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 백선엽을 '중장급' 명예사령관으로 임명한 미군의 이중성 [한국군 코멘터리]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입력 2020. 7. 20. 06:08 수정 2020. 7. 20.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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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13년 판문점 인근 주한미군의 뉴멕시코 사격장에서 미8군 명예사령관으로 임명된 백선엽 전 육군 대장. 연합뉴스


국립대전현충원에 지난 15일 안장된 백선엽 전 육군대장에게는 생전에 항상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있었다. ‘미군도 존경하는’이 그것이다.

거기에 어울리게 전현직 주한미군사령관들은 백 전 대장의 사망에 대해 애도사 및 추도사를 쏟아냈다. “백 장군은 영웅이자 국보로, 한미동맹의 ‘심장’이자 ‘영혼’“(로버트 에이브럼스 현 사령관), “나는 수십 년 동안 백 장군을 존경해왔고, 한미동맹에 깊은 손실”(빈센트 브룩스 전 사령관), “백 대장은 미국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끈 조지 워싱턴과 같은 한국군의 아버지”(버웰 벨 전 사령관), ”백 장군은 한미동맹의 위대한 ‘롤모델’이었다“(월터 샤프 전 사령관)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도 트위터 계정을 통해 애도를 표했고, 미 국무부 모건 오테이거스 대변인은 애도 성명을 내놓았다.

■3성장군 부대 명예사령관으로 임명된 4성장군

앞서 미국은 2013년 판문점 인근 ‘뉴멕시코 사격장’에서 백 전 대장을 미8군 사령부 명예사령관으로 임명해 그를 한미동맹의 상징으로 내세웠다. 당시 미 8군사령부는 “백 전 대장이 대한민국 육군 역사상 최초의 4성 장군이고 한국전쟁 당시 탁월한 전공을 달성해 명예사령관으로 임명한다”고 밝혔다. 기상악화를 이유로 임명식에 불참한 샴포우 미8군 사령관을 대신해 골든 미8군 작전부사령관은 “백선엽 장군은 한국전쟁의 영웅으로 정전협정 이후 한미 장병의 ‘멘토’ 역할을 해왔다”고 축하했다. 이에 백 전 대장은 “8군 명예사령관으로 임명된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한다”며 “한반도를 지키고 있는 한미우호에 큰 감격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 부분에서 의문이 생긴다. 미 8군은 미 육군 중장(별 셋)이 지휘하는 부대다. 비록 미군이 그에게 입혀준 미군복에는 ‘별 넷’이 새겨져 있었지만, 4성 장군 출신인 백 전 대장를 중장급 부대의 명예사령관에 임명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이는 한국군으로 치면 별넷을 달고 군단장(별 셋)에 명예직으로 임명된 셈인데, 아무래도 어색하다. 4성 장군 출신을 명예지휘관으로 임명한다고 하면 적어도 대장 계급이 지휘하는 부대의 사령관으로 해야 마땅할 것이다.

나아가 백 전 대장의 명예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면 현역 시절 계급보다 별을 하나 더 얹어 5성 장군인 원수로 명예 진급시켜 추서하는 것도 예우 차원에서 그리 어색하지 않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미군은 ‘그토록 존경한다’는 4성 장군을 3성 장군이 지휘하는 부대의 명예사령관으로 임명했다. 또 육군참모총장으로서 대한민군 육군을 총 지휘했고, 합참의장까지 지낸 당사자는 이를 ‘무한한 영광’으로 받아 들였다.

■‘백선엽 전 대장은 일본 헌병 병사 출신’

미군이 그토록 존경한다고 하는 백 전 대장에 대한 미국 정부의 평가는 이중적이다. 과거로 돌아가보자. 신동아는 2010년 기밀이 해제된 주한 미국 대사관 문건 ‘한국 군부 내 주요 파벌 분석 및 구성원 명단’(1962년)을 2010년 보도했다. 1962년 8월, 주한 미대사관 정치담당 참사관이던 필립 하비브가 본국에 송신한 한국 군부의 핵심 실력자들과 주요 파벌을 해부한 36쪽의 기밀전문이다.

이 문건에서 미국은 14년간 군 복무 후 전역한 백선엽 전 대장을 ‘부정부패와 파벌에 찌들은 군인’으로 묘사한다. 그는 또 처음부터 일본군 장교가 아니라 일본군 헌병대 사병 출신임이 드러난다. 평양의 한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일본군 헌병대에서 2년간 사병으로 근무하다 일본 관동군의 목단사관후보학교(OCS) 단기 과정을 이수해 장교가 됐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는 당시 백선엽의 동생인 백인엽 예비역 중장은 ”최대의 불법축재사건으로 현재 수감 중“이라고 전한다.

