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 없네, 내 무릎에 앉아' 성희롱은 일상, 비서의 눈물

최지웅 2020. 7. 20.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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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문 사건은 여성 비서들의 열악한 업무 환경을 낱낱이 공개하는 계기가 됐다.

국민일보는 19일 공공기관이나 민간기업에서 일했거나 일하고 있는 전현직 여성 비서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비서들은 상사의 갑질과 성희롱을 '불편하지만 감내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한국성폭력상담소·한국여성의전화가 지난 16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박 전 시장은 피해자에게 비서보다는 '기쁨조' 역할을 기대한 정황이 다수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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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후에도 아직 먼 인권.. 전·현직 비서들이 말하는 삶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문 사건은 여성 비서들의 열악한 업무 환경을 낱낱이 공개하는 계기가 됐다. 미투(MeToo·나도 당했다)운동으로 촉발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 사건 이후에도 여전히 ‘권력형 성범죄’가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국민일보는 19일 공공기관이나 민간기업에서 일했거나 일하고 있는 전현직 여성 비서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비서들은 상사의 갑질과 성희롱을 ‘불편하지만 감내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부당한 건 알지만 보수적인 사회적 시선이나 조직 문화를 감안하면 피해 사실을 공론화하고 문제삼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10년간 한 대기업에서 비서 생활을 해 온 30대 A씨는 “성희롱은 비서의 일상”이라고 표현했다. A씨가 보좌했던 한 대표는 “치마를 짧게 입어야 다리가 예뻐 보인다”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었다고 한다. A씨는 불쾌함을 느꼈지만 반복적으로 듣다보니 어느 순간 ‘사소한 일’로 여겨졌다.

A씨는 회식 자리로 이동하다 수치심을 느꼈던 일화도 소개했다. 당시 차량 좌석이 모자라다는 이유로 대표가 자신의 무릎 위에 A씨를 강제로 앉힌 것이다. A씨는 “대표의 지시라 어쩔 수 없이 따랐지만 다른 동료가 보는 앞인 데다 마치 내가 죄를 지은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고 말했다.

입사 때부터 업무가 아닌 ‘심기보좌’를 강요하는 곳도 있었다. 국내 유명 대형 로펌에서 1년을 못 채우고 퇴사한 B씨(27)는 복종적 태도를 세뇌받다시피 했다고 한다. 그는 “당시 인사교육 담당자는 갓 입사한 비서들에게 가장 중요한 임무로 변호사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것을 꼽으면서 눈치를 제일 먼저 키우라고 강조했다”고 회상했다.

이런 사례들은 박 전 시장이 비서인 피해자에게 가한 행위와 상당히 유사하다. 한국성폭력상담소·한국여성의전화가 지난 16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박 전 시장은 피해자에게 비서보다는 ‘기쁨조’ 역할을 기대한 정황이 다수 발견됐다.

또 B씨는 최소한의 인격적 대우도 바랄 수 없었다고 한다. 한 변호사는 B씨에게 “야, 나가서 아이스크림 좀 사와”라며 반말 섞인 사적 심부름을 시키곤 했다. 그는 “비서는 마치 이런 하대를 당하는 게 당연하다는 식의 조직 문화에 환멸을 느껴 그만뒀다”고 말했다.

전현직 비서들은 입을 모아 업무 특성상 고립된 환경이 범죄 사각지대를 키웠다고 지적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오가며 8년간 비서생활을 하고 있는 30대 C씨는 “다른 부서 직원과 달리 비서는 혼자 일하는 경우가 많은 데다 체계가 없는 중소기업일수록 입사 동기도 적어 손을 내밀 곳이 줄어든다”고 토로했다.

C씨에 따르면 비서들 가운데 90% 이상이 계약직이다. 이들 상당수는 전문대 비서과를 졸업한 20대 초중반 여성이다. 부당한 대우를 당해도 당장 일자리를 잃을 게 두려워 스스로 내부고발자가 되기도 어렵다. C씨는 “퇴사하면 사회생활에서 낙오된다는 생각에 화장실에 가서 몰래 울면서도 결국 악을 쓰며 버틴다”고 덧붙였다.

비서라는 직업에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이들이 많아질까 우려된다는 이도 있었다. 공공기관에서 10년 동안 비서를 하고 있는 D씨(36)는 “상사를 보좌하며 좋은 평가를 받으며 자부심을 갖고 일하는 사람도 많다”고 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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