 세단카시티까지 약 1시간 10분~20분 정도를 도보로 이동하게 되어 그 과정에서 극심한 스트레스와 육체적 고통을 느꼈다"고 주장했습니다.

A 씨 등은 가이드의 예약미비, 지리와 언어에 미숙해 헤매다 시간을 낭비하는 등의 사유로 자신들이 받은 여행 일정표에 기재돼 있던 '블라디보스톡 발레, 전통사우나 반야' 등 이른바 선택관광을 하지 못했다고도 주장했습니다.

A 씨 등은 이 외에도 제공받은 호텔 객실 3곳 중 2곳의 잠금장치가 고장 나 있었음에도 즉시 수리를 한다든지 다른 객실로 변경하여주는 등의 적절한 조치를 해주지 않아 이틀 동안의 숙박기간 동안 치안 상태가 좋지도 않은 블라디보스톡에서 시정장치도 없는 숙소에서 불안감으로 인해 뜬눈으로 보냈고, 이러한 사정을 가이드가 알면서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아 정신적인 불안과 고통을 받았다고도 주장했습니다.

■법원 "일정표에 기내식 제공 기재 없어…여행사가 기내식 유무 알릴 의무 없다"

서울중앙지법(판사 정동주)은 여행사에 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요건 중 '채무불이행 사실'에 관해선 채권자가 주장, 증명책임을 부담한다는 게 대법원 판례의 태도입니다. 여행자가 이를 일부 증명한 셈입니다.

우선 법원은 기내식 관련 여행사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원고는 채무불이행의 유형 중 불완전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구하고 있는 바, 채무자인 피고로부터 공급받은 급부에 하자가 있다는 것에 대한 주장·증명책임은 채권자인 원고가 부담한다"면서 "여행확정일정표 기재에 의하면, 인천에서 블라디보스톡까지의 비행시간은 2시간 25분이고, 기내식이 제공된다는 취지의 기재가 없는 사실이 인정된다. 위와 같은 경우 여행사에서 기내식이 제공되지 않는다고 추가로 안내할 의무가 있다고 볼 근거가 없으므로 원고의 이 부분 주장은 이유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가이드의 자격 및 능력이 부족하다는 주장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피고가 이 사건 여행계약에 제공한 가이드가 블라디보스톡 가이드 경험이 많지 않았던 것으로는 보이나 가이드 경력 자체는 상당한 사실 등을 인정할 수 있는 바, 위 인정 사실 및 원고는 이 사건 여행계약과 같은 패키지여행의 가이드가 어느 정도의 자격을 갖추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 바도 없는 점을 고려하면, 가이드 자격 및 능력 자체는 이 사건 여행계약에 따른 의무이행이 불완전한지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또 "원고들은 루스키섬 내 프리모르스키 아쿠아리움 관람 후 도보로 5km 이상을 걸었다고 주장하나 피고는 아쿠아리움과 주차장의 거리가 약 100m라고 주장하고, 영상 등을 통해 아쿠아리움에서 약 100m 떨어진 장소에 상당한 넓이의 주차장이 존재하고 별도의 차단시설도 없는 사실에 비춰보면, 여행자들이 제출한 증거만으론 원고 등이 아쿠아리움 관람 후 5km 이상 또는 약 40~50분 정도의 시간을 걸었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을 배척했습니다.

■고객이 받은 여행일정표와 회사 측 일정표 서로 다르면?

여행일정표에 따르지 않고 여행 일정이 변경됐다는 주장에 대해선 하나투어 측은 자신들이 가진 여행 일정표를 재판부에 제출했습니다. 그런데 회사 측 확정일정표엔 고객 측 일정표에는 들어있는 '선택관광 내역'이 없었습니다. 여행계약 일정표에 관해, 고객과 여행사 측은 서로 자신의 일정표가 진짜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법원은 "여행사 주장에 의하더라도 고객들이 일정표를 위조했다는 취지는 아닌 것으로 보이고, 그 형상이나 내용 등에 비춰보더라도 고객 등이 이를 위조했다거나 위조한 이유를 찾기 어려우므로, 이들이 여행사로부터 교부받은 이 사건 여행계약 일정표는 '선택 관광'이 포함된 고객 쪽 일정표로 봄이 타당하다"고 봤습니다.

법원은 이어 위 일정표를 근거로 시베리아 횡단열차 탑승 관광으로 여행 내용이 변경됐단 고객들의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법원은 "여행자들 주장과 같이 여행일정이 변경되었고, 여행사가 이에 대한 원고 등의 일정변경에 대한 동의서를 제출하지 못하고 있는 사실, 피고가 원고 등이 20여 분이 소요되는 시베리아횡단열차 탑승 관광 후에 내린 세단카역에서 별다른 일정을 진행하지 못한 채 약 1km 떨어진 세단카 시티까지 도보로 이동한 사실, 위와 같은 일정 변경 등으로 원고 등이 선택관광을 할 수 없었던 사실 등을 인정할 수 있다"면서 "여행자들은 피고의 과실로 의제되는 가이드의 과실로 여행계약서에서 정한 일정에 따라 여행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판단했습니다.

하나투어 측은 1km 정도 더 걷는 것이 이 사건 여행계약 의무를 위반한 것이 아니라는 취지로 주장했지만, 법원은 "원고의 나이 및 그 일정이 예정에 없었고, 선택하지 아니하면 2~3시간을 한 자리에 머물러야 하는 상황에서 원고 등에게 별다른 선택관이 없었을 것으로 보이는 점에 비춰보면, 위와 같은 결과는 이 사건 여행계약 의무를 불완전하게 이행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고 봤습니다.

숙소 자물쇠 문제 부분에 대한 문제 제기도 받아들였습니다.

법원은 "피고가 원고 등에게 제공한 일부 숙소의 잠금장치가 고장났던 사실에 대해서는 당사자들 사이에 다툼이 없고, 피고가 위 숙소의 잠금장치를 수리하였거나 방을 교체해 주었다는 증거를 제출하지 못하고 있는 점 등에 비춰보면, 피고는 이 사건 여행계약에 따른 원고 등에 대한 안전배려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 "여행계약은 이행돼도 재산상 이익 발생 안 해…정신적 손해만 인정"

법원은 그러나 여행자들이 재산적 손해를 봤다는 주장은 인정하지 않고, 정신적 손해만을 인정했습니다.
법원은 "여행계약은 그 이행의 결과로 재산상 이익의 발생을 예정한 것이 아니고 원고의 주장과 같은 불완전이행이 있었다 하더라도 재산상 손해의 배상을 구할 근거가 없으므로, 재산적 손해 주장 부분 주장은 이유 없다"고 봤습니다.

법원은 "여행 내용 변경 및 도보 이동 부분, 자물쇠 문제 부분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피고는 이 사건 여행계약에서 정한 일정에 따른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였고, 숙소 등에 관한 안전배려의무를 위반하였는바, 이는 이 사건 여행계약 채무의 불완전이행에 해당하므로, 피고는 원고 등에게 위와 같은 불완전이행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며 1인당 20만 원의 위자료를 인정했습니다.

이 사건은 이달 초 확정됐습니다.

백인성 기자 (isbaek@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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