문건은 또 ”한국군의 첫 4성 장군이자 한국군에서 가장 오랫동안 그 직을 보유했던 백선엽 장군은 정일권의 파벌에 필적할 수준으로 한국군 안에서 거대한 파벌을 이끌고 있다“며 ”그의 주요 경쟁자인 정 장군과 같이, 백선엽은 혜택과 진급, 적절한 사면 등의 방법을 통해 자신의 파벌적 역량을 축적했다“고 그를 분석했다. 그러면서 ”부패는 어느 경우에서도 팽배해 있었지만 백 장군은 다른 참모총장들보다도 더욱 부패한 것으로 유명했다. 전체적으로 이러한 자질은 그의 파벌 성원들에서 잘 나타나는데 그들 중 다수는 송요찬이 1959년 추방되었을 때, 혹은 직접적으로는 혁명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는 부패사건으로 인해 함께 숙청되었다“고 썼다.

이런 점들을 살펴보면 백선엽 전 대장을 극찬하는 미국의 공식 태도는 8·15 해방 이후 미군정의 친일파 등용, 한국전쟁을 전후로 한 ‘빨치산 토벌’이라는 미명 아래 저지른 무고한 민간인 학살, 박정희 군부 등에 취했던 미국의 입장과 궤를 같이 한다고 유추할 수 있다. 당연히 미국 역대 정부가 취해왔던 한국에 대한 정책 속에서 백선엽 전 대장의 친일행각이나 한국전쟁 당시 백야사의 양민 학살은 부정적으로 평가할 대상이 아닐 수밖에 없다. 대신 미측은 1940년대 말경의 국군 내 좌익 숙군 과정과 여수·순천 및 제주도 4·3 사건 진압 과정에서의 백선엽 전 대장의 노력과 기여, 한국전쟁 이후 냉전 때 아태지역에서의 미국의 패권 입지 구축 측면에서 도움이 됐던 점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해석된다. 당연히 미군의 ‘백선엽 추앙’은 미국에게 유리하고 이익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각도에서 보면 미국이 백 전 대장을 미8군 명예사령관으로 임명한 것은 좀 ‘짜게’ 대우한 것 같다. 미군도 자신들이 ‘부정부패와 파벌주의자’로 간주했던 한국군 대장을 미군 명예대장급으로 하기에는 ‘거시기’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백 전 대장이 미국을 위해 기여한 것들을 생각하면 명예 주한미군사령관(미 육군 대장) 정도는 임명해 주는 게 도리가 아니었나 싶다.

미8군 사령부가 2019년 백선엽 전 육군 대장의 99세 생일을 맞아 열어준 깜짝 생일파티에서 정경두 국방장관이 식사를 도와주고 있다.연합뉴스


■백선엽 장군의 삶은 ‘청빈’ 그 자체라고 광고한 성우회

백선엽 전 대장은 가족 명의로 서울 강남역 앞 2000억원대 건물을 소유했던 자산가였고, 이 재산을 놓고 수년에 걸쳐 가족 사이 송사가 벌어졌다. 백 전 대장이 장남 명의로 해놓았던 건물은 나중에 재산다툼이 벌어져 대법원까지 간 결과 장남과 백 전 대장의 부인이 절반씩 소유하게 됐고, 2012년 부인이 지분을 350억원에 장남에게 매각하면서 지금은 온전히 장남 소유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인천 ‘선인학원 사태’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백 전 대장의 삶은 그의 6·25때 공적과는 별개로 ‘청빈’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비역 및 퇴역 장성들의 모임인 성우회는 “오늘의 국군과 한·미동맹의 기틀을 다졌고,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위대한 삶을 사신 영웅으로 ‘참군인’, ‘청빈 삶’ 그 자체로 후배들의 정신적 지주이며 멘토인 영웅”이라고 평가했다. 또 전 국군장병들이 보는 국방일보 1면에도 이같은 내용의 추모 광고를 대대적으로 실었다.

그러나 ’청빈 삶 그 자체로 후배들에게 정신적 지주인 영웅‘이라고 표현한 데 대해서는 관사에서 생활하면서 집 없는 장교들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차라리 성우회는 “한미동맹의 상징인 백 전 대장을 주한미군 명예사령관으로 임명해달라”고 미군에게 호소하는 광고를 국방일보 1면에 게재하는 게 나을 뻔 했다. 백 전 대장이 미군이 말하는 ‘한미동맹의 상징’이라는 점에서는 지휘관이 미군 대장인 한미연합군사령부의 명예사령관도 잘 어울린다. 의전과 서열을 중요시하는 ‘군인의 세계’에서 한국군 합참의장과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4성 장군이 미군 3성 장군이 지휘하는 부대의 명예사령관으로 임명된 것은 한국군 장군들이라면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 않는가.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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