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 싫어요" 수백번 외쳐도 성폭행은 계속됐다

오재용 기자 2020. 7. 18. 15: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60대 교수 "술에 취했다. 우울증 증상 감안해달라" 주장

A씨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악몽은 지난해 10월30일 벌어졌다.

그 날, 우울증을 앓고 있는 20대 제자를 위로해준다고 접근한 60대 교수의 두 얼굴이 드러났다.

우울증 앓고 있는 제자를 성폭행한 60대 교수./조선DB

◇“싫어요” “만지지 마라” 수백번 외쳤다

지난 16일 제주지방법원에서 열린 재판(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에 직접 나온 피해자 A씨는 목소리는 떨렸지만, 비교적 차분하게 자신이 재학중인 제주대학교 교수에게 당한 성폭행 상황과 현재 겪고 있는 고통을 설명했다.

이날 재판은 재판부가 피해자 A씨의 동의를 얻어 언론에만 제한적으로 공개됐다. 피고인인 B(61)씨를 법정에서 퇴정시키고 가림막을 쳐 피해자를 볼수 없도록 했다. 증인석에는 성범죄 피해자를 돕는 해바라기 센터 직원이 동석했다.

B교수는 2019년 3월, 10월 두차례에 걸쳐 자신의 강의를 듣던 제자 A씨에게 면담을 하고 싶다고 접근했다.

A씨는 B교수의 면담에 응했고, 공황장애와 우울증, 어려운 가정형편 등을 털어놨다. B교수는 자신도 같은 질병을 앓고 있다며 약을 소개했다.

사건이 벌어진 지난해 10월30일 B교수는 A씨에게 저녁식사를 제안했다. 이 자리에서 심한 우울증이 있는 A씨가 “매일 매일 극단적 선택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며 고백했다. 이에 B교수는 “그런 생각을 하지 말라”고 위로했다.

반주를 겸한 식사를 마친 뒤 B교수는 A씨를 제주시 한 노래주점에 데려갔다. 이 때부터 A씨는 이상한 조짐을 느꼈고 여러차례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다. 그러자 B교수가 노래주점 방밖까지 쫓아나왔고, A씨는 B교수의 손에 붙잡혀 강제로 방으로 들어갔다.

B교수는 “너를 처음 봤을 때 치마를 입고 다리를 꼰 모습이 당당해 마음에 들었다”고 말하며 A씨를 성폭행했다.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된 피해자의 휴대전화 녹음 파일에는 피해 여성의 거부 의사가 수백 차례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판부에 따르면 녹음 파일에서 ‘싫어요’라는 의사 표현이 207회, ‘집에 가고 싶다’는 표현이 55회, ‘(여기에서) 나가고 싶다’가 7회다. 여기에 ‘(몸이) 아프다’가 3회에 ‘만지지 마라’는 표현도 5회다. 또 비명 등 기타 표현도 15회에 이른다.

노래주점 방범 카메라(CCTV) 영상에서도 피해 여성이 ‘성폭행’ 현장을 벗어나려는 모습이 2차례 찍혔다. A씨는 “아무리 거부를 해도 그래도 피고인(A씨)은 행위를 이어갔다”고 말했다. A씨는 “피고인이 안경을 만질 때 밖으로 달려나가, 현장을 벗어났다”고 했다.

우울증 앓고 있는 제자를 성폭행한 60대 교수./조선DB

◇”아직도 트라우마, 약이 없으면 잠 못자”

A씨는 재판부가 피고인과의 합의서가 제출된데 대해 묻자 “어쩔 수 없었다”고 답했다. 동생이 있는데 자신이 떠나 버리면 책임질 사람이 없는데다 이번 사건으로 인한 병원 치료비 등에 돈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금액은 법정에서 거론되지 않았다.

A씨는 “비록 합의서에는 피해자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했지만, 피해자를 용서한 적도 용서하고 싶지도 않다. 엄한 처벌을 해달라”고 호소했다.

재판부와 A씨의 질의 응답에서 B씨가 합의를 시도하며 장학생 추천 해외 유학을 제안한 것도 확인됐다. A씨는 “B교수가 추천한다는 게 꺼림칙해서 거절했다. 외국에 나갈 준비도 안 됐다. 어떤 경위로 경비는 어떻게 충당되는지 등 제반 사항을 알 수 없어 거절했다. 경제적 상황 때문에 ‘돈’(합의금)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A씨는 “아직도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고 지하철에서도 비슷한 사람만 봐도 놀란다. 집에서도 무섭다. 아빠와도 거부감이 들어 따로 살 정도다. (우울증) 약이 없으면 잠을 자기 힘들 정도”라고 자신의 처지를 설명했다.

이에 재판부는 “피해자가 용기를 얻고 앞으로 잘 살아야 한다. 어린 동생을 잘 키워야되지 않겠느냐”고 위로했다.

B씨 측은 범행을 대부분 인정하면서도 “술에 취해 있었고 우울증 등 정신병 관련 증상이 있다는 점을 감안해달라”고 심신미약을 주장하고 있다.

한편 재판부는 지난 6월 첫 공판에서 “이런 범행은 대한민국에서 없어져야 한다. 피고인을 본보기로 삼겠다”며 직권으로 B교수를 법정 구속했다.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