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조선일보

[2030 취업분투기] 졸업 학점 2.3 반도체 회사 취업 위해 서른 넘어 한 선택

김승재 기자 입력 2020.07.19.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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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 맞춰 국립대 생물학과 진학했지만

적성 안 맞아 방황… 입사 원서도 못 낼 정도로 학점 낮아

서른에 폴리텍대 입학, 반도체 회사 취업 성공

코로나 사태로 한국과 세계 경제가 큰 충격을 받고 있습니다.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힘든 고용상황이 예상됩니다. 그러나 어려움 속에도 희망은 있습니다. 취업난을 이겨낸 청년들을 통해 희망을 전하는 ‘2030 취업 분투기’를 연재합니다.

코로나 사태로 경제가 큰 충격을 받고 있습니다.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힘든 고용상황이 예상됩니다. 어려움 속에도 희망은 있습니다. 취업난을 이겨낸 청년들을 통해 희망을 전하는 ‘2030 취업 분투기’를 연재합니다.

대학 시절 방황하느라 취업에 필요한 스펙을 갖추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기회는 만들기 나름이다. 졸업 학점이 너무 낮아 입사 원서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다가, 뒤늦게 기술을 배워 반도체 회사 연구원 취업에 성공한 이장호(32)씨를 만났다.

◇술·친구·알바로 흘려보낸 대학 4년

고교 시절 성적은 괜찮은 편이었다. 대입 점수에 맞춰 국립대인 충북대 생물학과에 진학했다. 무난하게 대학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

반도체 회사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이장호 씨 /본인 제공

"일단 생물학이란 전공이 저와 맞지 않았어요. 자연스레 공부보다 친구들과 술 마시며 놀게 되더라고요. 학비와 생활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도 했고요. 대학가 근처 고깃집이나 볼링장 등에서 아르바이트했습니다. 결국 공부를 거의 하지 못하면서 1학년부터 성적이 바닥을 치고 말았습니다."

군대나 다녀오자는 생각이 들었다. 1학년을 마치고 해병대로 입대했다. 포항 1사단에서 근무하면서 마음 맞는 선임을 만났다. "전역하면 같이 외식 사업을 하자고 했어요. 각자 2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해서 2000만원씩 모아서 사업하자며,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웠죠. 연도별 세부 계획까지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실행하지 못했다. 제대 후 연락이 뜸해지면서 결국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학교와 아르바이트 생활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낮에는 학교 가고, 저녁 6시부터 새벽 2시까지 볼링장에서 아르바이트했죠. 밤늦게까지 일하다 보니 강의 내용이 머리에 더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이장호 씨 /본인 제공

그러는 사이 대학 졸업할 때가 다가왔다. 학점은 4.5 만점에 2.3점. 토익 점수는 아예 없어 웬만한 기업은 입사 서류도 낼 수 없는 지경이었다. "처음엔 아르바이트하면서 학업을 병행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죠. 반면 친구들은 묵묵히 공부 하면서 스펙을 쌓았고요. 결과는 뻔했습니다."

◇취업 성공 친구 따라 폴리텍대 진학

어쨌든 취업하려고 1년 넘게 노력한 끝에 간신히 한 편의점 물류센터에 정규직으로 취업이 됐다. 상품을 분류해서 각 지역 편의점으로 가는 차량에 싣는 일이었다. 몸으로 하는 일. 오래 하지 못하고 9개월 만에 그만뒀다.

"몸 쓰는 일을 주 6일 하니 정말 고됐어요. 그런데 받는 돈은 200만원 남짓. 시간 지난다고 많이 오르는 것도 아니었어요. 미래가 보이지 않았죠. 계속 있다가는 10년이 지나도 월급 200만원 인생이 될 것 같아, 사표를 냈습니다."

이장호 씨 일상 모습 /본인 제공

다시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지만 현실은 더 엄혹했다. 원하는 직장은 줄줄이 낙방. 그러다 중고교 시절 친하게 지냈던 친구의 취업 소식을 들었다. 그처럼 4년제 대학을 나왔다가, 다시 한국폴리텍대학에 들어가 울산에 있는 정유(精油) 관련 대기업 취업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고교 시절 저보다 성적이 안좋았는데, 좋은 대기업에 들어가 많은 연봉을 받는다는 거에요. 고민 하다가 저도 한 번 똑같이 해보자 결심했습니다."

나이 서른에 한국폴리텍대학 청주캠퍼스에 입학했다. 반도체시스템 전공이었다. "다른 전공은 경쟁률이 2~3대1 수준이었는데 반도체시스템과만 유독 8~9대1로 높았어요. 청주에 하이닉스 공장이 있고, 반도체가 전망이 밝아서 지원자가 많이 몰렸던 거에요. 합격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운 좋게 들어갔습니다."

폴리텍대 재학 시절 이장호 씨(왼쪽)와 폴리텍대 청주캠퍼스 반도체시스템과 이미지 /본인 제공

다만 폴리텍대 진학 소식을 부모님 외에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았다. "4년제 국립대를 나왔는데, 취업하지 못해 다시 대학을 간다는 게 그땐 부끄러웠나 봐요. 과연 내가 졸업하고 취업까지 할 수 있을까란 의구심도 있었고요. 그래도 어머니는 전폭적으로 지지해주셨어요. 더는 시간 낭비하지 말고 폴리텍대에서 열심히 배워 취업하라고 응원해 주셨습니다."

◇3학기 만에 반도체 연구직 취업 성공

첫 학기는 적응이 쉽지 않았다. "자연계인 생물학을 전공해서, 처음 접하는 반도체가 낯설었어요.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빡빡하게 돌아가는 수업 듣는 것도 힘들었고요. 다시 고교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죠."

그러나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 힘들다고 포기할 수 없었다. 매일 밤 10시까지 학교 도서관에 자리를 지키고 공부했다. "어쨌든 앉아 있으면 하나라도 더 공부하게 되니까요." 노력 덕에 첫 학기 성적은 70명 가운데 3등을 기록했다.

나이가 많은 편인 게 동기 부여가 됐다. "반도체시스템과에서 두 번째로 나이가 많았습니다. 나이가 많을수록 더 절박해질 수밖에 없어요. 저보다 유일하게 한 살 많은 형이 과 수석이었어요. 그 형 보면서 많은 자극을 받았습니다."

이장호 씨 일상 모습 /본인 제공

4학기 과정 중 3학기를 마치자 취업이 됐다. 국립대 다닐 때는 졸업하고도 1년 넘게 취업하지 못했는데, 폴리텍대에선 1학기를 남겨 놓고 취업이 된 것이다. "현재 반도체 제조 업체인 ‘테크위드유’의 연구직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반도체 레이아웃’을 맡고 있는데요. 반도체의 층별 회로기판의 패턴을 디자인하는 업무죠. 학과 공부를 충실히 한 덕에 취업에 성공한 것 같습니다."

이제는 주변에 폴리텍대 진학을 적극 추천하고 다닌다. "교수진이 모두 실무에서 오래 일한 분들이세요. 어떻게 해야 실무에 필요한 인재가 될 수 있는지를 정확히 알고 가르쳐주십니다. 그분들이 제시하는 길만 따라가면 원하는 곳에 취업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목표는요.

"전망이 밝은 반도체 회사에 입사해서 좋습니다. 계속 열심히 해서 전문성을 쌓고 싶습니다. 먼 훗날 기회가 된다면 제가 직접 반도체 설계 회사를 차려 보고 싶은 꿈도 있습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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