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간 8명이 숟가락 얹었다..난장판 그린벨트, 서로 딴소리

조현숙 2020. 7. 20.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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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조 "해제 논의" 정세균 "아니다"
추·이 "그린벨트 해제 득보다 실"
총리·장관·청와대 그린벨트 딴소리
박원순 사망 맞물려 잡음 커져
추미애까지 부동산 발언 거들자
통합당 "집안일부터 챙기시라"
추미애(左), 이재명(右). [뉴스1·연합뉴스]

서울시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해제를 둘러싼 논란으로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 역량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

지난주 벌어진 혼선은 주말을 지나며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17일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한 라디오 방송에서 “당정이 (그린벨트 해제 검토 쪽으로) 이미 의견을 정리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불과 이틀 만인 19일 정세균 국무총리가 “당정이 합의하거나 결정한 적은 없다”며 다른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린벨트는 한번 훼손하면 복원이 안 된다”며 반대쪽에 기운 입장이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아직 결론을 내지 않았다는 취지에서 (정 총리와 김 실장의 발언은) 같은 내용”이라고 말했다.

오락가락하기는 지난주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14일 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한 방송에서 “해제를 검토한다”며 서울시 그린벨트 해제론의 불을 댕겼다.

바로 다음 날인 15일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와 기재부, 서울시에서 “검토 안 한다” “한다” 등 정반대 발언이 시차를 두고 쏟아졌다. 그날 오후 당정과 실무기획단 협의를 통해 “그린벨트 활용 가능성을 논의한다”고 정리되는 듯했다. 그러나 혼란의 또 다른 시작일 뿐이었다. 서울시에서 “그린벨트는 ‘마지막 보루’”라며 다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시행이 아닌 검토를 하느냐, 마느냐 단계에서 정부 내 혼선이 이어졌고 장·차관은 물론 국무총리, 청와대 정책실장도 서로 다른 말을 하는 혼돈 그 자체다. 여기에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망과 맞물려 정치 논란, 장외 훈수까지 가세했다.

18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페이스북에 “그린벨트를 풀어 서울과 수도권에 전국의 돈이 몰리는 투기판으로 가게 해서 안 된다”는 글을 올렸다. 금융의 부동산 지배를 막기 위해 ‘금부(금융과 부동산) 분리 정책’을 제안한다는 내용과 함께다. 부동산 정책과 관련이 없는 법무부 장관이 가뜩이나 시끄러운 그린벨트 해제론을 두고 훈수를 두자 정치권까지 들끓었다.

컨트롤타워 사라진 부동산 정책…“땜질 처방에 시장만 불안”

부동산 정책 혼선

추 장관은 “법무부 장관도 국무위원으로 국가 주요 정책에 대해 의견을 표명할 수 있다”고 추가 글을 올렸지만,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그 귀한 의견을 국무회의에서 표명했다면 내가 박수를 쳐줬을 것”이라며 “근데 정작 해야 할 법무부 장관 역할은 최강욱(열린민주당 대표)한테 맡겨놓고, 페북질로 국토부 일에 훈수를 두고 있으니 문제”라고 비판했다. 배준영 미래통합당 대변인도 “총체적 난국에 빠진 집안일(법무부)부터 챙기시라”고 논평을 내놨다.

허위사실 공표 혐의에 대해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 판결을 받은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나섰다. 그는 19일 “그린벨트를 통한 주택 공급은 득보다 실이 크다. 해제보다는 도심 재개발을 활성화하고 용적률을 높여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 그린벨트와 관련 없는 경기지사까지 가세하는 모양새다.

그린벨트 해제는 이번 정부에서만 어려운 숙제였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혼선을 빚은 정부는 없었다. 1997년 9월 11일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는 ‘그린벨트 규제완화안’을 전격 발표했다. 단순히 안을 내놓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린벨트 내 297㎡(90평) 이내 주택, 생활편익시설 설치 등을 허용하는 ‘도시계획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을 동시에 입법예고했다. 그린벨트 해제의 효시인 김대중 정부 때도 그랬다. 당시 김 대통령은 취임 한 달여 만인 98년 3월 19일 “일부 해제하라”며 명확한 입장 표명을 했고, 정부 부처는 속전속결로 이를 뒷받침했다.

20여 년 전보다도 못한 정부의 역량에 부동산과 조세정책을 둘러싼 국민 여론은 악화할 대로 악화했다. 무주택자는 대출 규제로 내 집 마련이 더 어려워지고, 정부 정책이 전·월세 가격만 올렸다고 분통을 터뜨린다. 재산세 고지서를 받아든 1주택자는 세금 급증에 조세저항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18일 서울 을지로에서는 부동산 세 부담을 강화한 정부 대책에 항의하는 시위가 열렸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부처는 7·10대책으로 1주택자 세 부담이 늘었냐, 안 늘어났냐는 식의 지엽적 해명자료만 거듭 배포할 뿐이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뒤늦게 공급 대책을 마련하려다 보니 혼선이 더 가중되는 것”이라며 “처음부터 종합적인 청사진을 내놓았어야 했는데 세제·금융만 옥죄다 3년의 시간을 허비했다”고 지적했다.

정책 난맥상은 부동산에만 그치지 않는다. 지난달 25일 기재부가 밝힌 주식 양도소득세 도입 방안은 연기 또는 백지화 처지에 몰렸다. ‘동학 개미’의 반발이 이어지자 17일 문 대통령이 “주식시장을 위축시키거나 개인투자자의 의욕을 꺾지 않아야 한다”며 재검토를 지시했기 때문이다. 기재부가 범정부 협의를 거쳐 최종안을 발표하기 직전에 대통령이 직접 세제개편안 내용을 재검토하라고 지시한 건 전례가 드문 일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책 효율성을 높이려면 일치된 의견과 빠른 속도가 중요하다”며 “최근 정부 정책은 대책 자체가 ‘뒷북’인 데다 실행 과정마저도 혼란해 시장 불안과 위험을 더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는 “중앙정부·지방자치단체·여당 등에서 다양한 내부 논의를 거치되 외부적으론 정리된 의견을 내놓는 게 맞다”며 “당정 간 혼선이 반복되고, 정부 내에서 주장이 왔다 갔다 하면서 시장의 불확실성만 키우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세종=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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